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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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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돌려 시장 균형 맞추는 게 중요”
마리 앙투아네트 망언 연상시키는 박 대통령 전세 대책
등록 2013-08-27 15:14 수정 2020-05-03 04:27

혹시나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19일 국무회의에서 전세난 해결을 당부하며 “가장 시급한 전·월세 문제는 임대인(집주인)과 임차인(세입자)이 서로 간에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집주인의 과도한 전세금 인상 요구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는 방안으로 전·월세 상한제 같은 안전장치 도입을 주문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기대는 하루 만에 꺾였다. 박 대통령은 이튿날인 8월20일 “전세시장에 집중된 수요를 매매시장으로 돌려서 매매와 전세시장 간의 균형을 맞추도록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전세난 완화에는 부동산 경기 띄우기가 정답이라는 것이다. 세입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지금껏 고통만 가중해온 낡은 레퍼토리다.

부동산 경기 띄워 전세난 잡겠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박 대통령이 보낸 신호를 충실히 따랐다. 당정은 곧바로 협의에 들어가 8월28일 발표하기로 한 ‘전·월세 종합대책’의 최우선 목표를 ‘주택 거래 정상화’로 정했다. 여유 있는 세입자와 기존 집주인들이 집을 사도록 규제는 풀고 인센티브는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 등과 관련한 법안을 9월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같이 지난 ‘4·1 부동산 종합대책’에 담겼지만 투기를 조장한다는 비판 여론에 밀려 지금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탓이다.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거센 반발이 나오는 ‘취득세율 영구 인하’도 함께 처리하기로 당정은 의견을 모았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의 비판이다. “이명박 정부 때와 똑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분양가를 마음대로 올리게 하고 집을 10채 갖고 있어도 세금을 많이 안 물리겠다는 것은 전세난 해결과는 전혀 상관없다. 집값만 올릴 뿐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 때 실패한 정책이고, 성공해도 (집값만 올라) 큰일 나는 정책이다. 시장주의자들이 하고 싶은 것을 전세 대책으로 덮어씌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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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임대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방안으로 논의되는 대책도 있기는 하다. 전·월세 대출 이자를 낮춰주거나 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것이다. 시중은행들이 최근 전세자금 대출 한도를 30% 정도 늘려줬고 기존보다 이자가 저렴한 ‘목돈 안드는 전세’(집주인이 전세금을 빌리면 세입자가 이자를 내는 제도) 대출 상품도 판매되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전세 수요를 월세 수요로 유도하기 위해 월세에 대한 세제 혜택(연소득 5천만원 이하 무주택 세입자에게 연간 300만원 한도에서 월세의 50%를 소득공제)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최창우 전국세입자협회 공동대표의 지적은 이렇다. “주거비가 너무 올라 이미 세입자의 감당 능력을 넘은 상태다. 그런데 부담을 줄여주려는 근본적인 대책은 보 이지 않는다. 빚내어 높은 전세금을 감당하라는 것은 세입자를 빚쟁이로 만드는 조처다. 대출을 쉽게 해주면 집주인의 인상 요구가 과도해지면서 전셋값만 더 올라갈 것이다.”

정부 검토안서 사라진 전·월세 상한제

그동안 야권과 시민단체가 도입하자고 주장해온 세입자 보호 장치들은 정작 당정협의에서 모두 빠졌다. 세입자가 원하면 전세 계약을 한 번 연장해주는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재계약시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가 대표적이다. 8월 초만 해도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와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과 민주당이 요구하는 전·월세 상한제 등을 동시에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빅딜’을 제안했지만 점점 발을 빼는 분위기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당정협의 직후인 8월21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장 흐름이 있는데 (전·월세를) 묶어둔다는 게 과연 가능성이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전·월세 상한제 도입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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