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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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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보트 44개 이틀 만에 점검 끝내

뗏목 1개당 3시간 점검 필요한데 ‘부실덩어리’ 점검… 44개 중 2개만 펼쳐지고 슈터·비상 미끄럼틀 모두 작동 안 해
등록 2015-10-22 18:23 수정 2020-05-03 04:28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45분께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 출동한 123정 해경이 세월호 구명뗏목을 터뜨리려고 시도했다. 안전핀을 뽑고 작동줄을 당겼지만 44개 구명뗏목 가운데 바다에서 펼쳐진 것은 단 2개뿐이었다(사진은 상단 왼쪽부터 시간순). 해양수산부 제공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45분께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 출동한 123정 해경이 세월호 구명뗏목을 터뜨리려고 시도했다. 안전핀을 뽑고 작동줄을 당겼지만 44개 구명뗏목 가운데 바다에서 펼쳐진 것은 단 2개뿐이었다(사진은 상단 왼쪽부터 시간순). 해양수산부 제공

검사 구명보트가 바다 앞에 있었다면 뛰어들었을 것 같은가요.
수진(생존 학생) 저는 뛰어내렸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쭉 미끄러져 넘어지면 되니까요.
검사 바다도 보이고 그쪽으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에 무서웠을 텐데요.
수진 아침에 거기(4층 좌현 갑판)서 바다도 구경했는데요. 많이 가까웠고 파도도 잠잠했기 때문에 오히려 안 무서웠을 것 같아요.
“구명보트 있었다면 바다로 뛰어들었을 거예요”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인 경기도 안산 단원고 3학년 수진(18·가명)이 2014년 7월29일 살인죄 등으로 기소된 세월호 선원 재판의 증인으로 나와 검사와 나눈 문답이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좌현으로 기울 때 수진은 친구들과 4층 복도에서 대기하다가 해경 헬기를 타고 탈출했다. 왼쪽으로 급속히 기우는 배에서 소방호스를 허리에 묶고 오른쪽으로 나오는 일은 산악 등반보다 위험했다. 한 차례 굴러떨어졌다가 어른들이 겨우 소방호스를 끌어줘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던 수진이 친구들과 “쭉 미끄러져” 좌현 갑판으로 탈출하지 않은 이유는 “구명보트”가 없어서 “(헬기가 있는) 위쪽으로밖에 못 가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때 팽창식 구명뗏목은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배에 실려 있던 25인승 구명뗏목 44개는 1천 명 이상을 태울 수 있는 규모였지만 사고 당시 바다에서 펼쳐진 것은 단 2개였다. 그마저도 침몰 직전에 출동한 해경이 핀을 뽑고 강제로 당겨서 떨어트린 것이다. 팽창식 구명뗏목은 배가 침몰해 수심 4m 이상 잠기면 자동으로 떨어져 펼쳐지도록 설계돼 있다. 바다로 탈출한 승객들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구조설비인 셈이다.

그러나 세월호의 구명뗏목은 단 한 개도 자동으로 터지지 않았다. 4개의 강하식 탑승장치(슈터)도 마찬가지였다. 5~6층 빌딩만큼 높은 세월호 갑판에서 바다로 탈출하려면 비상탈출용 미끄럼틀이 필요한데 그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초기에는 구명뗏목이나 슈터를 선원들이 줄로 감아놓거나 열쇠로 잠가놓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구명뗏목의 정비관리 책임자인 김영호 2등 항해사에게 수사관이 물었다.

수사관 구명뗏목을 와이어나 체인, 자물쇠로 잠가놓은 것 아닌가.
김 항해사 절대 그런 사실 없다. 사고 당일 출항하기 전에 눈으로 봤는데 묶어놓은 것은 없었다.
수사관 정상 작동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김 항해사 모르겠다. 2014년 2월 한국선급 검사를 받을 때 점검을 했다.
(2014년 4월21일 김영호 피의자 신문조서)

세월호의 구명뗏목과 슈터는 1994년 5월에 제작된 낡은 제품이었다. 해양안전설비업체인 ‘한국해양안전설비’는 세월호가 도입된 직후인 2012년 10월과 2014년 2월에 구명뗏목과 슈터를 정비했다. 이 업체는 구명뗏목의 ‘우수정비사업장’으로 지정돼 있었다. 선박안전법은 우수정비사업장(현 지정정비사업장)이 구명 장비를 점검·검사하면 그 전문성을 인정해 해양수산부의 검사에도 합격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부의 선박검사를 대행하는 한국선급이 우수정비사업장의 안전점검 ‘양호’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명의 빌려와 전문가 최소인원기준 허위로 맞춰

2014년 2월 세월호를 중간 검사한 한국선급 검사원 조아무개씨도 한국해양안전설비가 구명뗏목이나 슈터 등을 점검할 때 직접 입회하지 않았다. “우수정비사업장에서 정비해 작성한 보고서 등만 확인했다.”(2014년 4월19일 목포지방해양안전심판원 조사)

그러나 한국해양안전설비는 ‘부실덩어리’였다. 허위 문서로 우수정비사업장으로 지정받은데다 2014년 2월에는 세월호의 구명뗏목과 슈터를 대충 정비했다. 선박안전법상 우수정비사업장으로 지정을 받으려면 최소 전문가 6명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해양안전설비 김해지점에는 직원이 2명밖에 없었다. 경력 기술자의 명의와 자격증을 빌려 회사의 직원인 것처럼 허위 조직도를 작성했고, 그 결과 2013년 7월 부산지방해양항만청으로부터 ‘구명뗏목’ 우수정비사업장으로 지정받았다.

게다가 한국해양안전설비는 구명뗏목뿐 아니라 우수정비사업장으로 지정받지 않은 ‘슈터’도 제멋대로 정비했다. 슈터는 구조가 복잡해 구명뗏목 정비보다 전문성이 더 필요한데도 그랬다. 한국선급은 한국해양안전설비가 슈터 우수정비사업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구명뗏목과 슈터의 안전점검 보고서를 모두 인정해버렸다. 2012년 세월호의 구명뗏목과 슈터가 한국에서 첫 안전점검을 받을 때도, 2014년 중간검사를 받을 때도 그랬다.

세월호의 쌍둥이배라고 불리는 오하마나호도 마찬가지였다.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검찰이 오하마나호에 현장검증을 나가 한국해양안전설비가 2013년 3월 정비한 구명뗏목을 점검했다. 세월호처럼 구명뗏목은 하나도 작동하지 않았다. 거치대가 심하게 녹슬거나 페인트로 뒤엉켜 있었다.

우수정비사업자의 자격을 허위로 따낸 한국해양안전설비는 구명뗏목과 슈터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았다. 2014년 2월 세월호의 구명뗏목을 검사할 때 가스팽창시험 등 필수 검사 항목들을 생략해버렸다. 대신 수동으로 구명뗏목에 가스를 조금만 넣어 부풀어오르는지만 확인했다. 검사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구명뗏목 1개를 점검하는 데 3시간가량이 필요한데 세월호의 구명뗏목 44개를 철야 작업도 없이 이틀 만에 대충 끝냈다. 슈터에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고는 마치 정상적인 점검을 마친 것처럼 구명뗏목 등을 세척해서 용기에 넣어 세월호에 탑재했다. 물론 안전점검 보고서의 주요 항목은 모두 ‘양호’로 적었다. 한국선급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세월호에 선박검사증서를 발급했다.

구명장비 검사 책임자 모두 감형

광주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경환)는 2015년 6월 선박안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국해양안전설비 사장 송아무개(55)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깬 것이다. 이사인 조아무개(49)씨도 징역 1년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공동 운영자였던 이아무개(41)씨도 벌금 1천만원에서 벌금 500만원으로 감형됐다. 실제 세월호 검사기록지를 작성한 양아무개(41)씨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이 유지됐다. 그리고 우수정비사업장의 부실 검사를 확인하지 못한 한국선급에는 면죄부를 줬다.

“우수정비사업장에서 검사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채 검사 결과를 허위 게재할 경우 한국선급은 이를 발견할 수 없고 그 결과를 신뢰해 선박검사증서를 발급할 수밖에 없다. 우수정비사업장을 지정해 전문적·효율적인 점검을 도모한 제도 취지를 보면 한국해양안전설비의 행위는 한국선급의 선박검사 업무를 방해한 결과를 초래했다.”(2015년 6월9일 광주고법 판결문)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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