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명의 실종자(5월23일 기준)가 아직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5월20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실종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야, 집에 가자!” “○○야,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지난 5월20일 오후 3시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에 ‘대한민국 국민’인 실종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조차도 국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날 대국민 담화에 대한 가족들의 공식 입장 표명이었다. 가족들의 바람은 간명했다. “나를 향해 아빠라고, 엄마라고 불러주었던 내 딸, 내 아들을 돌려주십시오. 마지막 한 명까지 우리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구조에 총력을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는 차디찬 바다에 아직도 잠겨 있는 아들·딸의 이름을 하나씩 외쳤다. 황량한 바다를 향한 가족들의 외침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같은 엄마들 만날 때가 제일 편해요”“저기요.”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뒤돌아보니 초췌한 얼굴에 쓰러질 듯이 가냘픈 40대 여자였다. 세월호 가족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입고 있던 검정색 겉옷을 벗어 내게 건넸다. “입으세요.” 이날 오전에 비가 내린 팽목항은 쌀쌀했다. 전날 급하게 내려오느라 겉옷을 챙기지 못한 기자는 일회용 우의로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아까부터 많이 추워 보이더라고요.”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데 그가 말했다. “추우면 안 돼요. 춥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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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9일 16시30분] 세월호 희생자 가족 31명을 태운 버스가 경기도 안산에서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출발했다. 이날 오전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 대한 공식 입장을 실종자 가족들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은 가족대책위의 협조를 받아 1박2일 동안 동행 취재했다.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버스에 오른 가족들은 오랜 친구처럼 다정했다. 빈자리가 많은데도 엄마는 엄마끼리, 아빠는 아빠끼리 같이 앉았다. 엄마들은 손을 꼭 잡고 귀엣말을 속삭이며 간간이 미소도 지었다. “그래도 같은 엄마들 만나 이야기할 때가 마음이 제일 편해요. 집에 가면 엉엉 울고 특히 아침에 눈뜨면 미칠 것만 같거든요.” “뭔가 뭉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요. 갑자기 욕설도 터져나오고. 생전 하지 않던 욕들을, 나도 모르게 길 가다가도, 잠자다가도 한다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듣고 깜짝깜짝 놀라죠. 그 모습에 내가 더 놀라고. 아픔을 같이 나눈 엄마들은 그 마음을 다 이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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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충남 홍성군 홍성휴게소에 들르자 가족들이 호두과자를 한 봉지씩 샀다. 대통령 담화를 TV로 보다가 점심을 대충 때운 이들이 있어서였다. 특히 ‘해경 해체’라는 소식에 진도에 있는 실종자 가족은 통곡하기도 했단다. “버려졌구나, 우리가. 이제는 잊혀졌구나” 울부짖으면서. “한 부모는 ‘이제 남은 일은 우리가 다 같이 죽어 없어져야 하는 거구나. 그래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구나’라고 했다”고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이 전했다. “항간에선 이렇게 말합니다. 이미 죽었는데 그냥 인양하면 되지 왜 그렇게 실종자에 집착하냐고.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의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비록 죽었더라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려는 철학, 생명의 소중함을 우리나라가 잃어버렸기에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제라도 마지막 실종자까지 구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해야 이후 대책도 의미가 생깁니다.”
“유가족 맞습니까?” 당당하던 경찰[19시20분] 전북 고창군 고인돌휴게소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기로 했다. 늦은 시간에 진도에 도착해 밤샘 회의를 할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아빠들이 귀찮다고 내리지 않으려 하자 엄마들이 채근했다. “밥을 먹어야 아이들 이름이라도 한 번 더 소리쳐 불러줄 수 있잖아요.” 하나둘 휴게소로 들어가 음식을 시켰다. 그때 뒤따라와 음식을 주문하는 한 남자를 몇몇 가족이 지목했다. 지난 5월9일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청와대 앞 서울 종로구 청운 효자동 주민센터에서 경찰과 마주했을 때 봤던 낯익은 얼굴이라고 했다. 아빠들이 그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경찰입니까?” “아닙니다. 왜 그러십니까.” “세월호 참사 가족입니다. 청와대 앞에서 당신을 본 가족이 있습니다.” 그 남자는 발끈해 반문했다. “당신들은 유가족 맞습니까? 왜 팔을 칩니까?” 실랑이가 벌어졌고 가족들이 “미안하게 됐습니다”라고 사과하며 마무리됐다. 그 남자는 덧붙였다. “세월호 사건,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만 저도 피곤한 사람입니다.”
해프닝으로 끝날 듯했던 사건은 그 남자의 일행이 발견되면서 한순간 반전한다. 남자가 음식을 2인분 주문했다는 점을 파악한 가족들이 휴게소 밖 주차장에서 서성이는 그의 일행을 찾아냈다. 경찰이냐고 다시 추궁했다. 처음에 부인하던 그는 단원경찰서 정보과 소속 강아무개라고 신분을 밝혔다. 첫 번째 남자도 단원서 소속 박아무개 정보관으로 드러났다. “보호하려고, 도와드리려고 따라왔습니다.” 경찰의 해명에 가족들은 분노했다. “자식을 잃으면 범법자 취급받는 거냐.”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죽으라고 떠미는구나.” “대통령은 앞에서 눈물 흘리고 경찰은 뒤에서 미행하냐.” “‘악어의 눈물’이다.” 몸을 잠시 숨겼던 첫 번째 남자가 나타나자 일부 가족들이 몸싸움을 벌일 듯 덤볐다. “우리가 너한테 사과까지 했잖아. 너도 마음 아프다며?” “너, 자식 수장시켜봤어. 우리 딸 얼굴 볼래.” “우리가 괜찮아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요. 살이 떨린다, 살이.” “오늘 같이 빠져 죽자.” 하지만 다른 가족들이 눈물로 진정시켰다. “아이들, 아직 저 (바다) 밑에 있잖아. 아이들 생각하자.”
둥그렇게 둘러앉은 회의가족 8명은 경찰들과 함께 안산 분향소로 돌아가 단원경찰서에 항의하기로 했다. 은 이날 저녁 8시께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경찰이 세월호 가족을 미행하다가 덜미가 잡혔다는 소식을 처음 전했다. 단원경찰서는 이렇게 해명했다. “유가족들이 급히 진도로 간다고 해서 따라간 것은 맞지만, 유가족들에게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봐 도와주려고 했던 것이다. 신분을 들켰을 때 정보관들이 당황한 나머지 미숙하게 행동한 측면이 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게 돼서 유가족들에게 사과드린다.” (이후 5월20일 0시10분께 최동해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안산 분향소로 찾아와 “앞으로 사전 동의 없이는 사복경찰의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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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경기도 안산에서 전남 진도 사고 현장으로 향하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뒤를 밟다 들통났다. 지난 5월19일 전북 고창군 고인돌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가족들에게 발각돼 당황한 안산 단원서 소속 정보관의 모습.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제공
[22시30분] 진도 실내체육관 앞에 버스가 도착하자 가족 23명이 후다닥 내렸다. 약속이나 한 듯이 실종자 가족들은 이들을 가슴으로 맞았다. 무릎을 꿇은 채 희생자 가족과 실종자 가족은 서로의 등을 쓰다듬었다. 희생자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누울 자리도 비좁을 정도로 꽉 찼다가 앞에, 뒤에 있던 가족들이 떠나갈 때 그 허전함을 표현할 길이 없어요. 외롭고 두렵고…. 지금 남아 있는 가족들 가슴이 다 까맣게 탔을 거예요. 그 경험을 우리도 다 했잖아요. 너무나 잘 알죠.” 희생자 가족들이 차례를 정해서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러 진도를 자주 방문하는 이유다.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이 만나는 모습을 방송 카메라들이 2층에서 찍고 있었다. 아빠들이 소리쳤다. “찍지 마세요. 허락하지 않습니다.” 방송기자들은 카메라를 조용히 내리고 자리를 떴다. 회의가 시작됐다. 가족 50여 명이 체육관 1층 한가운데로 모여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직접민주주의’ 방식이었다. 2층에 있는 기자는 자세한 논의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회의는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이어졌다.
나중에 물어보니 가족들이 가장 비판했던 것은 물론 실종자 구조 수습 얘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진상 규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환자가 왔는데 말 한마디 건네보지 않고 낯빛도 안 보고 약을 한 주먹 꺼내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약이 신약이고 효과도 좋고 비쌀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환자가 좋아할까요? 내 상태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것이 진정한 처방일까요?”(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 해경을 해체하든,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든 진상 규명이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5월20일 1시] 회의가 끝나고 실종자·희생자 가족들이 나란히 스트로폼 위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체육관 앞쪽 대형 스크린에서 하루 종일 울려대던 뉴스도 잠잠해졌다. 체육관을 밝히던 형광등이 하나둘 꺼졌다. 사고 직후에는 24시간 내내 비췄지만 이제 지친 실종자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잘 수 있도록 그렇게 바꿨다. 체육관 2층에는 며느리를 기다리는 노부부가 누웠다. 시어머니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20일 팽목항 기자회견에 참석해 며느리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가 오는 팽목항에서 기자회견을 열면 일부 가족들이 쓰러지지 않을까 가족대책위는 걱정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완강했다. 바다에 잠겨 있는 아이들이 돌아와 처음 밟을 육지, 아빠·엄마가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팽목항으로 오후 2시에 떠났다. 버스의 TV 뉴스에선 기상캐스터가 “남쪽에 시원하게 비가 내린다”고 방송했다. “비가 또 오는구나.” 옆에 앉은 자원봉사자가 한숨지었다. 비가 오면 실종자 수색이 어려워지니까 말이다. TV 뉴스가 끝나고 탤런트 이순재가 선전하는 상조회사 광고가 나왔다. 자원봉사자가 황급히 채널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장례’라는 단어가 허공을 맴돌았다.
시신 확인소 옆 새집 여섯 채진도 실내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 버스로 30분을 가는데도 실종자 엄마가 심하게 멀미를 했다. 맨 앞자리로 옮기고도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실종자 가족들이 걱정하며 다독였지만, 몸도 마음도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다. 다행히 팽목항엔 비가 그쳤다. 그러나 바닷바람은 찼다. 서로 팔짱을 끼고 걸으며 가족들은 사고 첫날을 얘기했다.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파도 소리가 얼마나 큰지, 그래도 우리 아이들 다 살아올 거라고 생각했잖아.” “구조가 0명이 될 거라고 정말 상상도 안 했지.” 시신 확인소 옆에는 새집 여섯 채가 보였다. 실종자 가족을 위해 정부가 세웠는데 입주자가 거의 없다고 했다. “한 달이 넘었는데 이제 와서 집 지어줬다고 생색내고, 참.” 누군가 혀를 끌끌 찼다.
[18시20분] 기자회견을 마친 뒤 배를 타고 사고 현장을 돌아본 희생자 가족들이 진도에서 출발했다. “평생 오지 않았던 이 땅끝마을을 지난 한 달간 도대체 몇 번이나 왔다 갔나, 셀 수가 없네.” 진도대교를 건너며 한 아빠가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 먼 곳을, 그래도 얘들 보고 싶으면 또 오겠지.” 한 엄마가 창밖을 내다보며 답했다. 버스는 5시간을 달려 밤 11시30분 안산 분향소에 도착했다. 다른 희생자 가족들이 마중 나와 “수고했다”며 격려했다. 분향소 앞마당에선 한 어린이가 담요를 걸친 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진도·안산=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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