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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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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은 자살골을 넣고 있다

반대 시위 끊이지 않는 월드컵 개최국 브라질…
극심한 빈부격차·부실한 공공서비스·불안한 치안 문제 등

삶의 질은 월드컵 예선 탈락감
등록 2014-06-11 15:46 수정 2020-05-03 04:27

월드컵을 직접 보러 브라질에 간다고 잔뜩 들떠 있는 친구 곤살로는 며칠 전에는 가방도 없이 빈손으로 수업에 왔다. 칠레 국가대표팀 경기 등 월드컵 입장권 8장과 브라질행 비행기표를 일찌감치 샀다. 한 달 가까이 머물 호텔은 예약했느냐고 물었더니, “텐트를 가져가. 어떻게 되겠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곤살로는 “내게는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꿈이야. 옆 나라에서 개최할 때 못 가면, 언제 월드컵을 직접 볼 수 있겠어?”라며 싱글벙글이다. 여자친구는 뭐라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대신 월드컵을 선택했다고 화내서 싸우다 헤어졌어”라고 말했다.

“월드컵 개최를 반대한다” 43%에 달해

이처럼 세계의 수많은 곤살로들에게 월드컵은 대축제다. 그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 그런데 정작 개최국 브라질에서는 월드컵 반대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4월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했을 때, 수없이 들은 말은 “우리한테는 다른 우선 사항이 있다”였다. 5월22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월드컵 개최를 반대한다는 답변이 43%에 이른다. 지금은 축구장 공사에 돈을 쏟아부을 때가 아니라, 교육·의료·교통 등 공공서비스 개선이 더 급하다는 것이다.
빈민, 버스기사, 원주민, 교사, 지하철 노동자, 경찰…. 코앞에 닥친 월드컵과 10월 대통령 선거가 임금 인상 등 요구사항을 관철할 좋은 기회임을 고려해도, 파업과 시위 강도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왜 ‘축구의 나라’ 브라질의 국민이 월드컵 대신 공공서비스 개선을 외치는지 들여다보자. 유엔중남미경제위원회(ECLAC) 자료를 보면, 브라질의 1인당 국민소득(명목GDP)은 2005년 4738달러에서 2012년 1만1334달러로 두 배 넘게 늘어났다. 빈곤율은 2005년 36.4%에서 2012년 18.6%로 절반으로 떨어졌다. 극빈층도 같은 기간 10.7%에서 5.4%로 줄었다. 그만큼 소득수준은 많이 나아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눈높이가 올라간 만큼 공공서비스는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 국민의 삶의 질은 브라질 축구 실력과 비교가 안 된다.

브라질의 버스요금은 3헤알이다. 우리 돈 약 1350원이다. 반면 월 최저임금은 724헤알, 약 32만5천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6월 버스요금 인상이 전국 단위의 시위로 확산된 것은 ‘먹고살기 힘들다’는 들끓는 불만에 기름을 부은 탓이었다.


의사 1인당 환자 수를 보면, 2011년 기준 700명으로 2010년 672명에서 더 나빠졌다. 의료서비스가 발달한 쿠바(144명)는 제쳐두더라도, 코스타리카(432명)·멕시코(459명)·페루(585명)보다도 열악하다. 기대수명은 73.2살로 칠레(78.9살)·멕시코(76.6살)·아르헨티나(76살)는 물론 중남미 평균 74.7살보다 낮다. 비싼 의료비 부담 탓에, 한번 아프면 말 그대로 가계가 휘청한다. 의료비 지출 때문에 일시적으로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가구의 비율이 19.9%로, 중남미 18개국 평균(11.3%)을 훨씬 웃돈다. 문자 해득률은 2011년 기준 90.4%로 이웃 칠레(98.6%)·아르헨티나(97.9%)보다 낮고 중남미 평균(91.5%)에도 못 미친다. 상수도 보급률도 2012년 기준 90.4%로, 아르헨티나(99.8%)나 칠레(96.8%), 멕시코(91%)에 뒤진다. 하수도 보급률은 더 떨어진다. 62.7%로 칠레(93.7%)·멕시코(87%)·콜롬비아(86.4%)보다 열악하다. 가장 기본적인 공공서비스가 이런 수준이다.

월드컵 앞두고 물가상승률 26%

그런데도 치안은 더 불안하다. ‘폭력적 범죄의 위협을 느낀다’는 데 응답자 87.3%가 동의했다. 2009년 76.6%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중남미 18개 나라 평균(76.7%)보다 훨씬 높다. 사정이 이러하니, 신·개축한 경기장은 월드컵 우승감이지만, 삶의 질은 월드컵 예선 탈락감이다. 축구장 대신 공공서비스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센 이유다. 그런데 월드컵 경기장 건설 비용만 약 80억헤알(약 3조6천억원)이 들었다. 정치는 삶을 외면하고, 인프라 건설비 횡령 등 부패까지 겹쳐 검찰 조사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반대자들의 화를 돋우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이다. 2012년 기준 브라질 상위 10%는 브라질 전체 소득의 41%를 차지했다. 베네수엘라(23.6%)는 물론 아르헨티나(28.8%), 멕시코(31.4%) 등을 제치고 중남미 18개 나라 가운데 가장 심각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인 거대 예수상이 있는 코르코바두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저택들이 리우의 절경을 누리고 있다. 그 절경 사이, 멀리 산비탈에 허물어질 듯한 빈민촌 파벨라가 곳곳에 덕지덕지 들어서 있다. 소득분포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봐도, 2012년 기준 0.567에 이른다. 선진국과는 비교할 것도 없고, 중남미 평균(0.496)보다 훨씬 더 높다.
그러니 서민들은 “월드컵 한다고 나한테 좋을 게 뭐 있나?”라고 묻는다. 브라질 정부는 경제적 효과를 애써 홍보하고 있지만, 값비싼 월드컵 입장권은 제쳐두고라도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이들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일이다. 세계인의 축제라지만 ‘나의 축제’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 인상은 삶을 더욱 옥죄고 있다. 6월4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85%가 인플레를 최대 문제로 꼽았다. 치안불안(83%), 공공보건(83%), 부패(78%)보다 더 걱정하고 있다. 특히 월드컵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올해 사이 물가가 껑충 뛰었다. 지하철 노동자는 물가상승률이 26%에 이른다며 35.5%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한국 사람들은 칠레 물가가 한국보다 결코 낮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브라질 사람들은 칠레에 관광을 와서 가격이 싸다며 쇼핑을 즐긴다. 그만큼 브라질 물가가 높다는 얘기다. 지난해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버스요금은 3헤알이다. 우리 돈 약 1350원이다. 반면 월 최저임금은 724헤알, 약 32만5천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6월 버스요금 인상이 전국 단위의 시위로 확산된 것은 ‘먹고살기 힘들다’는 들끓는 불만에 기름을 부은 탓이었다.

월드컵은 한 달이면 끝이지만

월드컵 반대 시위가 내내 끊이지 않자, ‘브라질 사람들이 월드컵을 반대해?’라며 의아해하는 반응도 많았다. ‘브라질=삼바+축구’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고단한 하루하루의 삶에는 눈감은 탓이다. 세계적 관광지 리우의 코파카바나 해변 앞 상가의 뒷골목에는 주말마다 채소와 과일을 파는 장이 서고,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는 사람들이 몰린다. 공원에서 사람들은 조깅도 하고 호수를 떠다니는 오리에게 모이를 주면서 주말을 보낸다. 바닷가에서 비치발리볼을 하기도 한다. 축구에만 미쳐서 사는 게 아니다. 수많은 곤살로들은 월드컵에 갔다가 돌아오면 그만이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행사치레 뒤에도 거기서 살아간다. 범죄가 들끓어 툭하면 외신을 장식하는 파벨라에도 사람이 산다. 4년에 한 번 한 달간 열리는 월드컵이 1년 365일 하루하루의 삶을 달래지 못한다.
브라질의 축구 영웅 펠레는 월드컵 반대 시위에 대해, “축구가 모든 것을 잠재우고 정치는 축구에 묻힐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울려퍼지고, 선수들이 뛰고, 함성이 울려퍼지고, 그리고 골~. 월드컵은 그렇게 팍팍한 삶을 잊게 만들까? 시위가 계속되든, 축구에 파묻히든, 브라질은 이미 몇 개의 자살골을 넣은 듯 보인다.

산티아고(칠레)=김순배 통신원 otromundo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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