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 민주노총 18년 역사상 처음으로 경찰이 사무실에 난입했다. 어떤 이는 경찰이 신민당사에서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을 폭력 진압했던 1979년을 떠올렸다. 은 과거로 돌아간 시계를 지금보다 34년 뒤 미래로 맞춰봤다. 민영화 이후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린 가상 시나리오다. 보수언론은 세상의 걱정을 ‘민영화 괴담’이라며 거짓말로 치부한다. 하지만 이건 괴담이 아니다. 아직 한국에 오지 않은 미래일 뿐, 지구촌 반대편에선 이미 닥쳤거나, 지금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다른 나라의 거울에 비춰본 디스토피아는 섬뜩한 미래를 경고한다.
괴담이 아니다, 오지 않은 미래일 뿐2047년 1월1일, 민영(34)씨는 아직도 뺨이 얼얼하다. 전날 밤 기차역 플랫폼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3시간 넘게 발을 동동거린 탓이다. 경북 경주에 사는 부모님 댁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지옥’이었다. 연말이라 막차인 밤 9시58분 KTX 열차를 15만원이나 주고 일찌감치 예매해뒀다. 하지만 서울역에 벌써 도착하고 남았을 시간에도 열차는 오지 않았다. “부산역에서 출발한 열차 사고로 인해 연착되고 있습니다.” 안내방송을 들으며 새해를 맞았다. 카카오톡으로 ‘이놈의 기차는 툭하면 사고야’라고 투덜거리는 메시지를 날렸다. ‘넌 그래도 KTX라도 있지.’ 친구 유화의 고향인 전남 곡성은 얼마 전부터 KTX가 서지 않는다. 이용객이 줄어들어서다. 민영씨가 태어난 해인 2013년 세밑,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철도 민영화’의 결과다.
2011년 5월27일 저녁 7시8분. 일본 홋카이도의 구시로역을 출발해 삿포로까지 가는 세키쇼센 ‘슈퍼오조라(넓은 하늘) 14호’에는 승객 248명이 탑승해 있었다. 2시간쯤 달린 열차는 세키쇼센의 중간쯤에 위치한 도마무역을 예정 시간보다 2분 늦은 밤 9시36분에 출발했다. 다시 20분이 흐른 9시55분. 열차가 도마무역에서 21.3km 떨어진 시무캇푸역을 통과하는 것과 동시에 3호차에서 거대한 소음과 함께 큰 충격이 발생했다. 열차가 탈선한 것이다. 불행히도 차량이 멈춘 곳은 길이 685m의 터널 안이었다. 게다가 차량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바닥에서 연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불이 난 것이다.
본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허둥대던 운전원과 차장은 밤 10시34분이 되어서야 승객들을 열차 밖으로 대피시켰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잘못하면 대형 사고로 연결될 뻔한 사고였다. 이로 인해 승객 78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가 난 지 4개월이 지난 2011년 9월 JR홋카이도의 사장인 나카지마 나오토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부 공개된 유서에는 자살의 직접적 이유는 담겨 있지 않았지만, 직원들에게 전하는 초과근무 협정 위반에 대한 사죄의 말과 5월 사고를 계기로 안전의식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당부의 말이 들어 있었다. 이를 계기로 JR홋카이도 열차의 안전 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일본의 철도평론가 우메바라 준은 2013년 12월15일 발행된 책 <jr>에서 JR홋카이도의 위기의 원인을 1987년 4월 단행된 철도 분할 민영화에서 찾고 있다. JR홋카이도는 14개 노선 2499.9km에서 여객노선을 운영하고 있다(2013년 7월 기준). 영업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7512.6km인 JR히가시니혼과 5012.7km인 JR니시니혼에 이은 3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용객 수는 2010년 현재 1억3586명으로 일본의 주요한 15개 민영 철도 가운데 15위인 니시니혼철도(9909만 명)보다 조금 많은 편이다. 니시니혼철도는 노선 길이가 JR홋카이도의 20분의 1인 106.1km밖에 안 된다. 즉 JR홋카이도는 정상적인 철도 영업으로 이익을 내기가 거의 불가능한, 따라서 민영화를 절대 해선 안 되는 회사였다는 것이다.
2030년, 수서발 KTX는 대기업 품으로
어젯밤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며 휴대전화로 읽은 2013년 기사였다. 7개 자회사로 분할한 일본 국영철도를 두고, 한 보수신문이 ‘철도 개혁으로 열차 이용객이 25% 늘었다’고 찬사를 보낸 기사도 있었다. 그때 한국은 왜 JR규슈의 성공이 아니라, JR홋카이도의 실패에 주목하지 않았던 걸까. 그해 겨울,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한사코 “민영화는 아니다”라면서 수서발 KTX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엄마는 갓난쟁이인 나를 꽁꽁 싸매 안고 ‘민영화 반대’ 촛불집회에 나갔다고 했다. 결국 2030년 수서발 KTX 주식회사의 지분은 대기업이 가져갔다. 철도 노선은 하나둘 쪼개져 민간회사에 팔렸다. 요금은 서너 배 뛰었지만, 탈선 등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철도 민영화를 경험했던 일본과 영국, 독일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는 것이다.
2013년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독일 베를린에 사는 하네스 모슬러는 기차를 타고 브레멘 근처 어머니 댁에 왔다. 4시간의 기차여행은 ‘무사’했다. “조롱거리가 된” 독일 철도치고는 연착도, 사고도 없었으니 다행이다. 칼 같은 독일 사람들과 달리, 독일 기차는 늦거나 예고 없이 취소되는 일이 잦다. 기차 안에 몇 시간 동안 갇혀 있거나, 에어컨이나 히터가 고장나는 경우도 많다. 이중삼중으로 예약돼 있는 한 자리를 놓고 기차 안에서 싸우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모슬러는 “효율화를 앞세워 인력을 감축하고 민영화를 하려던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독일식 지주회사 모델’을 철도 구조개혁의 대안으로 꼽았지만, 독일 철도의 현실은 한국만도 못하다. 연방독일철도청을 지주회사와 사업 부문별 자회사로 쪼개놓은 독일 모델은 언뜻 민영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2006~2008년 독일 정부는 화물 부문의 자회사 등을 매각하려고 했다. 지주회사 주식 일부를 매각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철도 운영 인력은 1994년 30만 명에서 2012년 15만 명으로 반토막 났다. 2013년 8월 한국을 방문한 독일 환경단체 분트(BUND)의 베르너 레 교통정책과장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철도 민영화 시도가 중단된 것은 행복한 실패”라고 말했다.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에 철도 민영화를 단행했던 영국의 ‘재앙’은 더 심각했다. 2000년 10월17일 12시23분, 런던을 출발해서 리즈로 가는 열차가 해트필드 근교를 지나는 중이었다. 기관사는 손상된 철로를 발견했지만, 열차를 정지시킬 때까지 17초가 걸렸다. 열차의 압력에 철로는 300여 개의 금속 파편으로 산산조각이 났고, 열차 일부는 뒤집혔다. 4명이 숨졌다. 1999~2002년 대형 열차사고는 4차례나 일어났다. 이 때문에 5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철로 운영·보수 업체인 ‘레일트랙’을 민영화한 뒤 시설투자와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었다. 2002년 레일트랙은 파산보호에 들어갔다가 재국유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민간회사에 맡겨진 영국 철도요금은 살인적인 수준이다. 서울~부산과 비슷한 거리인 런던~에든버러 구간 철도요금은 15만~20만원이다. KTX 요금의 서너 배가 넘는다. 런던 교외에서 시내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가운데는 연간 교통비만 1천만원 이상 드는 사람도 있다.
전기가 끊겼다, 동전 어디 갔더라?
민영씨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전등 스위치를 더듬었다. 열차 플랫폼에서 덜덜 떨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12시간을 잠에 취해 있었다. 어랏. 그런데 불이 안 켜진다. 아차. 석 달치 전기요금이 밀린 걸 깜박했다. 전기가 끊긴 모양이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월 100만원을 버는 비정규직 월급으로, 월 20만원의 전기요금을 감당하기란 버겁다. 하도 전기가 자주 끊기니, 나라에서는 민영씨 집에 아예 ‘사전지급제 미터기’를 달아놨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딱 그만큼의 전기를 쓸 수 있다. 어차피 밀린 요금을 당장 낸다고 해도 전기를 쓰려면 며칠이 걸린다. 5개 민간 전력회사는 불친절하기로 따지면 우선순위를 가늠하기 어렵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인력이 줄어서 당장 방문할 기사가 없다”고 퉁퉁거릴 뿐이다. 돈 없는 사람한테만 전기가 귀해진 건 아니다. 서울 전 지역이 종종 블랙아웃 상태가 된다. 전력산업을 민영화하면 값싸고 풍부한 전기가 공급될 것처럼 선전했지만 다 거짓말이었다.
돈을 낸 만큼만 전기를 쓰는 ‘사전지급제 미터기’(Prepayment Meters)가 처음 등장한 곳은 영국이다. 영국은 선진국 가운데 최초로 1989년 민간기업이 전력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줬다. 전력 생산의 95% 이상을 담당하는 국영기업 영국중앙발전국은 3개 회사로 나뉘었고, 이후 대형 민간기업들이 전력 판매사업의 99% 이상을 장악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전기요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채준호 전북대 교수는 “민영화 이후, 영국에선 전기요금을 내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층’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전력회사는 이들에게서 요금을 미리 받아내기 위해 미터기를 고안해냈다. 미터기 전기요금은 일반 전기요금보다 훨씬 비쌌다”고 지적했다.
영국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작가 목수정씨는 1999년 프랑스에 처음 건너갔다. 그때만 해도 민영화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 뒤 2008년 다시 프랑스에 갔을 때, 그는 민영화의 민낯을 경험했다. 2004년 국영기업이던 프랑스전기(EDF)와 프랑스가스(GDF)가 주식회사로 지위를 변경한 뒤 이듬해 외부에 투자를 개방한 결과였다. 그나마 EDF는 정부가 주식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어 공기업의 지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GDF는 완전 민영화됐다. 민영화 이후, 동네마다 있던 프랑스전기공사·사무실이 하나둘 사라졌다. 문제가 생겨도 도무지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예전엔 요금 정산이 잘못됐거나 고장이 났을 때 사무실을 찾아가면 금세 해결됐다. 그런데 이제는 전화로만 그들과 접촉할 수 있다. 심지어 전화를 제대로 받지도 않는다. 요금 정산이라도 잘못되면 1년 내내 매달려야 한다.” 민영화 이후 전력회사들이 연구투자비는 최소화하고 마케팅 비용만 늘린 탓이다.
1998년 민영화된 통신 분야 서비스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전화가 고장나도 몇 번이나 항의전화를 걸어야 기술인력이 집으로 찾아온다. 기술자가 왔다 가도 전화가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목 작가는 “프랑스텔레콤이 민영화된 이후 내부 갈등과 의욕 상실로 직원 30여 명이 자살하기도 했다.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던 프랑스가 민영화로 인해 통째로 마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스산업이 민영화된 오스트레일리아 골드코스트에 살고 있는 백아영씨는 한 달에 전기·가스 요금으로 21만원을 낸다. 아파트로 이사할 때 가스회사 4~5곳 가운데 하나를 골라 가스를 설치했지만, 불친절한 서비스는 어느 업체나 마찬가지다. 가스라도 끊기면 출장 기술자를 사나흘씩 기다리고, 출장비 8만~9만원도 추가로 물어야 한다. 우리 집만 불편한 건 그나마 양반이다. 멜버른에선 가스업체의 잘못으로 2002년 가스 공급이 열흘 동안 중단된 일도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2001년 1월 주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기가 끊겼다. 주민들은 양초, 땔감나무 사재기에 나섰다. 그 뒤로도 2월 말까지 전력은 몇 차례 반복해서 끊어졌다. 2003년 뉴욕에선 정전으로 지하철 운행이 중단돼 시민들이 브루클린 다리 위를 걸어서 건너는 진풍경이 연출된 적도 있다. 민간 전력회사가 전기요금을 인상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가동을 중단하거나, 이윤이 많이 나는 판매시장으로 전력을 수출하는 식으로 ‘장난질’한 결과였다.
환자 골라 받는 병원들… 특진비만 수백만원
점심, 저녁을 다 건너뛰었더니 배에선 꼬르륵꼬르륵 합창이 시작됐다. 냉장고는 텅 빈 지 오래다. 찬장 구석을 뒤지다가 발견한 통조림을 어두컴컴한 데서 따겠다고 한 게 잘못이었다. 날카로운 통조림 뚜껑에 엄지손가락이 베여 새빨간 피가 토마토케첩처럼 줄줄 흐른다. 민영씨는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닦아내려다 멈칫했다. 최근 서울 지역 상수도에서 독성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뉴스를 본 뒤여서 영 찜찜하다. 병원에도 가야 할 텐데, 1월1일에 문을 연 대형 영리병원 응급실이라면 몇 달치 월급을 진료비로 청구할 게 뻔하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영리병원이 생기면서, 병원들은 환자를 골라 받고 특진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갈취’해가고 있다.
생수를 병에 담아 팔면서부터, 물의 민영화는 예견됐던 일이다. 한국 정부도 1997년 하수도법을 개정해 하수종말처리장 등을 민간위탁하면서, 물산업 민영화를 호시탐탐 노려왔다. 물 사유화는 어떤 공공서비스 민영화보다도 악질적이다. 미국 엔론에서 분사한 아주리는 199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상수도를 위탁운영하다가, 수돗물에서 독성 바이러스가 검출돼 지방정부가 협약 파기를 요구하자 적반하장 격으로 나왔다. 아르헨티나-미국 투자협정을 근거로 아르헨티나 정부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하고 5억5천만달러의 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볼리비아에서 물산업을 벌였던 미국 벡텔사는 일반 시민들이 빗물을 받아 쓰는 것까지 고소했다. 1990년대 재정 부족으로 다국적 물 기업에 상수도 사업을 맡겼던 제3세계 나라들은 물값 상승과 수질 악화, 고용 악화 등 심각한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2008년 개봉한 영화 는 의료 민영화가 ‘재앙’임을 일찍이 경고했다. 미국에서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하려면, 약지는 1만2천달러, 중지는 6천달러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러거스대학 방문교수로 2013년을 미국 뉴저지에서 보낸 김성희 고려대 교수는 민영화의 폐해를 절절히 느끼고 있다. 김 교수의 친구인 한 영주권자의 이야기다. 그는 매달 의료보험비로 1천달러(약 105만원)를 내고 있다. 그의 아내는 심장이 좋지 않다. 최근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갔다가 의료보험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사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진찰비로만 1500달러(약 160만원)를 받았다. 수술비는 최소 3만달러(약 3200만원)가 예상된다. 김 교수는 “미국에선 심한 독감이 돌면 꼭 동네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의료보험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않고 대충 약으로 버티다가 죽은 경우다. 여기가 부자 나라 미국이 맞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택한 길을 따라가려는 듯 보인다. 정부는 2013년 12월 제4차 투자활성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의료 민영화의 길을 터줬다. 의료법인이 영리회사를 자법인으로 둬서 부대사업을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외부 투자자가 수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의사들은 “영리 자회사 허용은 의료 민영화를 위한 꼼수”라며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시간을 34년 전으로 돌릴 수 있다면
고픈 배와 아픈 손가락을 끌어안은 채 민영씨는 생각한다. 나는, 대한민국은 이 지독한 ‘민영화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긴 할까. 34년 전으로 시계를 돌린다면 불가능하지만도 않을 것 같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도쿄(일본)=길윤형 국제부 기자 charisma@hani.co.kr</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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