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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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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리아에 평화를!

2년2개월째 내전으로 10만 사망자와 200만 난민 낳은 시리아의 오늘… 공습도 군사 개입도 아닌 휴전협정이 급선무 
등록 2013-09-05 13:27 수정 2020-05-03 04:27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기운이, 이집트를 거쳐 시리아에 상륙한 것은 2011년 3월15일이다. 평화로운 시위로 시작된 ‘다마스쿠스의 봄’은 바샤르 아사드 세습독재 정권에 잔혹하게 유린당했다. 그해 6월11일 터키 국경 지대인 이들리브의 소도시 지스르 아쉬슈구르에서 성난 시위대가 경찰서를 습격·장악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내전의 서막이었다. 그로부터만 따져도, 시리아 내전은 벌써 2년2개월째를 넘기고 있다.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400만 국내 난민 중 어린이 74만 명

죽음의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지난 6월 내놓은 자료에서 “지난해 7월 이후 매달 적어도 5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전했다.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이미 10만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시리아 내전을 국제화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는 ‘화학무기 사용 의혹’도, 기실 이미 여러 차례 되풀이된 일이다.
국경을 넘는 난민 행렬도 갈수록 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난 8월20일 자료를 내어 “이라크와 맞닿아 있는 (시리아 북동부) 페슈카보르 국경을 넘어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으로 향하는 난민이 최근 며칠 새 급격히 늘고 있다”며 “8월 중순 이후 일주일 남짓 만에 무려 3만 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이 이라크 국경을 넘어왔다”고 전했다.
갑작스런 난민 유입은, 지난 8월15일 이라크 북부 지역 일대에서 광범위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는 쿠르디스탄 정부가 국경도시 사헬라의 페슈카보르 철교를 전격 개방하면서 시작됐다. 이 다리는 티그리스강을 사이에 두고 시리아와 이라크를 연결한다. 철교가 열린 직후부터 단 사흘 만에 2만 명이 넘는 시리아인이 국경을 넘었다.
예상치 못한 규모로 난민 행렬이 이어지자, 낡은 철교가 주저앉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출입이 일시 통제되기도 했을 정도다. 영국 는 8월26일 인터넷판에서 “국제사회가 화학무기 사용 등 정부군의 만행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는 새, 반군 진영은 북동부 일대에 거주하는 시리아계 쿠르드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상 인종청소”라는 게다. 페슈카보르 철교를 넘은 난민 대부분은 시리아계 쿠르드족 출신이란다.
쿠르드족뿐이 아니다. 신산스런 삶에 예외는 없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미 지난 6월 내놓은 자료에서 “이라크·요르단·레바논·터키 등 이웃 나라는 물론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각국까지 흘러든 시리아 난민은 이미 2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UNHCR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2013년 8월 현재 시리아 출신 등록 난민은 191만6400여 명에 이른다.
유니세프가 지난 8월23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시리아 난민 가운데 100만 명가량은 18살 이하 미성년자다. 이들 미성년 난민 가운데 절대다수인 74만 명은 11살 이하 어린이란다. 시리아 내부에서 떠돌고 있는 국내난민(IDPs) 400만~500만 명 가운데 약 200만 명도 어린이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내전 발발 이후 지금까지 구금 또는 실종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 주민만도 13만 명가량에 이른다. 화학무기 사용 의혹이 아니어도, 시리아 내전은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공습도, 군사 개입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유혈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평화회담뿐이다.” 는 8월26일 인터넷판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신문은 이어 “(화학무기 사용 의혹이 일고 있는) 8월21일의 참극은 분명 가공할 범죄지만, 국제사회로선 흔치 않은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군단체 1천 개 훌쩍 넘을 것”

‘기회’란 무슨 뜻에서 한 말일까? 는 “화학무기 사용 의혹이란 ‘극단적인 상황’과 뒤이은 미·영 주도의 확전 분위기는 시리아 내전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따지고 보면, 지난 2년여 국제사회는 시리아 내전을 기본적으로 ‘봉쇄 가능한 전쟁’으로 여겨왔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이어진 레바논 내전처럼, 국경을 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면서 사그라지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봤던 게다.
이런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중반 이후부터다. 시아파(정부군)-수니파(반군)로 갈라서 싸우던 내전이 서서히 국경을 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레바논에서, 이라크에서, 시리아 내전의 음습한 그림자가 핏빛 참극으로 불을 뿜어댔다. 여기에 화학무기 사용 의혹까지 불거진 터다. 오바마 대통령의 표현처럼, 시리아 사태는 ‘통제 불가능성’이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고 말았다. 지난 2년여, 평화협상은 왜 이뤄지지 못했을까? 시리아 내부적으로만 따지면, 답은 하나로 모아진다. 정부군도, 반군 쪽도 자기들의 승리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권력을 나눌 생각을 누가 할 텐가? 최근의 전황 역시 평화협상을 시작하기에 딱히 좋은 여건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반군의 거점이던 홈스 외곽의 쿠사이르 일대를 장악한 이후, 시리아 정부군은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개전 초기부터 아사드 정권의 든든한 배후 노릇을 해온 러시아·이란과 레바논의 헤즈볼라 역시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설에 의구심을 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군 쪽의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하다. 워낙 다양한 세력으로 갈려 있는 상태여서, 일단 평화협상이 시작되더라도 단일한 협상팀 구성조차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 일부에선 “가족 단위 무장세력부터 잘 훈련된 정부군 이탈세력, 알카에다와 연계된 외부세력 등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반군단체가 1천 개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란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 등이 무기를 지원하고 있는 자유시리아군(FSA)의 내부 사정도 마찬가지다. 은 8월26일 다마스쿠스 주재 유럽 외교관의 말을 따 “FSA를 직접 지원할 방법이 없다. 지휘·통제 체제를 갖춘 단일한 단체로서의 FSA는 시리아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옳다”고 전했다. 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정부군 쪽보다는 되레 반군 쪽이 좌충우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 해결을 위한 교전 당사자 간 평화협상은 이미 지난 5월 미국과 러시아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자고 공동으로 제안을 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구체적인 협상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그간 번번이 연기를 되풀이해왔다. 전문가들은 “서로를 죽이려 목숨을 걸고 싸워온 정부군과 반군이 한 번의 협상으로 평화협정까지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극한으로 치달은 유혈 사태가 더는 악화되지 않도록 휴전협정 체결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더는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시리아에선 ‘실패한 정부’와 ‘분열된 반군’이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고 있다. 이미 ‘장기전’으로 치달은 내전은 국가 자체를 해체 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군벌이 발호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 두려워해야 할 조짐이다. 더는, 뒷짐만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레바논 내전 당시에도 휴전협정은 여러 차례 맺어졌다. 그리고 쉽게도 깨졌다. 휴전이 깨질 때마다 베이루트의 거리는 다시 핏빛으로 물들었지만, 다시 협정이 맺어질 때마다 수천의 목숨이 애꿎은 죽음을 면한 것 또한 사실이다. 두루 새겨야 할 역사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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