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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지난 5월8일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학)와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를 만나 우리나라의 지난 10년간 자유무역협정(FTA) 정책을 평가했다. 진보·보수 진영에서 고루 인정받는 통상 전문가인 두 교수는 동시다발적 FTA가 고용 창출과 소비자 후생 등 사회·경제적 과실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앞으로는 ‘양보다는 질’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용어설명)참여 시기와 방법, 한-중 FTA의 의미를 두고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FTA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지난 10년간 정부의 FTA 정책을 평가한다면.김양희 교수(이하 김) 2003년 통상정책 로드맵을 만들었지만 정부가 FTA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한-캐나다, 한-유럽자유무역연합(EFTA) FTA를 먼저 맺은 뒤 이를 교두보로 삼아 한-미, 한-유럽연합(EU)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일 FTA가 안 되면서 정책 방향을 틀었다. 캐나다를 제치고 미국과의 FTA를 먼저 밀어붙였다. 급격한 변화였다.
최원목 교수(이하 최) 양적 팽창 위주였다. 주변국에 비해 성과를 올린 것은 확실하지만 문제점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제 속도를 조절하고 우선순위도 정하고 문제점도 해결해야 한다. FTA가 사회·경제적 과실로 이어지도록 보완 정책을 마련하는 게 앞으로의 과제다.
보완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안해달라.김 FTA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FTA를 왜 맺는지, 그 어깨너머의 것을 봐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상주의 시각에서만 FTA를 바라봤다. 지난 10년간 FTA를 평가하면서도 수출이, 외국인 투자가 얼마나 늘었는지에 대해서만 분석한다. FTA 발효로 얻은 경제적 이익을 어떻게 국내에 확산시켰는지, 일자리 창출이나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지 않는다. 한-미 FTA도 교역 확대보다는 미국식 법률과 규제가 도입되는 게 핵심인데 이를 이후에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최 FTA는 생산과 고용을 창출하는 수단이다. 수출이 증가하면 그렇게 된다. 수입 증가도 나쁘지만은 않다. 국내 산업에 피해가 발생하지만 그 차액은 효율적 분야로 재투자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FTA 물품의 절반가량이 오히려 값이 올랐다. 정부가 유통구조 개혁을 등한시한 탓이다. 이제부터는 국내 피해를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경제적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FTA 보완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국내 피해를 지원할 때도 기업이 아니라 근로자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비효율적인 기업은 문을 닫더라도 근로자는 새로운 일터를 찾아 FTA 고용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말이다. FTA 활용도도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훨씬 낮은데 보완이 필요하다.
김 FTA 체감지수의 개발과 조사를 제안한다. FTA로 인해 고용, 중소기업 생산, 소비자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자. 생활에서 혜택을 체감할 수 있어야만 통상정책을 지속할 수 있다. 수출 몇%, 투자 몇% 증가라는 분석은 기업에만 국한돼 국민이 체감할 수 없다.
론스타의 ISD(☞용어설명)는 어떻게 결론 날까최 정부는 FTA 체결로 수출이 늘어나면 경제적 성장을 거둔다고 선전해왔다. 수출을 대기업이 주도하니까 대기업의 경제적 이익을 정부가 뒷받침한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FTA 정책이 대기업 편향으로 비치도록 자초한 것이다. 1970~80년대에는 수출 위주로 경제가 성장했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단순히 경상수지 흑자폭만으로 성장을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현대적 의미에 맞게 FTA 정책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한-미 FTA가 발효된 지 2년이 넘었다. 이명박 정부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용어설명) 재협상을 약속했었다.최 투자 분야는 재협의가 필요하다. 투자 부문은 높은 수준으로 개방하면 그만큼 위험도 커진다. 투자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인데, 한-미 FTA에선 투자세이프가드(☞용어설명)가 오히려 많이 약화돼 있다. 또 투자의 개념이 끝없이 포괄적으로 정의돼 있어 문어발식으로 해석될 여지를 배제할 수 없다. 높은 수준으로 개방하는 대신 인간의 생명 보호, 안전 같은 필수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포괄적 규제를 가할 수 있는 권한도 확보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미 FTA 규정은 이러한 필수 규제를 투자 부문에 적용하는 것이 제한돼 있다. 우리 정부가 협상을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잘못된 협상 내용을 반성하고 고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 및 안전 보호 규제와 관련해서 나중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김 한-미 FTA를 체결할 때 감정적으로 찬반 진영이 대결했다. 찬성 쪽은 장밋빛으로만 포장했고 반대 쪽에서는 만악의 근원으로 묘사했다. 그래서 정부는 부작용이 발생해도 고치기보다는 감추기에 급급하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규제 완화로 탈바꿈하고 있는데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한-미 FTA의 래칫(역진방지) 조항(☞용어설명) 때문이다. 론스타가 ISD를 제기한 뒤에는 공공기관 곳곳에서 ‘위축효과’(Chilling Effect)(☞용어설명)가 발생한다. 새로운 정책을 내놓으면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공문을 보내 통상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이러한 현상을 쉬쉬하고 있다. 보완 대책을 마련하고 재협상을 진행하려면 상시적으로 총괄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론스타의 ISD는 결과를 어떻게 점치나.최 론스타에 과세한 행위는 정당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영업활동을 했는데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워 조세를 회피하는 것은 정당치 못하다. 하지만 ‘먹튀’ 논란 탓에 매각 인수 승인을 우리 정부가 지연한 측면은 잘 방어해야 한다. 일부 패소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 중재하는 데 평균 3년6개월이 소요되니까 내년쯤 판정이 나올 것이다. 올해 쌀 시장 개방 협상에 이어, 론스타의 ISD도 우리 정부가 패소해 거액의 배상금을 물게 되면 거센 비판 여론이 몰아칠 것이다. 국민 정서상 용납할 수 없을 테니까. 엄청난 비용을 치른 뒤에야 ISD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본격 논의하지 않을까 싶다.
김 중재판정부가 구성됐는데 중재인이 어떤 사람인지 정부가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나중에 비난을 덜 받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투명하게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토론을 시작할 수 있다.
감춘 것 풀고 기사 쓰고 토론해야한-미 FTA 협상 과정이 불투명하고 국내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김 TPP에 참여한 말레이시아는 협상 내용을 대부분 국내에 공개했다. TPP는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그렇다고 말레이시아가 큰 불이익을 받지도 않았다. 진보 진영에선 FTA를 밀실 협상이라고 비판하지만 원래 협상은 밀실에서 한다. 문제는 비판받을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정부가 과도하게 꽁꽁 싸서 감춰버리는 것이다.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국회)에도 말이다. 게다가 행정부의 독재를 막아야 하는 국회의 감시 능력도 상당히 떨어진다.
최 언론이 문제다. 팩트(fact) 논쟁이 있으면 협정문 조항을 놓고 기사를 쓰고 TV토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오보를 냈으면 사과하고 반성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거의 없다. 논란만 부추긴다.
지난해 6월 정부가 ‘신통상 로드맵’을 발표했다.
최 무역의존도가 90%가 넘는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동시다발적 FTA를 맺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세계적으로 한 해에 20여 개 FTA가 체결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미국·EU 등 거대 시장을 확보한 지금은 또 다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신통상 로드맵을 짜면서 정부는 거대 경제권에서 린치핀(linchpin·핵심 축) (☞용어설명)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린치핀이란 몇 개 꽂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꽂느냐가 중요하다. 지난 정부에서 해오던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등과의 FTA에 서명하고 자원부국과 협상하는 것으로는 신통상 정책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진정한 핵심 축이 되려면 FTA 간 통합적 모델을 창조하고 적용해나가야 한다. 정부가 협상력을 발휘해 FTA 협정을 한국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TPP를 새로운 차원의 통상정책을 펼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 린치핀은 외교적 수사일 뿐 구체적 내용이 없다. 한국형 모델이 없어서다. 우리 FTA는 유럽형,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형, 미국형 모델이 마구 섞여 있는 FTA 모델의 백화점이다. 린치핀이 역할을 맡을 기회는 한-중 FTA에서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외교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산업통상자원부는 FTA를 너무 협소한 시야에서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TPP 참여를 둘러싸고 논쟁이 거세다.
최 적극 찬성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한다. 영국이 유럽공동체(EC) 초기에 가입하지 못했다. 농업 문제 때문이었다. 뒤늦게 가입한 탓에 영국의 영향력은 EU에서 상당히 약하다. 프랑스·독일은 물론 이탈리아보다 못하다. TPP라는 거대한 경제 블록이 자리잡는다면 참여 시기에 따라 대한민국의 20~30년 미래가 좌우된다. 입장료를 다소 지불하더라도 원년 멤버로 참여해야 한다. TPP가 한-미 FTA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새로운 분야가 분명히 있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만 그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김 본질적으로 TPP는 한-미 FTA와 유사품이다. 질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중국마저 참여한다면 우리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지만 참여 시기는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한-미 FTA에 미래 최혜국대우(MFN)(☞용어설명) 조항이 있어 미국이 투자와 서비스 부문에서 한-미 FTA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다른 나라와 FTA를 맺으면 우리도 그 혜택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정부는 한-중 FTA와 TPP를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두 카드를 동시에 만지작거리면서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이다. 중국이 TPP에 참여한다면, 지금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협정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TPP 2.0 혹은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가 시작되는 시기에 참여해도 늦지 않는다.
여러 개 진행할 정도로 전문 인력 있나최 TPP는 한-중 FTA, 한-중-일 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는 성질과 폭이 다르다. 예를 들어 원산지 규정을 보면, TPP에 참여하는 12개국 간에 양자 FTA를 각각 맺으면 66개가 필요하다. 하지만 TPP에 참여하면 하나의 공통된 원산지 규정만이 자리잡게 된다. 특혜 관세 혜택을 받는 기준이 대폭 간소화돼 기업활동을 하기가 획기적으로 쉬워진다. 공통된 무역 규범 부문이 충실히 갖추어져 있다. FTA 후진국이었던 일본이 각료급 위원회를 만들어 TPP 참여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이유다. 농산물 위협을 무릅쓰고 꼼꼼하게 미래 이익을 추구한 것이다.
김 TPP 원산지 규정에 대한 기대는 신기루다. 업종별로 따져보면 섬유·화학 분야 정도만 혜택을 입는다. 중국이 제외됐으니까. 한국무역협회가 FTA 10년을 맞아 기업 1천 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다. 조기 타결이 필요한 FTA로 한-중을 꼽았다. 그다음이 한-중-일, RCEP다. TPP는 아예 언급이 없다. 경제적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일본이 TPP에 참여한 것은 경제적 이득보다는 국내 규제를 철폐하는 외압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동시다발적 FTA와 다자 협상을 함께 추진할 만큼 전문 인력을 갖추고 있나.김 충분하지 않아 부실 협상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한-중 FTA도 버거운데 TPP에까지 뛰어들면 어느 하나도 잘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 나무를 보는 자세에서 숲을 그리는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 밑그림이 없는 상태에서 통상협상을 우후죽순 진행하는 것은 한계에 도달했다. 큰 산을 이미 넘었으니 양보다는 질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총제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통상정책은 어떠했는가.최 때를 많이 놓쳤다. 한-미 FTA에서 ISD 재협상을 약속했는데 시간만 끌었다. 한-중 FTA도 단계별 협상 방식으로 정치적으로 안전한 슬로트랙을 택했다. 론스타 같은 페이퍼컴퍼니가 ISD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투자협정들도 손봐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쌀 관세화 문제도 정책 결정을 의도적으로 늦췄다. 미국 쇠고기 협상, 한-미 FTA 트라우마 탓이었다. 통상 현안을 2년간 미루면서 TPP에 참여할 기회를 놓쳤고 그 여파는 앞으로 10년간 지속될지 모른다. 한마디로 통상 현안을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모두 부족했다.
김 TPP에 대한 사전 연구가 부족했다. 일본이 참여한다니까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의 동시다발적 FTA 정책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일본이 들고나온 카드인데도 말이다. 일본은 FTA에 늦었지만 TPP를 주도하면 미국·EU·중국이 좇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상 분쟁 발생하기 전 옴부즈맨 갖춰라외신은 우리나라의 TPP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는데도 박근혜 정부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김 국민은 FTA 피로감을 느낀다. 뭔가 많이는 했는데 실제 체감이 안 되니까. 큰 덩어리를 더 얹히기가 서로 부담스럽다. 초기에 확 들어간 것도 아니고 문이 닫힐 때 그것도 단독으로 들어가려니까 미국이 높은 입장료를 요구한다. 자업자득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하면 미국 입장에선 원군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꿀리면서 들어갈 필요가 없다. 한-중 FTA와 연계해 사고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고도의 외교 역량이 필요한데 현재 산업부가 그럴 역량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근혜 정부는 통상정책을 외교부에서 산업부로 이관했는데.최 산업부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첫째, 비즈니스 현장에서 차별성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비관세장벽이 철폐되거나 원산지 규정이 명확해지는 등 가시적 성과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산업부가 타결한 한-오스트레일리아, 한-캐나다 FTA는 그렇지 못했다. 한-중 FTA, TPP 협상에선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둘째, 기업활동에 중요한 예방통상외교 기능이 발휘돼야 한다. 통상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옴부즈맨제도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래야 ‘산업통상’은 ‘외교통상’과 다르다는 걸 국민에게 증명할 수 있다.
김 FTA는 더 이상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2003년 통상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국내 제도 선진화’를 내세웠는데 이는 산업부와 직접 관련이 없다. 서비스 경쟁력 강화도 산업부보다는 기획재정부 소관이다. 더욱이 한-미, 한-EU FTA를 거치면서 무역 규범을 대거 포함하는 포괄적 FTA가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양한 부처가 관여할 수밖에 없다. 산업부가 포괄적 FTA를 총괄·조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처럼 독립기구가 필요하다.
정리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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