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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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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앙의 끝, 아무도 모른다

여전히 진행형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주변 해역 오염으로 수산물 조업·출하 제한 잇따라
등록 2013-09-05 15:09 수정 2020-05-03 04:27

“가장 우려했던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당신네 방사능 오염수 대책은 이미 파탄 났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기시 히로시 일본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8월29일 도쿄 지요다구 도쿄전력 본사에서 히로세 나오미 도쿄전력 사장을 앞에 세워놓고 격한 어조로 도쿄전력을 비판했다. 히로세 사장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사죄했지만 어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도쿄전력의 방사능 오염수 문제 해결이 2년 넘게 아무런 진전도 보지 못한 채 갈수록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까닭이다.

“당신네 오염수 대책은 이미 파탄났다”

후쿠시마 제1원전 남쪽 이와키시의 어업협동조합과 북쪽에 인접한 지역의 소마후타바 어업협동조합은 9월 초순에 시작하기로 했던 연안에서의 시험 조업을 연기하기로 이날 결정했다.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가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유출 사태를 국제원자력기구 사고척도(INES) 기준 ‘사고등급 레벨 1’에서 ‘레벨 3’(8개 등급 가운데 5번째 등급)으로 올린 지 하루 뒤의 일이다.
2011년 3월11일 대지진의 해일에 휩쓸려 시작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원자로 냉각장치가 고장나 1~3호기 원자로 안의 핵연료는 녹아내려 원자로 바닥으로 쏟아져내렸고, 일부는 원자로 바닥을 뚫고 그 아래로 쏟아져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도쿄전력은 원자로 안에 물을 넣어, 녹아내린 핵연료가 다시 임계에 도달해 핵분열을 계속하지 않도록 가까스로 막고 있을 뿐이다. 그 덕에 초기 단계에 대기 중으로 대규모로 방출되던 방사성물질의 양이 지금은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핵분열을 통해 한번 만들어진 방사성물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세슘(137Cs) 같은 핵종은 핵붕괴를 거쳐 반으로 줄어드는 데 30년이 걸린다. 대기 중으로 뿜어져나갔다가 땅으로 내려앉은 방사성물질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 북동쪽 지역은 10만여 명이 집을 떠나 피난살이를 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5만 명가량은 옛집 주변에 오염이 심해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염지대 주변에선 농사를 지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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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심각한 것은 수산물 오염이다. 땅으로 떨어진 방사성물질이 빗물과 함께 강과 바다로 흘러들고 있는 까닭이다. 바다처럼 넓지 않아 방사성물질이 바닥에 쌓여가는 강이나 호수의 담수어 오염은 매우 심각하다. 일본 수산청 집계를 보면, 후쿠시마현에서는 2011년 6월부터 은어, 산천어, 잉어, 민물 뱀장어 등의 출하가 일찌감치 제한됐다. 담수어 오염은 계속 확산돼, 도치기현의 곤들매기, 군마현의 산천어, 도쿄 동쪽 지바현의 잉어 등으로까지 확산됐다. 도쿄 북동쪽 사이타마현에선 메기 잡이 출하를 자제하고 있고, 에도강의 뱀장어에 대해서는 도쿄도가 출하를 제한하도록 요청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바다 오염이다. 후쿠시마 원전 지하로는 하루 1천t의 지하수가 흘러가는데, 그 가운데 400t가량이 원전의 지하 공간으로 흘러들어 방사성물질과 섞여 고농도 오염수로 바뀌고 있다. 도쿄전력은 늘어나는 오염수를 정화해 그동안 32만t을 탱크에 옮겨담았다. 하지만 원전 지하의 오염수는 줄어들 줄 모른다. 오염수 정화 능력이 늘어나는 오염수의 양을 따라잡지 못하는 까닭이다. 현재 탱크의 저장 용량은 6만t가량의 여유밖에 남지 않았다. 도쿄전력은 오염수 저장탱크의 용량을 2015년까지 70만t, 2016년 중에 80만t까지 계속 늘릴 계획이다.

오염수 양 못 따라잡는 정화능력

원전 지하의 터널 등에 고인 오염수는 균열 지점을 통해 일부가 땅으로 스며들어 바다로 새나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2011년 4월 고농도 오염수 500t가량이 바다로 새나간 바 있다. 최근에는 오염수를 저장한 일부 탱크에서도 문제가 생겨 200t가량이 유출됐다고 도쿄전력은 밝혔다. 도쿄전력은 원전 바닷가 쪽에 차단벽을 쌓고 우물을 파서 오염수를 퍼담기 시작했지만, 바다로 유출되는 것을 다 막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지하수가 원전으로 흘러가 오염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쿄전력은 원전 주변의 땅을 얼려 ‘동토의 벽’을 만든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일본 정부가 국비를 지원해 이 공사를 신속히 추진할 수 있게 돕기로 했다. 도쿄전력은 이 공사가 2015년에 끝나면 원전 지하로 지하수가 유입되는 양을 하루 60t까지 줄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실제 성과는 공사가 끝나봐야 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금은 원전 지하의 오염수가 바깥쪽의 지하수 수압 때문에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지만 동토의 벽이 만들어지고 나면 오염수가 건물 밖으로 새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동토의 벽이 지하수의 유입을 막으면서, 오염수의 외부 유출까지 차단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원전 근처 바다의 방사능 오염은 이미 심각해서,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는 대부분의 어종에 대해, 북쪽 미야기현과 남쪽 이바라키현 앞바다에서는 일부 어종에 대해 어로를 금지하고 있다. 방사성물질이 해저에 쌓이는 까닭에, 해저에 사는 생선과 조개류가 주로 조업 금지 대상이다. 일부 어종은 어업협동조합이 나서서 조업을 자제하고 있다. 어로가 허용되는 지역에서는 잡은 물고기를 검사해 허용 기준치를 넘는 방사성물질이 검출되면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후쿠시마 앞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해서, 일본인들이 식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어패류의 소비를 크게 줄였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총무성의 가계조사 결과를 보면, 2인 이상 가구의 신선어패류에 대한 평균 소비지출은 2011년 3월 3622엔에서, 2012년 3월 3752엔, 2013년 3월 3837엔으로 소폭 증가하고 있다. 다만 신선어패류의 소비자 물가지수가 2013년 6월 현재 97.9로 2010년의 100에서 2.1% 떨어진 게 눈에 띈다. 2013년 6월에는 신선어패류의 가격지수가 전년 동월에 견줘 4.6% 하락하기도 했다. 신선어패류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이 있는 상황에서 공급자들이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늘 먹던 것이고, 검사를 다 하고 있고, 어른들에게는 약간의 방사능이 있어도 큰 영향은 없으니까 그냥 먹고 있지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생선을 먹이는 것은 좀 마음에 걸려요. ”

“어른은 먹지만 아이들에 먹이기는…”

마에다 아이코(38·주부)는 생선을 살 때 후쿠시마 근처 현의 바다에서 잡은 것은 극구 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다는 워낙 넓어서, 원전에서 흘러나온 방사성물질을 희석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후쿠시마 원전에서 계속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든다면, 일본인들도 일본산 수산물을 점점 기피할 것임은 틀림없다. 도쿄전력은 방사성물질을 걸러내고 남은 저농도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고 몇 차례나 시도했다. 그것을 버려야 고농도 오염수를 저장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업협동조합은 이를 극력 반대해왔다. 그 장면이 사람들의 기억에 깊이 새겨져, 후쿠시마 앞바다를 죽음의 바다로 인식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바다 오염은 조금씩 계속 확산되고 있다. 지금은 그것이 언제쯤 멈출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도쿄(일본)=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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