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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특혜, 노동자의 죽음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의 악순환… 설치업체 특혜 계약 혹은 최저가 입찰→ 부실시공 및 안전관리 외주화→ 인명사고
등록 2016-06-08 14:50 수정 2020-05-03 04:28
정수영 서울메트로 사장 직무대행이 6월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대합실에서 승강장 안전문 사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기자회견 도중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정수영 서울메트로 사장 직무대행이 6월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대합실에서 승강장 안전문 사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기자회견 도중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특혜 계약 의혹, 공사비 후려치기를 통한 업체 도산·노동자 임금 체납·부실시공, 안전관리 외주화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 19살 청년의 꿈이 스크린도어 안쪽에서 다시 스러졌다. 최근 4년간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스크린도어를 혼자 정비하다 숨진 노동자는 3명(2013년·2015년·2016년)이다.

나 홀로 입찰해 운영권 따낸 유진메트로컴

스크린도어는 유진메트로컴(이하 유진)이 회사 설립 2주도 안 된 시점인 2003년 10월 서울메트로(서울 지하철 1~4호선 운영·관리)에 민자투자사업(BOT) 방식으로 스크린도어 설치를 먼저 제안하며 진행됐다.

1년여 뒤인 2004년 12월 서울메트로는 서울 지하철 2호선 12개 역의 스크린도어 설치 및 운영(유지·보수·광고권) 사업을 유진에 보장해주는 독점계약을 체결했다. 유진이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고장 정비 등을 하는 대신 스크린도어를 통한 광고 수익권을 22년간 갖는 파격적 계약이었다. 강남역·교대역·선릉역·사당역·이대역 등이 이 사업 계약에 포함됐다. 유진은 2005년 사당역을 시작으로 스크린도어를 처음 설치했다.

유진은 서울역·시청역·종로3가역·홍대입구역 등 서울 지하철 12개 역의 스크린도어 설치 및 광고 수익권을 16년7개월간 보장받는 2차 독점계약을 2006년 서울메트로와 체결했다. 이동하는 사람이 많아 광고 유치를 비교적 손쉽게 할 수 있는 서울 ‘24개 황금 역’의 스크린도어 설치와 광고운영권을 두 차례에 걸친 계약을 통해 유진에 모두 넘긴 것이다.

이 계약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시절에 이뤄졌다. 이 전 대통령의 현대건설 후배인 강경호 전 한라그룹 부회장이 서울메트로 사장일 때 진행한 계약이다. 유진의 최대주주도 현대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들 때문에 정치권에선 유진의 특혜 계약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신생 회사가 스크린도어 설치를 제안하고, 이후 스크린도어 민간사업자 공모에 컨소시엄을 구성한 유진이 홀로 참여해 운영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결혼을 앞둔 28살 청년이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부딪혀 사망한 사고가 있었는데, 이 청년이 속한 회사가 유진이었다. 이 때문에 유진이 정비 인원 확충 등에는 둔감한 채 수익성 높은 스크린도어 광고영업에 몰두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4년부터 9년간 유진의 매출액이 2559억원이며, 2014년 매출액은 324억원으로 이는 같은 해 서울메트로의 전체 광고 매출액의 절반가량이다. 공익적 성격을 가진 지하철역의 광고권을 유진이 알짜 역 중심으로 독점하는 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유진이 서울메트로와 계약한 이후 서울메트로 간부들이 유진의 전무와 상무로 이직하기도 했다.

미진한 공정, 석연치 않은 선급금

서울메트로가 관리하는 서울 지하철 121개 역 가운데 유진이 민간투자 방식(대신 광고영업권 독점 보장)으로 스크린도어를 설치한 24개 역을 뺀 97개 역은 서울메트로가 자체 예산으로 설치를 진행했다. 하지만 스크린도어 설치 비용을 가장 적게 써낸 업체를 시공사로 선택하는 최저가 입찰 방식이 이뤄지면서 부실시공 우려가 서울메트로 안팎에서 나왔다. 1개 역 스크린도어의 일반적 설치 비용의 절반 수준으로 시공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설치 업체가 중간에 도산하거나, 임금을 받지 못한 공사 노동자들의 고충이 속출했다. 당시 민주노총 법률지원센터에 접수된 한 임금 체납 노동자의 호소문을 보면 절박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일당제로 일하지만 서울 시민의 발이란 지하철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기에 자부심을 가졌다. (중략) 하지만 저가 입찰로 부실공사가 되고 시공업체는 부도가 나면 누가 마음 놓고 (스크린도어 설치) 사업을 해나가겠느냐.”

이번에 사망사고가 난 구의역도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곳이다. 오선근 공공교통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구의역을 포함해 97개 역이 저가로 공사가 되다보니 (당시에도) 부실공사가 진행돼 상당히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i>서울메트로 전직 직원들의 임금 수준을 보전해줘야 하는 등 회사 운영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정비 직원을 2인1조 근무 수준으로 확충할 수 없었고, 고용된 젊은 직원들은 저임금을 받으며 스크린도어 안쪽에서 위험한 일을 감수했다. </i>

스크린도어 시공업체의 공정이 미진한데도 서울메트로가 120억원을 선급금으로 과다 지급해 업체 사장이 횡령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2011년 발생하기도 했다. 업체 사장이 2007년 서울메트로와 20개 역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기로 계약한 뒤 2009년까지 4차례에 걸쳐 선급금 명목으로 120억여원을 받아 챙긴 사건이다.

하지만 당시 서울메트로 안에선 선급금을 추가 지급해선 안 된다는 내부 직원의 건의에도 여권(현 새누리당)과 가까운 사이인 경영진이 선급금 지급을 강행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선급금 추가 지급을 반대했다는 직원은 이 사건으로 정직 처분을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게다가 석연치 않은 선급금 문제 등을 포함한 지하철 비리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졌는데도 윗선의 압력으로 그런 사실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박영선 더민주 의원이 제18대 국회에서 제기한 적도 있다.

이번 구의역 사고로 숨진 청년이 속한 업체는 서울메트로의 하청을 받아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하는 은성PSD였다. 은성PSD 소속 정비 직원의 사망은 2013년 성수역 사고를 포함해 2건이다. 5월 현재 은성PSD의 직원은 143명이며, 이 가운데 서울메트로에서 퇴직하고 건너온 직원이 36명(60대 26명 포함)이다. 은성PSD의 대표도 서울메트로 출신이다.

은성PSD로 건너온 서울메트로 출신들은 비교적 고령이고 정비 기술이 없어 스크린도어 정비를 위한 현장 투입이 어려웠다. 서울메트로 전직 직원들의 임금 수준을 보전해줘야 하는 등 회사 운영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정비 직원을 2인1조 근무 수준으로 확충할 수 없었고, 고용된 젊은 직원들은 저임금을 받으며 스크린도어 안쪽에서 위험한 일을 감수했다.

정비·보수 업무 직영화 필요

오선근 공공교통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정비·보수를 하청업체에 주는 게 아니라) 정규직 직원이 유지·보수·관리하는 직영 체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관리 직원들을 서울메트로가 정규직으로 고용해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안전 관련 작업자들은 반드시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본사에서 책임을 지도록 지난 19대 국회에서 법안을 제출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비통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법제화를 야 3당이 공조해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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