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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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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처갓집에 태양광발전 놔드려야겠어요

대기업 위주의 한국 벗어나 캄보디아로 간 ‘에너지팜’,
필리핀에 도서관 짓는 ‘공감만세’, 다문화 통·번역가 모임 ‘아시안허브’
등록 2014-06-07 12:50 수정 2020-05-03 04:27
김대규 에너지팜 대표(맨 앞쪽)가 2012년 캄보디아 이삭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양광발전 설비를 구축하며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다. 에너지팜 제공

김대규 에너지팜 대표(맨 앞쪽)가 2012년 캄보디아 이삭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양광발전 설비를 구축하며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다. 에너지팜 제공

신학대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한 김대규씨는 2003년 네팔 여행에서 ‘새로운 미션’을 찾았다. 수도와 전기 시설이 없는 주거지역에 사는 빈민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아시아의 빈곤지역에 물과 전기를 보급하는 삶을 꿈꾸게 된 김씨는 경상남도 산청군의 대안기술센터에 합류했다. 대안기술센터는 지역공동체의 정치·문화·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적정기술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비영리단체다. 이곳에서 소형 풍력발전기, 자전거 인력발전기, 소형 태양광발전 설비, 태양열 조리기를 만들며 기술을 익힌 김씨는 2008년 1인 기업으로 시작해 2011년 ‘에너지팜’(energyfarm.kr)이라는 소셜벤처를 설립했다. 빈곤지역에 적정기술을 적극 전파하려면 비영리적일 뿐만 아니라 기업적 방식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김씨는 2011년 7월부터는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캄보디아의 이삭학교에 적정기술을 보급하고 교육해왔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약 70km 떨어진 타케오주에 있는 이삭학교는 한국의 선교사가 농업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10년 전에 세운 비정규 학교다. 에너지팜 직원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캄보디아로 날아가 타케오의 청년들에게 태양열 조리기와 가정용 태양광발전 설비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했다. 그 성과로 지난해 봄 이삭학교 출신 청년 10여 명으로 구성된 소셜벤처 ‘에코솔라’가 설립됐다. 그러자 공공기관·대기업·비영리기관에서 해외지원사업 문의가 쏟아졌다. 지난해 에너지팜은 에코솔라와 함께 태양열 조리기 100대와 가정용 태양광발전 설비 60기를 제조해 설치했다.

다국적 네트워크 이용하는 2세대 출현

캄보디아 사람들은 야자나무에서 추출한 수액을 졸여 사탕을 추출하기 위해 장작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산림 황폐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에코솔라는 장작 대신 태양열 조리기를 사용해 ‘태양열 팜슈가’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에너지팜에 “처갓집에 태양광발전 설비를 놓아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 캄보디아 여성과 결혼한 한국인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처갓집에 가정용 태양광발전 설비를 선물하고 싶다는 사연이었다.

김대규 에너지팜 대표는 “자전거 발전기만 해도 한국에서는 체험과 교육 장비로 국한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학교 기숙사에서 야간 조명을 위해 실제로 사용하는 등 적정기술에 대한 현실적 절박함이 있다”며 “한국 정부가 에너지 산업을 대기업 위주로 진흥하면서 우리 같은 소셜벤처가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라 국제사업을 주력으로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벤처기업인 소셜벤처. 2000년대 후반 1세대 청년혁신가들이 창업한 소셜벤처 중엔 아시아에서 성과를 거두는 곳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다국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창업하는 글로벌 소셜벤처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들을 2세대라 부른다.

2008년 대학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던 고두환씨는 선배의 추천에 따라 타이 치앙마이로 국제봉사활동을 떠났다. 이듬해 필리핀의 빈민지역으로 옮겨간 그는 방송사 통신원, 국제기구 자원봉사자 등으로 활동하며 생태관광과 책임여행, 공정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시아의 사회문제를 풀 수 있는 방식으로 공정여행 사업을 꿈꾸게 된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고씨는 2010년 초 대학생 동료들과 함께 ‘공감만세’(fairtravelkorea.com)를 창업하고, 필리핀에서 ‘카투아완 카미’라는 이름의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필리핀 마닐라의 극빈지역 아이들을 위해 지역 빈민조직 및 국제기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무료 공부방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여행상품 매출의 90%를 여행이 이뤄지는 지역사회에서 일으키고, 이익의 10%는 환경단체에 기부하며, 지역주민 10명을 직간접 고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항공을 제외한 교통수단과 숙소 등 모든 여행 인프라도 대중교통이나 시민단체 등 현지 주민의 것을 이용한다.

공정여행 상품 뒤이어 만든 도서관

지난해 말에는 필리핀 루손섬 북부 이푸가오 지역 최초의 도서관인 ‘아시아 평화도서관’을 열었다. 이 지역의 계단식 논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유명하지만, 워낙 가난한 지역이라 도서관 하나 없었다. 경제난으로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유지되기 어려워지면서 계단식 논마저 훼손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공감만세는 이푸가오 지역 청년조직인 시트모(SITMo), 주정부, 주관광청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컨소시엄 기관들은 이푸가오 지역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한국수출입은행의 지원을 받아 도서관을 마련했다. 이 도서관은 이푸가오 지역의 전통문화 수집·연구 사업, 전통문화교실 운영, 공정여행 가이드 양성, 이푸가오 관광객을 위한 공정여행 정보센터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타이 치앙마이에서도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고두환 대표는 “창업할 때부터 여행을 통해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는 있었지만, 사업을 하면 할수록 지역 재생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소셜벤처를 창업하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에서 홍보와 사회공헌 업무를 담당하던 최진희씨는 2004년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 해외봉사단원으로 캄보디아에 갔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시엠레아프의 한 대학에서 2년6개월간 한국어를 가르쳤고, 귀국한 뒤에도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제자들과 교류를 계속했다. 재취업과 결혼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YMCA 등 시민단체에서 한국어 교육 등 자원봉사를 하며 캄보디아 결혼이민자들을 만났다. 최씨는 “양쪽 언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부부 상담도 자주 도와드렸는데, 두 나라 간 쌍방향 이해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의 권익이 높은 동남아 국가에서 성장한 결혼이민자들은 가부장적인 시댁과의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결혼이민자들은 직업이나 사회활동에 대한 욕구가 많지만, 시부모나 남편의 반대로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회사 일과 자원봉사를 병행하기 힘들어진 2013년 초 최씨는 결혼이민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다문화·언어강사나 통·번역가로 활동하는 소셜벤처 ‘아시안허브’(asianhub.kr)를 창업했다.

정부·대기업, 민족적 시각 벗어나야

국내 소셜벤처들이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국내에도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 문제와 소외계층이 많으니 지금은 국내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혹은 “해외에 지사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소셜벤처를 육성하는 사업은 지원하기 곤란하다”는 입장도 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 소셜벤처 네트워크 모임 ‘아이리스’(IRIS)를 운영하는 김동훈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나눔사업부문 부장은 “국제개발협력의 관점에서 보면 직접 사업보다 현지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며 “한국에 에너지팜이 있고 캄보디아에 에코솔라가 있으면 전체를 다 합쳐서 하나의 다국적 소셜벤처로 간주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근 젊은이들이 경제적 활동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의 범위를 전 지구적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지만, 직접 해외에서 체득하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사업 모델을 구상해 현장성이 약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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