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정글에서 25년을 버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전쟁까지 벌어지는 곳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근데 그런 산악정글 전장에서 25년을 식솔까지 먹여가며 견뎌냈다. 탄케다. 아버지에게 따귀를 맞아가며 학교와 동네 도박판을 주름잡고 다니던 탄케에겐 1988년 민주항쟁에서 마이크를 잡고 단상에 오르면서부터 ‘반군 지도자’ 팔자가 드리워졌다.
버마 전국에서 1등부터 480등까지 자동으로 간다던 둘뿐인 의과대학 가운데 하나인 만달레이의대 5학년 1학기를 마칠 무렵이었다. 그 뒤 체포를 피해 국경을 넘은 탄케는 버마학생민주전선 야전병원을 차려 동지들과 산악주민들을 돌보다, 2001년 의장이 되면서부터 ‘테러리스트 수괴’ 딱지를 달았다.
대를 이은 민주화 투쟁
반골 집안 피가 그이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소윈마웅은 만달레이대학 학생동맹 의장으로, 1962년 네원 쿠데타 반대투쟁을 이끈 역사적인 투사였다. 일생 동안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그 아버지는 ‘8888 민주항쟁’ 뒤 체포당해 30년형을 받고 복역하다 1997년 풀려났으나, 감방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형 탄독은 ‘8888 민주항쟁’ 도화선을 깐 랑군공대 시위를 이끌었던 유명한 학생운동 지도자로, 지금껏 버마~타이 국경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니 2004년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수찌가 그 싸움꾼 가문을 몸소 찾아가서 경의를 표했을 수밖에. 말하자면, 대를 이어 버마 현대사를 관통한 탄케의 그 출신성분 하나는 끝내준다는 뜻이다. 그 힘으로 국경 산악전선을 25년 동안 달려왔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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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10일 랑군 한복판에 자리잡은 미얀마평화센터(MPC), 그 25년 전쟁의 끝을 알리는 버마학생민주전선과 정부 사이의 연방단위 휴전협정 조인식 날 탄케 얼굴은 어두웠다.
-왜 그렇게 시무룩한가? 휴전협정에 서명했는데 기분은 어떤가?
=기분은 무슨 기분, 조건부 계약일 뿐인데. (탄케는 휴전 말이 오가기 시작한 지난해 초부터 말끝마다 이 ‘조건부’란 걸 달고 다녔다.) 서명을 안팎에서 항복이나 투항으로 여기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고. 서명했다고 다 끝난 게 아닌데.
-그렇지, 지금까지 국경 전선을 보면 소수민족 해방군들과 정부군이 휴전협정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얼마 가지 않아서 늘 깨지곤 했으니까.
=협상 대표인 아웅민 장관이나 정부 쪽은 괜찮아 보이는데 문제는 군부지, 뭐. 그동안 봐서 알겠지만 언제든 내키면 총질해댈 수 있는 놈들이니까. 해서 이 따위 서명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직은 회의적이고 믿기지도 않고.
-최종 협상 과정에서 어려운 대목이 있었던 것 같더라. 8월5일 주 단위 휴전협정 서명 때도 막판에 양쪽 군사 실무자들이 회담장 빠져나가 다시 밀담 나눴듯이.
=아, 그건 정부가 휴전 기간 동안 우리한테 신병 증원을 금한다는 문구를 들이대는 바람에 좀 늘어졌지.
“조직을 정당으로 바꾸는 건 반대”
-휴전 기간에 무력 보충하는 건 상식이지. 분쟁 지역들 보면 서로 시간 벌고 무장 재정비하고자 휴전하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시간이야 남아돌아도 무력 증강할 돈이 없잖아. 동네 구멍가게들 외상값도 못 갚는 마당에.
=(낄낄대며) 그렇지. 사실은 정부가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한 셈이지. 미국 정부가 9·11 동시테러 뒤 우리 버마학생민주전선을 테러리스트 집단에 올리는 바람에 돈줄이 완전히 끊겼다는 걸 모를 거야.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서고 2010년에 “실수였다”고 한마디 하고는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하긴 했지만,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으니.
-미국 정부는 그렇다 치고, 버마 정부는 아직도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날리지 않았지?
=공식적으로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어 우리도 몰라.
-이젠 어떻게 할래? 학생군들 귀향 문제도 있고 사회복귀 프로그램도 돌려야 할 텐데?
=아직 거기까지 생각하기엔 너무…. 중앙위원회에서 논의를 했지만 재원이 없으니 구체적인 계획은 힘들고. 게다가 휴전 서명했다고 당장 달라질 것도 없고. 정치회담 때까지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버마학생민주전선을 정당으로 돌릴 가능성은 있나? 어차피 정치를 해야 할 텐데.
=내부 논란거리야. 정당으로 가자는 쪽도 있고, 현대사의 상징인 학생운동을 간직하자는 쪽도 있고. 이번에 랑군 와서 다시 느꼈지만 시민사회가 우리한테 강하게 정치 참여를 요구하는데, 나는 개별적으로 정치 참여는 허용하되 조직을 정당으로 바꾸는 건 반대야.
“산골 의사 노릇도 좋지 않을까”-학생운동 한 뿌리인 민꼬나잉 쪽 ‘88세대’와 손잡으면 엄청난 파괴력이 있을 것이란 기대들 때문이지. ‘88세대’도 2015년 차기 총선까지는 정당 하지 않겠다던데. 민꼬나잉이 정치 불참을 선언한 상태라 그쪽도 정당화는 쉽지 않을 거야. 자넨 어떻게 할 건데?
=고민 중, 정치판으로 가야 진짜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과 25년 동안 싸웠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충돌 중. 아예,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 끝낸 뒤 산골 의사 노릇 하는 것도 우리 사회에 도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지금 버마에선 ‘고민’이 유행이다. 갈 길은 서로 달라도 저마다 한 자락씩 고민 없는 이들이 없다. 정작, 25년 전쟁을 끝낸 휴전협정에 서명하고도 그 고민은 더 깊어만 가고 있다. 탄케처럼.
랑군(버마)=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beyondheadline1@gmail.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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