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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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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도 하기 나름…재선용 경전철 아니다”

취임 2돌 앞둔 박원순 서울시장 “경전철은 생태·편익 위한 복지사업… 국정원 사건은 특검으로 가야”
등록 2013-09-11 14:36 수정 2020-05-03 04:27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은 “1년 전 반쯤 찼던 책장이 이젠 꽉 찼다”고 말했다. 행정의 과정 하나하나를 꼼꼼히 챙기는 ‘박원순 스타일’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어 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은 “1년 전 반쯤 찼던 책장이 이젠 꽉 찼다”고 말했다. 행정의 과정 하나하나를 꼼꼼히 챙기는 ‘박원순 스타일’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어 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지금은 힘든 점이 없다. 도인이 됐다는 얘기다.” 깜짝 놀랐다. 오해는 곧 풀렸다. ‘서울시정 에이(A)부터 제트(Z)까지 판단이 섰다는 거냐’고 물으니 “그건 자만, 거만이죠”라고 한다. 지난 2년 동안 “많이 익숙해졌고, 기왕이면 즐겁게 일하려 한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10월 취임 1주년 인터뷰 때보다 한결 여유 있어 보였다. 여전히 5분 단위로 일정을 짜는 워커홀릭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야권 지지자들에게 막연한 희망과 구체적 불안이 교차하는 대상이 아닐까. 그의 재선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면, 그가 내놓은 경전철 사업엔 의구심이 쏠린다. 그가 놓인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민주당의 인기는 바닥을 기고, 새누리당은 무상보육 광고를 빌미로 벌써부터 공격 모드에 돌입했다. 박 시장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나갈까. 지난 9월3일 저녁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만나 직접 들어보았다.


“많이 익숙해졌고, 즐겁게 일하려 한다.”


-그동안의 시정에서 가장 큰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건 무엇인지 한 가지만 꼽아달라.

=이런 질문은 늘 당혹스럽다. 계산해본 게 없다. 시민들이 평가하는 거다. 성과를 하나하나 챙기는 것보다는 행정의 시스템과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결과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좋은 미래를 위한 기반을 만드는 것, 원칙과 상식에 기초한 행정 프로세스를 만드는 데 노력해왔다. 예컨대 내가 직접 발표한 정책이 장애인 종합대책, 보훈 종합대책 등 30~40개 된다. 실체적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전문가, 이해 관계자, 시민들과 함께 논의해서 만들어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동시대에, 이 단계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얘기를 종합해서 정리하고 공유하고 합의해 나온 정책이라는 거다. 그렇기에 실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지고 별 이견 없이 함께 갈 수 있는 정책이 됐다. 그게 성과라면 성과다.

-무상보육 재원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갈등을 빚고 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지 않나. (서울시가 9월5일 보육 재정 마련을 위해 지방채 2천억원을 발행한다고 발표하면서 ‘급한 불’은 꺼진 상태다.-편집자)

=복지는 새로운 투자, 가장 효율적인 투자라고 얘기해왔다. 그런 사람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됐고, 이후 총선·대선에서 여야 할 것 없이 ‘싱크로율 90%’라고 할 정도로 복지 공약을 내세웠다. 이미 새로운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이 이미 합의하고, 국민의 소망이 증명된 거다. (2010년 무상급식 논란은) 오세훈 전 시장이 복지국가와 보편적 복지에 대한 시대적 통찰이 조금 부족해서 일어난 에피소드였다. 지금 또 그런 논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복지국가로의 대세는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강물이 흘러가는 방향에 중앙정부의 의지, 박근혜 대통령의 뜻도 있다고 보나.

=그렇게 약속을 하셨잖나. (웃음) 서울시는 큰 강물의 흐름을 타고 있고, 그것에 반대하는 쪽은 중앙정부든 누구든 역류하고 있는 거다.


“복지 재정 지방정부 전가하면 안 돼”


-결국 무상보육 예산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스웨덴 보편복지의 기틀을 마련한 페르손 총리가 만든 10가지 원칙이 있다. 절대 복지 재정을 지방정부에 전가하지 말라,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언명돼 있다. 지방정부는 정부나 국회가 재원을 정해주는 만큼에서 살림을 살게 돼 있다. 보편적 복지처럼 큰 예산이 들어가는 건 당연히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지방은 그 범위 안에서 전달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너무나 자명한 역할 분담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이를 잘 깨닫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인수위 때 시도지사협의회와 만난 자리에서 보편적 복지에 해당하는, 전국적으로 동시에 해당하는 사안은 중앙정부가 맡는 게 맞다고 딱 정리했다. 이후 내가 ‘박 대통령이 지방자치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다. 그래서 우리가 (정부를) 믿고 예산을 편성했는데 이제 와서 서울시가 책임지라고 하시는 분들은 도대체 어디 있다 온 분들이냐는 말이다. 특히 새누리당 분들…. 친환경 무상급식도 중앙정부가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시작한 거니까 우리가 책임지고 하고 있다. 그러나 무상보육은 서울시가 주도한 게 아니다. 국회와 정부가 결정한 거다. 정부는 서울시가 예산을 8 대 2로 부담하라고 하는데, 우리도 부담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으니까 6 대 4로 하자는 거다. 이미 이런 비율로 분담하는 내용의 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이걸 아직까지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주지 않으니까 이런 문제(재정 고갈로 인한 보육 대란 우려)가 생기는 거다. 이렇게 자명한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보편적 복지처럼 큰 예산이 들어가는 건 당연히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지방은 그 범위 안에서 전달자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정부는 무상보육 예산을 서울시가 8 대 2로 부담하라는데, 우리도 의지가 있으니까 6 대 4로 하자는 거다.

-서울시가 7월25일 경전철 사업 계획을 발표한 이후 논란이 뜨겁다. 전임 시장들의 토목 위주 정책을 비판했던 박 시장이 내놓은 사업이 경전철 사업이라는 데 대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토목도 토목 나름이다. 시민의 삶에 직결되고, 21세기 미래 도시로서의 위상과 경쟁력을 강화시켜가는 사업에 투자하는 거다. 서울처럼 큰 도시가 많지 않다. 뉴욕이 800만 명, 파리 도심은 260만 명이다. 서울시민 1천만 명이 움직이는 발을 만드는 일에 투자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 복지에 해당한다. 서울시는 이미 보행 친화도시를 선언했고, 곧 자전거 친화도시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생태적 도시가 되고 시민들의 교통비용을 줄이려면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가장 친생태적이고 효율적인 게 도시철도다.


“시민교통비 절감하는 최선의 수단이 도시철도”


-막대한 예산이…(박 시장은 ‘한번 따져보자’며 펜을 꺼내들었다).

=서울이 자동차 중심 도시로 계속 가면 교통혼잡 비용이 엄청나다. 지하철을 안 놓으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은평뉴타운 주민들은 시내에 들어오는 길이 지옥이라고 호소한다. 은평뉴타운에 1만5천 세대가 생겼는데, 그곳에서 20~30분 떨어진 경기 지축·삼송 지구에 3만 세대가 더 들어온다. 이 길을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다. 은평새길을 뚫는 데만도 1천억원 넘게 들어간다. 북한산 경관 일부도 훼손된다. 그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엄청나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박 시장이 토건족에 설득당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하는데.

=그건 (언론이) 판단을 하시라.

-시민사회는 박 시장의 뿌리이자 강력한 지지층인데.

=시민사회 비판은 아주 당연하고 건전한 일이다. 아무리 동료였다고 해도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일부러라도 더 비판해야 한다. 비판 때문에 더 고민해보게 되잖나. 다만 우리가 고민했던 부분을 잘 모르는 면도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그분들도 경전철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재정 문제를 고민하는 거다. 그런데 지금도 지하철에 매년 4천억원을 투자한다. 4천억~5천억원이면 경전철 10개 노선을 만들 수 있다. 또 하나는 이걸 보시라는 거다. 민자 사업의 대표적 문제점이 농축된 게 지하철 9호선 사례다. 일방적으로 요금 인상을 하는 바람에 촉발됐는데, 이 민자 사업을 어떻게 시민들의 이익으로 바꾸었는지 보시란 말이다. 13~14%에 달하는 높은 이율을 4~5%로 확 낮췄고, 요금 결정권을 서울시가 가져왔다. 민자 사업이라는 점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공공적 이익을 지킬 수 있다. 민자 쪽에는 최소 이익도 보장할 수 있다. 이율(은행 금리)이 굉장히 낮아지는 등 변화된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시민사회와 끝장토론 일정과 시점을 조율 중인데, 토론 결과에 따라 사업 자체를 전면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나.

=그럴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 물론 문제가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바꿔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비판으로 보면 바꿀 일은 아니지 않을까. 많은 부분을 검토해서 내린 결론이고, 기초적 자료가 제공되면 많은 분들의 생각이 바뀔 거다.

-서울시장 재선용 사업이 아닌가.

=나는 물론 재선에 나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한다고 반드시 당선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일을 안 한다고 당선 안 될 것도 아니다. 선거는 수많은 변수에 의해 움직인다. 서울시장 선거는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늘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내 일에 충실하면서 시민의 이익과 미래 서울의 비전을 위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내가 시장 되려고 목을 걸었던 사람이 아니지 않나.


“재선 노력 하겠지만… 선거엔 수많은 변수”


-민주당 후보로 나서겠다고 했다. 무소속 후보로 나섰던 2010년 보궐선거와는 많이 다를 듯한데.

=그런 거 계산할 줄 잘 모른다. 당시 무소속으로 나오면서도 더 큰 민주당에 들어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정치 혁신과 더불어 정당정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던 거다. 지금 민주당에 있는 게 때로는 불리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당적을 버릴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정치적 상황 변화나 조건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이다. 좀 쉬라고 하면, 내가 또 할 일이 많잖나? (웃음) 시민들이 잘했다고 하시면 한 번은 또 열심히 봉사할 생각이다. 이미 버린 몸이니까. (웃음)

경전철 사업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은 당연하고 건전한 일이다. 아무리 동료였다고 해도 일부러라도 더 비판해야 한다. 비판 때문에 더 고민해보게 되잖나. 다만 우리가 고민했던 부분을 그분들이 잘 모르는 면도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박원순 시장은 경전철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인터뷰가 끝난 뒤 한 서울시 직 원이 박 시장의 최근 저서인 <정치의 즐거움>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정치가 즐거운가” 라고 묻자, 박 시장은 “어떤 일이든 긍정적이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일도 되잖아 요”라고 답했다.

박원순 시장은 경전철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인터뷰가 끝난 뒤 한 서울시 직 원이 박 시장의 최근 저서인 <정치의 즐거움>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정치가 즐거운가” 라고 묻자, 박 시장은 “어떤 일이든 긍정적이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일도 되잖아 요”라고 답했다.

-대선 개입 댓글,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등 국정원의 정치 개입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을 내란 음모 혐의로 수사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국정원의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의 당사자이기도 한데, 현 사태를 어떻게 보나.

=이석기 의원 사건에 대해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아직 정확히 나와 있지 않아서 논평하기 적절치 않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이나 나에 대한 제압 문건 등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옛날에 막걸리·고무신이 횡행하던 게 훨씬 고도화해서 국가권력이 선거에 개입한 게 틀림없는 거 아닌가. 덮는다고 묻히는 게 아니다. 계속 드러나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 때 에밀 졸라가 ‘진실이라는 건 묻을수록 폭발력을 준비한다’고 했다. 이는 여전히 진리다. 어찌 보면 전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그걸 잘 해결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이 정부의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야당의 요구대로 특검을 하든지, 당장 조금 손해가 있더라도 원칙과 상식대로 하면, 그게 큰 길이다.

-두 사건으로 인해 한국 사회의 이념·지역·세대 대결 양상이 더욱 격화되는 것 같다.

=독일의 시민정치 교육을 보면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독일은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아주 극단적 세력들이 결국 나치 정부로 이어졌다. 전쟁이 끝난 뒤 균형 잡힌 시민의식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모든 정당이 에버트재단·아데나워재단 등을 통해 시민정치 교육을 시작했다. 영국에도 시민정치 재단이 많아서 시티즌십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어디에나 극단주의자는 있지만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의 대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굉장한 노력을 하고 있는 거다. 우리는 계속 극단이 판치는 사회다.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나치와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시민정치 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 국가적으로도 해야 할 사업이다. 에버트재단에 가봤는데, 독일에서 최고로 경치가 좋은 곳에 연수원을 만든다. 사람들이 정치교육을 받기 싫어하니까 그걸로 유혹하는 거다. (웃음)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권과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 진실을 말해야 하고 정의를 외쳐야 하는데, 상대가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협의하고 조정하는 자세가 돼야 하는데, 우리 정치권은 너무 험악한 말들의 유희를 보여주고 있다.


“재선 자신하냐고? 그런 말 하면 떨어진다”


-민주당 지지율은 20% 선에서 답보 상태다. 왜 인기가 없나.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이 있는데다, 과거에 여러 불안정한 정세에서 찍혔던 낙인 같은 게 아직 충분히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민주당이 지금처럼 민생에 올인하면서 합리적 대안을 내고, 야당은 야당이니까 야당다운 역할을 한다면 이런 인식은 바뀔 것이라고 본다. 다만 정부·여당은 늘 실수하게 돼 있는데 그런 반사적 이익을 노릴 게 아니라 조금 더 포지티브한 정책을 많이 내놓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노력을 더 많이 보이면 좋겠다.

-서울시장 선거 당선은 자신하나.

=그런 말 하면 떨어질 거다. (웃음) 시민들이 판단해줄 것이다.


글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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