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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

학생군과 휴전협상 주도한 아웅민 대통령실 장관… 테인세인 대통령 전폭 지지 등에 업고 ‘차기’ 나서나?
등록 2013-08-21 11:27 수정 2020-05-03 04:27

2011년 3월 출범한 테인세인 대통령 정부가 이른바 ‘평화건설 진행 3단계’ 로드맵을 내걸고 모든 소수민족해방·민주혁명 세력들과 휴 전협상을 벌이면서부터, 버마 안팎 눈길들이 협상 대표단을 이끄는 투톱으로 쏠렸다. 집권 연방단결개발당 하원의원 아웅타웅과 철도 장관 아웅민이었다.
근데 2012년 5월 들어 갑자기 아웅타웅이 물러나고 아웅민 원톱 체제가 들어섰다. 겉으론 아웅타웅의 건강 문제를 내세웠지만, 정치 판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 의회와 정부 사이의 권력투쟁이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어쨌든, 그로부터 온건파로 알려져온 테인세인 대통 령의 전폭적 지지를 업은 아웅민의 계절이 돌아왔다. 아웅민은 휴전 협정을 성공적으로 끌어내면서 ‘제2인자’라거나 ‘포스트 테인세인’이 라는 꼬리표를 달기 시작했다.
육군 소장 출신인 아웅민은 군사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 새 정부 들어 2012년 8월 대통령실 장관이 되기 전까지 9년 동안 철도교통장 관을 지냈다. 골수 ‘군복 정치인’인 셈인데, 누구를 만나도 정중하게 먼저 손을 내밀 줄 알고 군복 냄새를 잘 털어낸 까닭에, 반대쪽에서도 신망이 두텁다. 지난 8월11일, 랑군의 미얀마평화센터 안 그이 집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함께 나라를 다듬어갈 친구?’ 아웅민 버마 대통령실 장관(앞줄 오른쪽)이 8월10일 버마학생민주전선과 휴전협정서를 교환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함께 나라를 다듬어갈 친구?’ 아웅민 버마 대통령실 장관(앞줄 오른쪽)이 8월10일 버마학생민주전선과 휴전협정서를 교환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font size="4">반군, 더 이상 적이 아니다</font><font color="#C21A1A">먼저 두 가지 고마움부터 전한다. 인터뷰 허락해준 것도 고맙고, 뭣보다 지난 16년 동안 ‘블랙리스트’에 올라 비자를 받을 수 없던 내게 길을 열어주고 특별 취재 허가까지 내준 것도 고맙다. 며칠 전, 버마학생민주전선과 휴전협정 맺었는데 기분 어떤가?</font>

1988년 전국적인 민주항쟁 속에서 버마학생민주전선이 태어났고, 그이들은 자신들 외침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글로 들어가 무장투쟁을 벌였다. 이제 테인세인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정부가 들어섰다. 민주제도는 그 학생들이 요구했던 바니까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 해서 정부와 휴전협정을 맺게 되었다. 나는 그 형제들이 정글에서 겪어왔던 어려움을 늘 가슴 아프게 여겼는데 그이들이 랑군으로 돌아오니 가족이 온 것처럼 반가웠다. 휴전협정까지 이뤄내 너무 기쁘다.

<font color="#C21A1A">정부는 아직도 버마학생민주전선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는가? 정부 공식 입장은 뭔가?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했는가?</font>

버마학생민주전선은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이제 그이들은 무기 없이 자유롭게 전국을 여행할 수 있고 누구와도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정치조직을 만들 수도 있다. 그이들이 총을 들었던 건 정치적 이유에서다. 이제 그이들에게 모든 정치적 권리를 되돌려주었고, 더 이상 적이 아니다. 그이들은 우리와 함께 나라를 다듬어갈 친구들이다.

<font color="#C21A1A">소수민족해방군들과 달리 학생군들과는 협상이 아주 더뎠는데, 뭐가 그렇게 어려웠나?</font>

그이들이 정치조직은 지녔지만 자신들이 지배하는 영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자적 해방구가 없는 버마학생민주전선은 병력을 각 소수민족해방구에 분산 배치해 소수민족과 동맹군 일원으로 정부군에 맞서왔다. 따라서 학생군은 주둔지 소수민족해방군의 입장을 염두에 둬야 했기 때문에 정부와 독자적인 휴전협정을 맺는 데 어려움이 컸다.) 그래서 정부는 학생군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서 (영역 대신) 정치적 권리를 갖도록 권하는 과정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다보니 더뎌졌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font color="#C21A1A">“이제 그이들은 무기 없이 자유롭게 전국을 여행할 수 있고 누구와도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정치조직을 만들 수도 있다. 그이들이 총을 들었던 건 정치적 이유에서다. 이제 그이들에게 모든 정치적 권리를 되돌려주었고, 더 이상 적이 아니다. 그이들은 우리와 함께 나라를 다듬어갈 친구들이다.”</font></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font size="4">휴전 조건 깨뜨리면 제압한다</font><font color="#C21A1A">근데 휴전협정 뭘로 보장할 수 있나? 지난 5월 정부는 까친독립군(KIA)과 전투 중단을 놓고 7개 항 협정을 맺었지만 북부 샨주와 맞댄 까친독립군 4여단 쪽은 여전히 정부군 공격을 받아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테인세인 대통령이 전투 중지 명령을 내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닌데 군인들은 따로 놀고 있다. 왜 정부가 군인들에 휘둘리는가? 이런 휴전협정 누가 보장할 수 있나?</font>

지금껏 정부는 14개 무장투쟁 조직들과 휴전협정 맺었다. 그 가운데 북부 샨주에서 소규모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 전투들은 원인이 있다. 정부는 신병 모집, 세금 징수, 살인, 행정물 파괴, 경찰과 민병대 방해, 제한지역 무기 휴대 여행을 금지하는 6개 휴전 조건을 달았다. 만약 그 조건을 깨뜨리면 정부군은 대상 지역을 제압한다. 해서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지만 대화 통해 풀 수 있는 문제다. 우린 그런 문제 놓고 지금도 최선 다하고 있다.

<font color="#C21A1A">언제든 깨질 수 있을 만큼 취약한 휴전협정이란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앞으로 과정은?</font>

이제 까친독립군과 팔라웅주해방군(PSLA) 둘만 남았다. 까친과는 지난 5월 7개 항 협정을 맺었고, 그 가운데 ‘전투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게 제2항에 있으니 일종의 휴전협정이었다. 물론 까친과 완전한 휴전협정이 필요하고. 팔라웅은 7월30일 만났고, 곧 다시 만나 휴전협정에 서명하기로 합의했다. 그다음엔 (평화건설 진행 3단계 로드맵의 제2단계인) 정치회담으로 넘어간다.

<font color="#C21A1A">휴전협상을 놓고 지난 정부와 현 정부 차이가 대체 뭔가?</font>

그 전 정부는 군사정부였다. 따라서 정치적인 일이 되지 않았다. 소수민족해방 세력들이 정치회담을 요구했지만 전 군사정부는 다음 정부(현 정부)로 넘겼다. 현 정부는 소수민족해방 세력들 요구대로 정치회담을 받아들인 게 큰 차이다.

<font size="4">차기 생각할 틈이 없다?</font><font color="#C21A1A">2011년 새 정부 들어서고 당신이 휴전협상을 주도하면서부터 버마 안팎에서 아주 유명해졌다. 테인세인 대통령 다음이라는 말도 나돌고, 실제로 휴전협정 성공하면 차기(2015년)도 노려볼 만할 텐데, 정치적 야망을 말해보자.</font>

평화를 원할 뿐이다. 나는 군인이다. 16살 때 군인이 되어 34년 동안 의무를 다했다. 전쟁은 진짜 나쁜 것이고, 나는 평화를 원했지만, 지난 세월 동안 (평화를) 끌어낼 기회를 못 얻었다. 이제 그 역할 할 수 있는 지도력을 얻은 마당에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다.

랑군(버마)=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beyondheadline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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