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초경사로구만….”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검찰의 검거 작전을 지켜본 검찰 고위 간부가 내뱉은 한마디다. 타초경사. 풀숲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한다는 의미다.
요란한 ‘빈집털이’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 수사는 호랑이 등에 탄 듯 신속하게 전개돼왔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구조 실패 등을 수사하고 있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광주지검 목포지청)는 선박직 승무원 15명을 구속기간 30일이 지나기 전에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항만·해운의 각종 민관 유착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부산지검 특별수사팀도 구조적 비리 전반에 대한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성과를 보였던 곳은 세월호 선주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 전 회장 일가의 비리를 수사하는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이었다. 인천지검은 특별한 비리 첩보 등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수사에 착수했지만, 유 전 회장 일가의 비리 사슬을 상당 부분 파헤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도주한 유 전 회장을 검거하는 일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왼쪽)이 5월22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뒤 정부서울청사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살리기 위해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가운데)과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오른쪽)을 사퇴시켰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사진공동취재단, 인수위사진기자단
그러나 검찰의 기호지세는 금수원 앞에서 꺾이고 말았다. ‘구원파’ 신도 1천여 명은 유 전 회장이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진 금수원에 인간띠를 둘렀다. 그들이 내건 피켓 가운데에는 “순교도 불사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규모 인명 피해라도 일어날 경우 검찰 수사에 대한 역풍이 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금수원 앞에서 신경전만 벌이다, 구원파 신도들이 길을 터준 지난 5월21일 금수원에 진입했다. 검찰은 금수원 진입에 앞서 “유병언 전 회장이 지난 5월17일 토요 예배를 위해 금수원을 찾은 신도들 틈에 섞여 이미 금수원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검찰은 금수원 내부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영상과 내부 문건 및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8상자 분량의 압수물만 들고 금수원에서 빠져나왔다. ‘빈집털이’만 요란했던 꼴이다.
검거 작전의 고착 상태는 길어지고 있다. 인천지검은 지난 5월14일 유 전 회장의 장남 유대균씨에 대한 ‘A급 지명수배’를 내린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지난 5월19일 최재경 인천지검장을 비롯한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원들은 유병언 전 회장이 검거될 때까지 ‘무기한 철야근무’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5월22일엔 유병언 전 회장한테 5천만원, 장남 대균씨에 대해서는 3천만원의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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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고위 간부
검거 작전과 수사 과정에 ‘밀행성’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수사와 달리, 인천지검은 언론을 통해 유 전 회장에 대한 추적 상황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방편을 택했다. ‘A급 지명수배’ ‘현상금’ ‘철야근무’ 등 이례적인 검거 작전 생중계에 놀란 유병언 전 회장이 섣불리 움직일 때 꼬리를 잡겠다는 모양새로 보인다. 특히 인천지검 특별수사팀 관계자는 정식 언론 브리핑에서 “유병언 전 회장이 서울 지역에 있는 평신도의 집에 은신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적 범위가 어느 정도 좁혀진 상황을 그대로 언론에 노출한 것이다. 전형적인 ‘타초경사’다.
서울중앙지검 ‘검거추적반’ 파견그러면 검찰은 유병언 전 회장의 거처를 어느 정도까지 추적하고 있을까? 구체적인 상황은 알기 어렵지만, 인천지검은 유 전 회장의 거처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인천지검은 5월20일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검거추적반’ 수사관들을 급히 파견받았다. 마약사범과 조직범죄자를 주로 상대하는 강력부는 도주자 검거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 이들의 도움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것은 인천지검이 유병언 전 회장의 뒤를 쫓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다. 언론을 이용해 유 전 회장을 자극하는 이유도 ‘조용한 검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방증이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당초부터 유병언 전 회장 일가의 비리 혐의를 밝혀내는 것이 3부 능선이면, 유 전 회장을 검거하는 것이 6부 능선, 유 전 회장 일가의 재산을 세월호 참사 피해 보상으로 돌리는 것이 정상이라 보고 있었다”며 “수만 명의 신도를 거느린 유 전 회장을 검거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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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검으로 파견된 강력부 검거추적반은 유 전 회장의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인물들의 통신 내역과 신용카드 사용 내역, 유 전 회장의 심복으로 손꼽히는 인물들의 차량 동선, 인터넷 접속 내역 등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통신 내역은 유 전 회장 일가와 심복 그룹 등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공중전화용 전화번호가 있는지, 수사·검거 개시 등 특정 시간대 이후에 두절된 연락처는 없는지 등을 중심으로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주한 피의자를 잡기 위해서는 ‘꼭지를 따고’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검거 작전이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법조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낙관론은 강력부 소속 검거추적반의 추적 능력을 신뢰하는 쪽이다. 한 강력통 검사는 “조폭과 마약사범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은신하고 버텨가며 검찰 추적을 피하곤 한다. 강력부 소속 검거추적반은 그들을 잡아내는 일만 10년 넘게 한 정예 요원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 전 회장이 밀항해 한국을 뜨지 않았다면 일주일 안에 잡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다른 검찰 관계자는 “구원파 내부에도 유 전 회장에 대한 광신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원파 내부에서 협조자를 찾는다면, 의외로 실마리는 간단하게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일도, 이부, 삼빽’ 확인비관론도 만만치는 않았다. ‘타초경사’를 언급한 고위 간부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도주자에 대한 추적은 그가 움직일 때 가능한데, 유병언 전 회장은 일단 은신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 전 회장이 휴대전화를 쓸 리도 없고, 신용카드를 사용할 리도 없는데, 그를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의 조심성이 극에 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유 전 회장이 과거 오대양 사건 수사 당시 검찰 회유를 받고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은 뒤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지금 유 전 회장의 나이가 73살인데, 검찰에 붙들리면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원파 내부에서도 유 전 회장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거라고 예측한다.
법조계에서는 ‘일도, 이부, 삼빽’이라는 오랜 격언이 다시 확인됐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당신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다면, 첫 번째 해법은 도망을 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무조건 부인을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빽’을 동원하라는 뜻이다.
노현웅 사회부 법조팀 기자 goloke@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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