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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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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거부권 막아선 검찰의 무리수

검찰 “자백하려는데 진술 거부 권유했다”는 이유로 김인숙 변호사 징계 신청…

‘세월호 하이힐녀’ 사건 관련자 판결문 등 재판기록을 종합해 따져본 사실관계
등록 2014-11-25 15:07 수정 2020-05-03 04:27

“세월호 집회 현장에서 경찰을 하이힐로 폭행한 ‘하이힐녀’ 진아무개(47)씨가 자백하려 하자 조사실 밖으로 데려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고 강요했다.”
검찰이 최근 김인숙 변호사를 징계해달라고 대한변호사협회에 신청하며 밝힌 징계 이유다. 검찰의 주장은 이렇다. ① 6월13일 서울종로경찰서 앞 커피숍에서 진씨는 김 변호사를 만나 “신발로 경찰관을 때린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변호사는 진술 거부를 권유했다. ② 이날 피의자 신문에 참석한 진씨가 사실대로 자백하려 하자 김 변호사는 조사를 중단시키고 진씨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진술 거부하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적극적으로 진술 거부를 종용했다. ③ 검찰에서 진씨는 김 변호사의 변론 활동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뒤 범행을 자백했다. 검찰은 “김 변호사는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진씨가 진실을 밝히려고 한 상태였음에도 ‘적극적’으로 진술을 못하도록 제지했다. 의뢰인(진씨)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었다”고 결론 냈다. 이 진씨 판결문 등 재판기록 내용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따져봤다.

헌법이 보장한 피의자 방어권

지난 5월31일 밤 10시께 여성 2명이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앞 도로에 쓰러져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김 변호사가 달려갔다. 그는 ‘세월호 법률지원단’으로 집회에 참석했었다. 한 여성은 금방 깨어났지만 진씨는 10분 넘게 의식을 찾지 못했다.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새벽에야 눈을 떴다. 그때 종로경찰서 형사가 찾아와 “진씨가 (하이힐로) 경찰을 때렸다”고 했다. 진씨와, 함께 쓰러졌던 여성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경찰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진씨를 수사했다. 진씨 집으로 찾아온 경찰은 길이 15cm, 폭 5cm의 뒷굽을 가진 이른바 ‘킬힐’을 찾았다. 그 하이힐에 경찰이 머리를 맞아 세 바늘을 꿰매는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진씨는 통굽 구두를 보여줬다. “신고 나간 신발이다. 경찰을 때린 적 없다.” 경찰은 진씨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진씨는 김 변호사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을 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① 자백하는데 진술 거부를 권유했다?
6월13일 오후 1시 1회 경찰 피의자 신문조사를 1시간 앞두고 진씨가 말을 바꾸었다. “경찰을 신발로 때린 사실이 있다. 하지만 통굽 구두라서 그렇게 피가 났을 리 없다.” 킬힐을 신고 경찰을 때려 상처를 입힌 다른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진씨는 생각했다. 김 변호사가 일단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경찰의 증거를 파악하자고 권유했다. 진술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한 피의자 방어권이다. 검찰 조사에서 진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밝혔다.
검사 피의자는 경찰 1회 조사를 받기 전에 변호사에게 범행 사실이 없다고 말했나요?
진씨 아닙니다. 제가 종로경찰서 커피숍에서 변호사하고 얘기할 때 ‘경찰관을 신발로 때린 사실이 있다’고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피해자가 피를 흘리고 그런 것을 저도 몰랐습니다.

② 적극적으로 진술 거부를 종용했다?
오후 2시20분. 경찰은 진술녹화실에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진씨는 폐쇄된 공간에 있으면 갑자기 호흡곤란이 온다며 그곳에서 진술하기 어렵다고 했다. 30분가량의 실랑이 끝에 일반 조사실에서 피의자 신문을 시작했다.
경찰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요?
진씨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경찰 재산관계 및 월수입, 생활 정도를 말씀하십시오.
진씨 진술 거부하겠습니다.
경찰 2014년 5월31일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가한 사실이 있나요?
진씨 그런 것은 모르고, 저는 지갑과 신용카드 하나만 들고 그날 남편을 만나러 청계광장에 갔습니다.

묵비권 행사에도 쏟아지는 질문

진씨가 묵비권(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찰은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마지못해 진씨는 하나둘 답변했다. 오후 3시20분께 김 변호사가 휴식을 요청했다. 경찰이 받아들이자 김 변호사는 진술거부권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만약 진술을 거부할 의사가 있으면 경찰의 질문에 묵비한다고 답변하면 됩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 3을 보면, 경찰과 국가기관은 적극적이고 명시적인 방법으로 진술거부권을 고지하도록 돼 있다. ‘피의자 신문조사’ 첫머리에 진술거부권을 써놓은 이유다. 하지만 피의자가 그 의미를 전부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좀더 구체적이고 상세한 조언은 변호사의 몫이다. 법원 판례가 그렇다. “법률 지식이 부족한 피의자는 자신의 진술이 법적으로 유리한지 불리한지 또는 수사관의 질문 내용이 타당한지 등을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헌법상의 권리인 진술거부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하고 위법·부당한 신문을 방지하기 위해 변호인의 적극적인 도움이 허용돼야 한다. 피의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요청이 없더라도 능동적으로 진술거부권 행사를 권할 수 있다.”
오후 3시25분께 다시 경찰의 신문이 시작됐다. 진씨는 “묵비하겠다”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밝혔다.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쏟아냈다. 진씨는 우울증 약을 보여주며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화장실에 가서 구토하다가 여경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오기도 했다. 진씨는 “경찰이 잔인하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일 집회 현장을 찍은 채증 사진과 동영상을 경찰이 제시했지만 지친 진씨는 보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이날 피의자 신문은 오후 4시10분께 끝났다.

③ 변론이 도움되지 않는다?
6월23일 진씨는 구속영장 실질심사 통보를 받았다. 동영상 등 증거자료를 확인해보니, 진씨가 신발로 경찰을 때리는 장면, 맞은 경찰이 대열에서 빠져 모자를 벗으니 피가 나는 장면 등이 담겨 있었다. 경찰에게 부상을 입힌 사람은 진씨일 수밖에 없었다. 김 변호사는 진씨에게 혐의를 인정하라고 권유했다. 망설임 끝에 진씨가 범행을 인정했다. 그 뒤 경찰 조사는 물론 검찰 조사, 법정에서까지 진씨는 줄곧 자백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1심 선고까지 김 변호사가 변론을 맡았다. 구속 기소됐던 진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항소심까지 맡아달라 했는데

검찰은 왜 변호 활동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을까? 그 근거로 검찰의 피의자 신문 때 김 변호사가 동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피의자 신문 때 변호인이 참여하는 비율은 0.01%에 그친다. 특히 자백 사건에서는 참여율이 더 저조하다. 김 변호사가 반박한다. “진정 변호 활동이 쓸모없다고 생각했다면 진씨가 나를 해임했을 것이다. 하지만 1심 선고 때까지 변호인으로 활동했고 진씨가 항소심까지 맡아달라는 의사를 내비쳤다.”
김 변호사가 결국, 징계를 받지 않더라도 검찰은 잃을 게 없다.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톡톡히 누릴 테니 말이다. 진술거부권을 적극적으로 권유할 변호사가 얼마나 더 있겠는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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