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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먼저 구조한 사실, 해경은 알고 있었다

세월호 기관장, 123정 조타실에서 “관청 사람”과 전화 통화했다 증언했지만 해경은 짠 것처럼 발뺌 검찰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은 채 수사 끝내 세월호 특조위가 진실 밝혀내야
등록 2015-05-20 17:07 수정 2020-05-03 04:28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 도착한 목포해양경찰서 경비정(123정)이 최초로 구조한 것은 승객이 아닌 선원들이었다. 123정 대원들이 지난해 4월28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서망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구조 당시를 재현하고 있지만, 이는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 도착한 목포해양경찰서 경비정(123정)이 최초로 구조한 것은 승객이 아닌 선원들이었다. 123정 대원들이 지난해 4월28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서망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구조 당시를 재현하고 있지만, 이는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해양경찰 수뇌부가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승객보다 선원들이 먼저 구조된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세월호 선박직 승무원 15명은 모두 탈출해 구조됐다. 지금껏 해경은 선원들을 최초로 구조한 사실을 해경 수뇌부는커녕 현장 구조 세력조차 몰랐다고 주장해왔다. 승객 구조를 최우선으로 삼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해나가는 근거이기도 했다.

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을 보면, 해경이 최초로 구조한 박기호(54) 세월호 기관장은 검찰 조사에서 “구조 직후 해경 경비정인 123정 조타실에서 해경 수뇌부와 휴대전화로 통화했다”고 진술했다. 박 기관장은 오전 9시38분께 고무단정으로 구조돼 9시40분께 123정으로 옮겨졌다. 그는 123정 조타실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은 검찰이 현장 조사한 실제 123정 조타실과 일치했다.

박 기관장의 진술에 대해 해경은 검찰 조사에서 “처음 듣는 얘기”라고 극구 부인했다. 검찰은 엇갈린 진술에 대해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침몰 사고 당시 박 기관장과 통화한 해경 수뇌부가 누구인지, 왜 선원을 먼저 구조했는지 밝혀내지 않았다. 칼날이 중심부로 향하지 않도록 수사 수위를 조절하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가 아닌지 의심된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진상을 규명해야 할 과제가 하나 더 늘었다.

해경이 “세월호 책임자 있느냐”고 물었다
“해경이 ‘지금 구조된 사람들 중에 세월호 책임자 있으면 전화 좀 받아보라’고 소리쳤다. 핸드폰 통화 상대방이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관청 사람인 거 같았다.” (세월호 기관장)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35분께 123정(100t급)은 세월호 100m 앞에 도착하자마자 고무단정을 내렸다. 세월호는 약 52도 기울어져 있었다. 그때 3층 좌현 선미 갑판에서 구명동의를 입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단정은 그쪽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세월호) 접근을 목적으로 선체 중앙부로 갔다가 사람이 보여서 선미로 이동했다.”(박아무개 경장, 2014년 8월12일 법정 증언)

손을 흔든 이들은 박기호 기관장 등 기관부 선원 5명이었다. 일부는 ‘스즈키복’이라 불리는 상하 일체형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한 사람 가운데 해경이 최초로 구조한 것은 승객이 아닌 선원들이었다. 선원들을 123정에 옮겨놓은 뒤 단정은 다시 세월호로 향했다. 오전 9시40분께였다.

당시 구조를 맡았던 123정 대원들은 검찰 조사에서 이들이 선원인 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일 123정장은 “긴박한 상황이라 선원을 찾을 생각을 못했다”고 밝혔다. 김아무개 부장(경위)은 “구조 당시 선원이라는 걸 몰랐고 이후 TV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이아무개 정비팀장(경사)도 “오전 11시께 다른 배로 구조자를 옮기면서 (앞서) 구조된 4~5명은 선원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2014년 7월2일 국회 진상조사에서 “123정 직원들이 그 당시에는 (선원을 구조한 줄) 몰랐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입수한 검찰의 해경 수사기록을 보면, 사고 당시 현장에서 123정은 물론 해경 상황실까지 세월호 선원이 먼저 구조됐다는 사실을 알았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드러난다. ‘최초의 구조자’인 박기호 기관장이 구조된 지 15분 만에 해경의 요청으로 123정 조타실에서 “관청 사람”과 전화 통화를 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검사 123정에 올라타서는 어떻게 됐나.
세월호 기관장 조타실에서 123정의 타를 잡고 운전하는 해경이 “지금 구조된 사람들 중에 세월호 직원이 있느냐, 책임자 있으면 이 전화 좀 받아보라”고 소리를 쳤다. 선장도 없고 해(서) 내가 기관장임을 밝히며 갔더니 핸드폰을 바꿔줬다. 핸드폰 통화 상대방이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관청 사람인 거 같았다.
검사 어떤 대화를 나누었나
세월호 기관장 세월호 상태가 어떤지, 승객은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서 나는 3층 통로에 있다가 구출돼 내부 상황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2014년 6월2일 박기호 세월호 기관장 검찰 진술조서)
세월호 기관장, 123정 조타실 정확히 그려
박기호 세월호 기관장은 구조 직후 123정 조타실에서 해경 수뇌부와 전화 통화를 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검찰 조사에서 박 기관장이 직접 그린 123정 조타실 모습.

박기호 세월호 기관장은 구조 직후 123정 조타실에서 해경 수뇌부와 전화 통화를 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검찰 조사에서 박 기관장이 직접 그린 123정 조타실 모습.

오전 8시48분 세월호가 왼쪽으로 기울 때 박 기관장은 이준석 선장과 커피를 마시려고 조타실에 올라와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다. 맹골수도를 지나 8시45분께 병풍도 변침 구간에 이르자 3등 항해사는 변침을 지시했다. “140도요.” 140도 변침이 완료돼 2분간 항로가 유지된다. “145도요.” 항해사는 두번째 변침 지시를 내렸다. 그때 조타수가 당황해 소리쳤다. “타가 안 돼요.” 세월호 선수가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반대로 배는 급격하게 왼쪽으로 기울었다. 선수 갑판의 컨테이너가 한쪽으로 미끌어지더니 바다로 떨어졌다.

이준석 선장이 티셔츠에 팬티 바람으로 조타실에 들어왔다. 다른 선원들도 모여들었다. 선장은 박 기관장에게 “기관실로 가보라”고 했다. 박 기관장은 발전기를 보호하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나왔다. 기관실로 내려가는데 배가 더 기울어졌다. 미끄러지다가 3층 선미에 기관부 직원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기관실 선원들이 “우리 여기 있어요”라고 불렀다. 박 기관장은 발전기를 포기하고 그쪽으로 합류했다.

비상 부서 배치표를 보면, 위급사태가 발생할 때 기관장은 구명벌 투하, 슈터(구명벌까지 내려가는 팽창식 공기 미끄럼틀) 투하 등을 맡아야 한다. 발전기는 9시15분에 꺼졌다. 박 기관장은 구명조끼를 찾아입고 “현 위치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들었다. 가만히 있던 기관부 선원들은 해경이 보이자 손을 흔들었고 구조가 됐다. 그리고 박 기관장은 123정 조타실에서 “세월호 책임자”로서 “관청 사람”에게 세월호 선내 상황을 보고한 것이다. 그 “관청 사람”에게 해경은 “상당한 경어”를 썼다. 박 기관장은 “전화를 바꿔준 사람보다 통화 상대방의 직책이 더 높다”고 짐작했다.

검사 (123정에서) 타를 잡고 있는 사람이 핸드폰을 바꿔주었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곳이 조타실이었나?
세월호 기관장 네, 123정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조타실과 연결돼 있고 그 뒤쪽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 숙소로 연결돼 있었다. 내가 그림을 한번 그려보겠다.
검사 조타실에서 타를 잡고 있었던 사람은 해경일 것이고, 그 외 다른 해경은 보지 못했나.
세월호 기관장 타를 잡고 있던 사람 외에 1명이 더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사복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이 배가 해경정인지 어선인지도 잘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배가 123정이었고 그래서 그들이 해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검사 123정장 아니었나
세월호 기관장 글쎄, 두 사람 모두 사복을 입었고 나이대가 비슷해 보였다. 40대 정도. 123정장인지는 모르겠다.
(2014년 6월2일 박기호 세월호 기관장 검찰 진술조서)

검찰에서 박 기관장이 그린 그림은 실제 123정 조타실의 모습과 일치했다. 검찰은 이 그림을 법정 증거로 제출한다.(그림)

조타실에 있던 해경들 “처음 듣는 얘기”

박 기관장은 “관청 사람”과의 휴대전화 통화 시간을 “9시55분께, 늦어도 10시 정도”라고 추정했다. 9시38분에 고무단정으로 구조돼 123정으로 5분 내에 옮겨졌고, 10분 정도 지난 뒤 해경이 “세월호 직원은 전화를 받으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 시각 123정 조타실에는 김경일(57) 123정장과 김아무개(52·경위) 부장, 최아무개(53·경위) 기관장, 박아무개(43·경사) 항해팀장 등이 있었다. 김 정장은 해경 수뇌부와 교신하느라 조타실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다른 세 사람은 갑판과 조타실을 오고 갔다. 그러나 하나같이 이들은 세월호 선원이 구조됐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세월호 선원과 해경 수뇌부의 휴대전화를 연결한 적도 없다고 했다.

검사 고무보트를 이용해 첫 번째 구조된 사람들에게 신분이나 선내 상황을 확인한 적이 있는가.
123정장 없다. 인명 구조를 먼저 생각했기에 그것을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검사 고무단정에 탄 (기관부) 사람들이 123정으로 옮겨탈 무렵,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123정장 나는 조타실에 있었다.
검사 당시 구조된 사람들은 기관실 선원이었는데.
123정장 당시에는 몰랐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더라. 선원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 선원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타실에 앉아 있어서 옷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타실에서 보고 업무만 하고 있었다.
(2014년 7월29일 김경일 123정장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검사 (세월호) 기관장 박기호가 123정 조타실에서 세월호 책임자로서 관청 사람과 전화를 받았다는 (진술을 했는데), 전화를 바꿔준 일 있나.
123정 기관장 나는 그런 사실 없다. 내가 계속 조타실에 있기는 있었지만, 고무보트가 사람을 태우고 오면 줄을 잡아주고 했다. 그 상황을 모른다.
검사 전화를 바꿔준 사람의 신체적 특정에 대해 “운동을 했던 사람처럼 목이 작고 어깨가 처지지 않고 일직선으로 돼 있었다. 키도 크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조타실에 누구인가.
123정 기관장 김 부장 같기는 한데 정확히 모르겠다. 항해사는 키가 크고 정장은 키가 제일 작고 덩치도 크지 않다. 김 부장이 덩치가 있어서 아닐까.
(2014년 7월23일 123정 최아무개 기관장 검찰 진술조서)
검사 선원들이 해경에게 선원이라고 밝혔다는데.
123정 부장 123정에 오른 이후에는 선원이라는 사실을 밝힌 적이 없다.
검사 (세월호) 기관장 박기호는 123정 조타실에서 세월호 선원으로 전화 통화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123정 부장 그런 말을 지금 처음 듣는다.
(2014년 6월4일 123정 김아무개 부장 검찰 진술조서)
검사 구조된 이들을 승객으로 생각한 이유가 있었나.
123정 항해팀장 상황 전체가 긴박하게 돌아갔기 때문에 우선 구조된 사람이 선원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2014년 6월4일 123정 박 항해팀장 검찰 진술조서)

누군가는 거짓말하고 있다

이러한 진술은 123정 대원들에게, 그리고 “관청 사람”과 통화에서도 자신을 세월호 선원이라고 밝혔다는 박기호 기관장의 검찰 진술과 완전히 배치된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박 기관장은 123정 해경과 당시 나누었던 대화도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검사 (세월호) 기관장임을 밝히고 핸드폰을 건네받았는데 그 (123정) 해경들이 진술인에게 세월호 내부 구조나 사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던가.
세월호 기관장 (오히려) 내가 “어떻게 된 일이냐”가 물어보자 그쪽에서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등의 말만 했다.
검사 해경 쪽에서 진술인에게 배를 같이 타고 세월호 돌아가서 구조 활동을 같이 하자는 요청이 없었나.
세월호 기관장 지금 생각해도 그게 실수인 것 같은데, 해경도 그런 요청을 하지 않았고 나도 그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2014년 6월2일 박기호 세월호 기관장 검찰 진술조서)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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