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 사옥은 1990년대 건축학도 사이에 꽤 유명했던 건물이다. 해체주의 건축가로 유명한 조건영이 설계했다. 그는 “반역은 역사와 사회를 썩지 않게 하는 유일한 처방이다. 바로 그 처방이 의 탄생 설화”라는 의미를 이 건물에 부여했다.
당대 대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 이곳 4층에 이 자리하고 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쪽 벽에 디지털팀이 내건 ‘혼이 비지(Busy)상…’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혼이 비정상”이라고 한 말을 빗대 ‘숨 가쁘게 바쁜 곳’이란 의미를 담으려 했던 것 같다.
매주 월요일 이곳에서 의 일상이 시작된다. 오전 9시30분, 수뇌부 회의로 아침이 열린다. 이 속한 출판국의 김현대 국장, 이재원 부국장, 안수찬 편집장을 비롯해 광고·마케팅 부장, 관리부장 등이 참석한다. ‘뜨거운 가슴’으로만 살 수 없는 법. 이곳에서 의 ‘먹고사는 문제’가 주로 논의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느긋한 타이핑? 황급한 광클릭?</font></font>비슷한 시각, 사무실에서 취재기자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이번주 ‘아이템’을 팀장에게 보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템 준비가 얼마나 됐는지는 손놀림으로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아이템이 있는 경우, 보고를 위해 ‘타이핑’을 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은 인터넷에서라도 아이템을 건지려고 ‘마우스 광클릭’을 한다. 취재기자의 발제 내용을 바탕으로 삼삼오오 모인 팀별 회의가 이어진다.
회의에서 걸러진 내용은 팀장의 손을 거쳐 다시 편집장에게 ‘전체 회의용 보고’로 전달된다. 안수찬 편집장의 주장에 따르면, “이즈음 편집장은 이미 마음속으로 대강의 표지 기사 후보를 복수로 염두에 둔다”고 한다.
오후 2시부터 본격 회의가 시작된다. 가장 중요한 일정 가운데 하나다. 먼저 편집장이 팀별 발제를 종합해 지면 계획 초안을 작성해 내놓는다. 준비된 회의 자료는 대개 A4용지 8~9장 분량에 이른다. 가장 비중 있는 의제는 ‘표지 기사’ 선정이다. 취재, 편집뿐 아니라 마케팅 담당자들도 참여해 이 추진하는 장기 기획과 내·외부 주요 사업을 점검한다.
두어 시간에 걸친 전체 회의가 끝나면, 다시 팀장 회의가 이어진다. 이를 바탕으로 오후 5시께 편집장이 ‘1차 지면 계획’을 잠정 확정한다. 대면 회의가 많지 않은 언론사 특성상 이때부터 지면 계획이나 지시사항은 주로 텔레그램 단체채팅방을 통해 전달된다. 이때 이번주 의 얼굴인 표지 기사 담당 기자도 결정된다. 기자들은 ‘표지 담당 기자’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그는 이번주 내내 죽도록 고생할 것이다.
화~수요일의 뉴스룸은 조용하다. 기자들이 어딘가에서 취재 중이다. 누가 어디서 뭘 하는지 찾거나 챙기는 사람은 없다. 각자 알아서 움직인다. 취재를 제대로 못하면 마감 비상이 걸릴 것이라는 점을 기자들은 잘 알고 있다.
데스크는 수요일 오전에도 회의를 한다. 편집장, 편집자, 사진부장, 디자인 실장, 표지 담당 기자 등이 참석해 표지 기사의 이미지, 카피, 기사 분량 등을 정한다. 간혹 표지 기사를 다시 물색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긴급 현안이 발생하면 최종 마감일인 금요일 오후에 표지 기사가 바뀌기도 한다. 수요일 오후, 편집자는 확정된 지면안을 바탕으로 편집·디자인·인쇄 작업의 기초가 되는 ‘지면 배열표’를 작성한다. 대수로울 것 없는 단순 도표 같지만, 모든 작업의 이정표 구실을 한다.
이런 흐름과 별개로 별동대처럼 움직이는 디지털팀도 있다. 종이 잡지 에서는 ‘알파고’ 같은 존재다. 의 기사를 짧게는 30분 단위로 온라인에 띄운다. 휴일에도 팀 자체적으로 당직자를 두는 만큼 주중, 주말이 따로 없다. 매주 기사를 모바일에서 읽기 좋게 재구성해 출고하는 일도 있다. 팟캐스트 ‘정기고’(정기독자 꼬시고 싶은 방송) 기획, 섭외, 제작도 디지털팀의 몫이다. 카카오톡 판매를 시작한 이후에는 정기독자 확대 업무도 맡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채권 추심의 날’ 금요일</font></font>의 진짜 업무는 목요일부터다. 오전부터 순차 마감이 시작된다. 취재기자가 기사를 작성해 ‘집배신’(기사 작성·송고 프로그램)에 띄운다. 교열에서 글의 오류를 점검하면, 편집자는 제목을 정하고 사진부와 협의를 거쳐 어떤 사진을 사용할지 정한다. 이어 편집장의 ‘데스킹’이 이어진다. 기사를 손보거나 재작성을 지시할 수도 있다.
편집장 손을 떠난 기사는 디자인팀이 실제 지면으로 구현하고, 프린터로 인쇄된 예비 지면 ‘대장’이 나온다. 담당 기자와 편집자, 사진부장, 편집장이 두어 차례 검토와 수정을 거듭한 끝에 편집장이 최종 ‘오케이’ 표시(대장에 실제로 ‘OK’라고 쓴다)를 하면, 해당 지면이 PDF 파일 형태로 인쇄소에 넘어간다. 대개 목요일에 전체 기사의 3분 1가량이 마감돼야 한다. 그래야 토요일 새벽까지는 지면 제작을 완료할 수 있다.
금요일 마감은 더 치열하다. 오전 9시부터 기사 출고와 마감이 반복된다. 편집장의 독촉도 본격화한다. “홍○○ 기자, 예상 마감 시간 알려주세요” “홍○○씨, 1시간 안에 기사 안 보내면 마감을 끝낼 수 없습니다.” 점심 식사는 도시락을 시키거나, 회사에서 20여m 떨어진 중화요릿집 ‘남선’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저녁 6시께가 되면 ‘마감 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는다. 일부 기자들은 해가 저물 무렵 시작된다는 ‘석양주’(夕陽酒)에 물든다. 주요 기사를 빼고는 대부분 마감된 시점이다.
이때부터 기다림이 시작된다. 기사를 넘긴 뒤, 점검용 인쇄본인 ‘대장’을 기다린다. 시인 황지우는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고 노래했다. 에서 ‘기다림은 간을 상하게 한다’. 회사 길 건너편 맥줏집 ‘스핑크스’ 또는 드라마 에 등장해 신흥 인기 식당으로 떠오른 ‘마포 돼지껍데기집’이 주요 아지트다. 저녁 8시께, 편집장은 ‘만리재에서’ 집필을 시작한다. 잠시 짬이 나면 그는 석양주 무리에게 텔레그램으로 ‘특별 지시’를 내린다. “스핑(크스)에 누가 있나? 번데기(탕) 하나 시켜줘. 10분 안에 갈게. 소주 하나, 맥주 하나도!”
<font size="4"><font color="#008ABD">심신 재활의 시간은 없다</font></font>허름한 맥줏집과 어지러운 뉴스룸을 오가는 밤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금요일이 토요일로 바뀌어 새벽 1~2시 무렵이면, 최종 ‘오케이’된 모든 지면이 인쇄소로 넘어간다. 먼저 퇴근한 기자들도 있지만, 편집장·편집자·교열기자·사진부장·디자이너 등은 늘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다. 그들에게 미안하여 또는 그냥 취하고 싶어서 술집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은 최종 마감 뒤 ‘한 주를 마감하는 술자리’를 이어간다.
토요일은 쉰다. 새벽까지 쌓아둔 숙취와 함께 점심 때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기자 19명 가운데 기혼자는 14명이다. 다음주를 위한 심신 재활의 시간 같은 건 없다. 40대 중반 나이에 고교생 딸을 둔 편집장은 “하루 종일 잔다”고 했다. 일요일 사무실은 주로 안 편집장이 지킨다. 그는 회사로 배달된 인쇄본을 확인하고, 표지를 오려 벽에 붙인다. 다음주 구상도 해야 한다. 일요일 늦은 밤은 기자들에게 힘든 시간이다. 아이템 걱정이 시작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야.’ 눈을 감는다. 그렇게 의 한 주가 저문다.
<font color="#008ABD">글</font>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font color="#008ABD">사진</font>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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