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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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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딸기엔 소푼 언니의 눈물이 떨어졌을지 몰라

[함께 읽는 동화] 농어촌 이주노동자 언니·오빠들은 우리의 먹을거리 길러내려 쉬지 못하고 때로는 맞으면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등록 2015-05-06 21:26 수정 2020-05-03 09:54
전자제품 수리기사인 아버지와 콜센터 상담원인 어머니가 정성껏 마련한 지영이의 생일상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을까요.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라는 배를 타고 인천에서 제주로 떠났던 476명 가운데 304명이 따뜻한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버지 없이 사남매를 홀로 키우는 영수 어머니는 왜 장발장은행 문을 애타게 두드리고 또 두드렸을까요. 전세 보증금이 너무 올라 시골로 이사를 해야 했던 지홍이네는 어떤 추억을 만들고 웃음을 되찾았을까요. 어른과 어린이가 나란히 앉아서, 때로는 화르르 웃고 때로는 또르르 눈물 흘리며, 머리 맞대고 함께 볼 수 있는 동화 3편과 만화를 차례로 담았습니다. 어린이도 읽을 수 있도록 큰 글자로 편집했습니다.
취재 정은주·이문영·전진식 기자, 편집 이정연 기자, 디자인 장광석·손정란

일을 끝내자마자 달려온 엄마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쌀을 씻었다.
“미안. 얼른 밥해줄게.”
맛있는 거 해서 같이 밥 먹자더니, 엄마는 늦게 퇴근했고, 아빠는 저녁에도 출근했다. 나는 배가 너무 고팠다.
“이거부터 먹고 있어.”
마트에서 장을 봐온 엄마는 비닐봉지를 뒤적여 딸기를 찾았다. 밥하는 엄마 등을 보다가, 배가 꼬르륵하다가, 오동통한 딸기를 보다가, 침이 쪼르르 고였다.
엄마가 밥솥에 쌀을 안칠 때, 나는 딸기를 깨물어 먹었다.
1년 넘게 하루도 쉴 수 없었대요 지영이가 딸기를 깨물어 먹을 때, 소푼 언니는 딸기를 심습니다.
언니는 캄보디아에서 왔어요. 딸기농장에서 일했고요. 소푼 언니는 일을 너무 많이 했어요. 쉬는 날엔 잠도 자고 친구도 만나고 싶은데, 1년 넘게 하루도 쉴 수 없었대요. 한 달에 226시간 일하기로 했는데 320시간이나 일했대요. 사장님은 일한 만큼 월급도 주지 않았고요. 소푼 언니는 한국은 법이 잘 지켜지는 나라인 줄 알았대요. 와서 겪어보니까 그렇지 않더래요. 언니가 기르고 거둔 딸기가 마트로 보내지면요, 엄마가 지영이 먹이고 싶어서 딸기를 사고요, 지영이는 소푼 언니가 쉬지 못하고 기른 딸기를 맛있게 먹어요.

엄마가 고등어를 프라이팬에 올렸다.
치이이 지글지글.
기름이 튀고 고등어가 익는 소리. 고등어 굽는 연기가 집 안에 가득 찼다.
저녁을 같이 먹는 날이 별로 없었다. 아빠는 거의 집에 없었고, 엄마는 늘 힘든 얼굴로 들어왔다. 엄마는 내 밥을 차려주고 집 안 청소를 하거나 밀린 빨래를 했다. 아빠는 집에 들어오기 어려울 만큼 일이 많았고, 엄마는 집에 돌아와서도 일이 많았다.
그래도 내 생일인데.
치이이 지글지글.
엄마가 잘 구워진 고등어를 밥상에 올렸을 때, 나는 고등어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지영이가 고등어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을 때, 빠데 아저씨는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고등어를 잡습니다.
아저씨는 인도네시아가 고향이에요. ‘빠데’는 인도네시아 말로 ‘큰아빠’란 뜻이에요. 다른 선원들보다 아저씨 나이가 많아서 그렇게 부른대요.
빠데 아저씨는 고등어를 잡다가 배에서 많이 맞았어요. 우리나라 선원 아저씨들이 때리고 욕도 했대요. 한국말 잘 못 알아듣고 일도 빨리 못한다고요. 고등어한테 뿌리는 물을 빠데 아저씨한테 뿌리기도 했어요. ‘때리지 않고 욕만 하면’ 빠데 아저씨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보름달이 뜨는 날 고등어를 실은 배들이 항구로 돌아와요. 아저씨가 커다란 뜰채로 고등어를 퍼서 항구에 뿌리면, 하늘 가득 날던 갈매기들이 고등어에게 달려들어요. 아저씨가 잡은 고등어들이 항구 한쪽을 푸르게 덮을 때, 맛있게 구워진 고등어의 푸른 등을 지영이가 젓가락으로 찔러요.
“지영아, 전화 좀 받아.”
엄마가 상추를 씻으며 말했다.
엄마는 집에 오면 전화 받을 생각을 안 한다. 내가 받으면 엄마 바꿔줄 게 뻔한데도 자꾸 나보고 받으라고 한다.

엄마도, 네이 아줌마도 모두 아파요

엄마는 세상에서 전화기가 가장 겁난다고 했다. 엄마는 하루 종일 전화 받는 일을 한다. 엄마가 일하는 데를 사람들은 ‘콜센터’라고 부른다. 전화하는 걸 영어로 ‘콜’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아빠가 알려줬다. 전화기 만드는 회사가 엄마네 콜센터에 전화 받는 일만 따로 맡겼다고 했다. 전화기가 고장 난 사람, 전화기가 고장 난 듯해 짜증난 사람, 전화기를 바꾸려는 사람, 그냥 심술궂은 사람들이 다 엄마한테 콜해서 묻고 따지고 욕했다. 엄마는 언제나 상냥해야 하고 화도 내면 안 된다고 했다. 콜을 너무 많이 받아서 엄마는 귀도 아프고 속도 아프다고 했다.
아빠 전화였다. 생일 축하한다며 삼겹살 많이 먹으라고 했다.
“빨리 안 오면 엄마가 아빠 거 하나도 안 남긴대.”
아빠는 알았다고 했다. 알았다면서 모르는 것처럼 만날 늦었다.
엄마가 삼겹살 싸먹을 상추를 씻을 때, 나는 아빠가 사온 삼겹살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지영이가 냉장고에서 아빠가 사온 삼겹살을 꺼낼 때, 네이 아줌마는 삼겹살 싸먹을 상추를 기릅니다.
네이 아줌마는 비닐하우스에 상추를 심고 키우는 일을 했어요. 열무도 심었고요. 시금치와 쑥갓도 길렀어요.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면서 아줌마도 비닐하우스에서 살았어요. 비닐하우스는 상추와 열무와 시금치와 쑥갓이 자라는 곳이에요. 아줌마도 비닐하우스에서 상추와 열무와 시금치와 쑥갓처럼 살았어요. 화장실이 없어 삽으로 밭에 구멍을 파서 일을 봤어요. 사장님이 화장실을 만들어주지 않아 아줌마는 화장실에 가야 할 때마다 땅을 팠어요.
시금치와 쑥갓을 거두다 네이 아줌마의 손이 빨갛게 부풀고 까맣게 변했어요. 병원 의사 선생님이 동상이라고 했어요. 더운 나라 캄보디아에서 온 아줌마는 추워서 생기는 병이 있다는 걸 자기 손을 보고 처음 알았대요. 아줌마는 캄보디아에 지영이 또래의 아들이 있어요. 네이 아줌마의 손이 동상으로 빨갛게 부풀 때, 지영이는 냉장고에서 꺼낸 삼겹살을 엄마에게 건넸어요.

모두가 사장인 것 같아요 엄마가 삼겹살을 구웠다.
고등어 구운 프라이팬을 휴지로 닦아내고 삼겹살을 올렸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고등어 구운 연기와 섞여 머리가 아팠다.
아빠가 나랑 엄마랑 같이 먹자면서 삼겹살을 사왔다. 아빠는 엄마 생일 때도 삼겹살을 사오고, 자기 생일 때도 삼겹살을 사온다. 삼겹살과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자마자 아빠는 전화를 받고 다시 나갔다.
아빠한테도 콜이 온다. 수리기사인 아빠는 텔레비전, 에어컨, 세탁기를 고쳐달라는 콜을 받으면 밥을 먹다가도 나갔다. 새벽에도 나갔고, 퇴근했다가도 나갔다. 옷과 얼굴에 기름을 묻혀 올 때가 많았다. 가끔은 어디서 떨어졌다며 다쳐서 들어와 엄마를 놀라게 했다.
엄마가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밥상에 올렸을 때, 나는 삼겹살 하나를 입에 집어넣고 뜨거워서 혓바닥을 데었다.


지영이가 뜨거운 삼겹살을 입에 넣고 혓바닥을 델 때, 또우 삼촌은 돼지농장에서 돼지 밥을 주고 똥을 치웁니다.
또우 삼촌은 아침 일찍부터 돼지를 돌보고 돼지 사는 우리를 청소해요. 삼촌은 돼지 밥부터 먹이고 자기 밥을 먹어요. 아침을 먹고 나면 사장님 밭에서 마늘을 뽑아요. 돼지 사는 집 망가진 데를 고치고요. 다시 사장님 고구마밭과 콩밭에 가서 풀을 뽑아요. 돼지 사는 데 약을 쳐서 나쁜 균도 죽여요. 사장님 누나 밭에서 양파를 캐요. 죽은 돼지는 수레에 실어 갖다버리고요. 사장님 아버지 고추밭에서 고추도 따요. 돼지 기르는 일을 하기로 사장님과 약속했는데, 사장님 가족이 돌아가면서 밭일을 시켰어요. 또우 삼촌은 누가 진짜 사장님인지 헷갈렸어요. 삼촌은 사장님한테 맞아서 일을 할 수 없었던 이틀 말고는 1년 동안 쉰 날이 없었대요.
또우 삼촌이 돼지를 키우며 사장님 가족 밭일까지 할 때, 지영이는 덴 혓바닥이 쓰려 삼겹살을 조심조심 씹어요.

엄마가 마트에서 사온 김치를 접시에 담았다.
콜센터에서 일한 뒤부터 엄마는 김치를 안 담근다. 김치 담그기 힘들다며 마트에서 사 먹는다. 엄마는 콜 때문에 귀가 아프고 속이 아플 때마다 끙끙 앓았다. 아빠는 콜이 없으면 없어서 힘들고, 많으면 많아서 힘들었다. 쉬는 날 잠만 자는 엄마·아빠를 보면서 나는 심심했고 혼자 놀았다.
내 생일 밥상이 다 차려졌다. 고등어랑 삼겹살이랑 상추랑 딸기가 놓였다. 엄마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달걀말이도 했다. 엄마가 김치를 한 조각 집어 먹었다.
“아빠가 언제쯤 오려나.”
아빠는 아직 들어오지 않는다.

빳 언니, 국해 오빠, 티엔 아저씨의 김치 엄마가 김치를 한 조각 집어 먹을 때, 캄보디아에서 온 빳 언니는 김치공장에서 김치를 만듭니다. 빳 언니가 김치공장에서 김치를 만들 때, 중국에서 온 국해 오빠는 가락시장에서 김치 만들 배추를 나르고요. 국해 오빠가 가락시장에서 김치 만들 배추를 나를 때, 베트남에서 온 티엔 아저씨는 강원도 배추밭에서 가락시장으로 보낼 배추를 뽑아요. 티엔 아저씨가 강원도 배추밭에서 가락시장으로 보낼 배추를 뽑을 때, 지영이는 맵다며 김치를 먹기 싫어해요. 지영이가 맵다며 김치를 먹기 싫어할 때, 아빠는 아파트 난간에 매달려 에어컨을 달고 있어요.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박광명(국제앰네스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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