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6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국조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CBS 라디오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앵커 ‘댓글이 삭제되고 있는데 잠이 와요?’ 이런 대화를 담은 동영상이 나왔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권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경찰의) 은폐·축소의 증거로 제시한 부분인데, 동영상 내용이 편집된 것이다. 우리가 확인해보니 일부 빠져 있는 부분이 몇 개 있다.
앵커 빠져 있는 내용이 전체 내용을 바꿀 만큼 되나?
권 의미가 달라지더라고요.
앵커 어떻게 달라지나?
권 하도 내용이 많아서 지금 다 일일이 기억은 못하겠다. (중략)
앵커 어떻게 달라지는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
권 워낙 많아서 세세히 기억을 못하겠다.
앵커 워낙 중요한 부분이어서. 어떻게 달라지나?
권 중요한 부분인데 제가 답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기억을 못하겠다. 그러나 제가 들어볼 때는 의미가 달라진다.
“너무 중요한 부분인데, 기억 안 난다”는 궤변궤변인가 무지인가. 새누리당의 막무가내식 물타기로 국정조사가 파탄 지경을 맞았다. 국정조사의 핵심인 7월26일 국정원 기관보고는 새누리당의 “무기한 연기” 선언으로 무산됐다. 새누리당은 말 그대로 ‘돌격’했다. ‘국정원 보위’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태세로 국정조사에 임하고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경찰의 수사 축소·은폐 의혹을 밝히기 위한 국정조사는 ‘방탄 국조’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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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1 자도 돼요?
경찰2 댓글 삭제되고 있는 판에 잠이 와요, 지금?
7월25일 국정조사에서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 내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동영상을 공개했다. 지난해 12월16일 새벽 4시2분께 찍힌 내용이다. 국정원의 증거인멸 정황이 드러난 이 동영상에 대해 이성한 경찰청장은 “당사자한테 확인하니까, 졸리다고 하니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14일 검찰 수사 결과 발표 때 공개된 동영상에는 3시간 전인 이날 새벽 1시16분께 “그럼 그건 이제 수사팀의 몫이고. 실제적으로 이거는 언론 보도에는 안 나가야 할 거 아냐. 나갔다가는 국정원 큰일 나는 거죠. 우리가 여기까지 찾을 줄은 어떻게 알겠어”라는 수사관들의 대화가 나온다. 농담이라는 이 청장의 해명은 거짓말이다. 경찰은 이날 밤 11시 “댓글 흔적 없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선 후보 3차 TV토론이 끝나고 1시간 뒤, 그리고 대선을 55시간 앞둔 때였다.
국정조사에서 공개된 동영상들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광범위한 증거인멸 작업을 벌였을 가능성과 경찰의 축소·은폐 의혹을 더욱 짙게 했다. 검찰이 15개 인터넷 사이트를 대상으로 수사를 시작한 게 지난 4월 말~5월 초임을 감안하면, 국정원은 12월11일 여직원 김요원(가명)씨의 오피스텔이 공개돼 의혹이 제기됐을 때부터 증거인멸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이 국정조사에서 밝혀질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7월24일 법무부 기관보고를 시작으로 본격화한 국정조사에서 새누리당이 보인 행태를 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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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방어 논리’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국정원이 댓글을 단 것은 종북 좌파 척결을 위한 당연한 업무다. 경찰은 댓글 수사를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않았다. 검찰이 동영상 편집 등을 통해 짜맞추기식 수사를 한 거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줄기차게 이런 주장을 하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검찰을 비난했다.
“국정원장이 종북 좌파에 철저히 대응하라고 한 것을 선거 개입으로 몰아서 선거법으로 기소를 하느냐.”(김도읍 의원)
“북한의 교묘한 국론 분열에 맞선 사이버 활동이 필요하다. 국정원 직원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댓글을 다는 것은 장려해야 한다.”(권성동 의원)
“검찰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쓰고 중간중간 다 잘라먹었다. 경찰은 검찰의 동영상 왜곡에 경찰의 명예가 달렸다는 걸 알아야 한다.”(이장우 의원)
댓글 달기가 국정원의 당연한 업무였다면 삭제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삭제 정황이 드러나면 동영상이 편집됐다고 우기는 식이다. ‘종북 좌파 척결’이라는 칼을 휘둘러 다른 모든 쟁점을 잘라버리려는 ‘안보 장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이 “국정원 업무는 국방·외교·안보와 관련한 것이므로 비공개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국정원 기관보고를 무산시킨 것은 이런 점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국조특위의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새누리당은 매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안보를 들고나온다. 그래서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는 이런 사태까지 온 거다. 선거 개입에 대해 국정조사를 하자고 했는데, 또 안보라는 방패 뒤에 숨고 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국정원의 결정에 모두 따라야 하는 국정원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공격 논리’는 이렇다.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이자 ‘민주당이 국정원 직원을 매관매직해 대선에 개입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장우 의원은 “어떻게 여성의 차를 들이받나. 납치범·강간범이 하는 전형적 수법 아니냐. 민주당은 매일 인권을 얘기하면서 정작 보호해야 할 여성 인권을 짓밟았다. 그래서 국정조사 자체가 코미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민주당의 대선 불복’으로 논쟁을 끌고 갔다. 이장우 의원은 “친노·친문 세력이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대선에서 지고도 승복을 못하는 거다. 기본적인 민주주의 소양도 안 돼 있다”고 말했다. 조명철 의원은 “헌정질서와 민주질서를 지킨다고 하면서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국정원 게이트가 아니라 민주당 게이트”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안보 프레임이라는 수구 세력의 오래된 무기와 대선 불복 프레임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국정조사를 무력화하고 있다.
‘안보·대선불복’ 프레임 맛들인 새누리당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조사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진상이 밝혀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속내를 대놓고 드러냈다. 새누리당 국조특위 위원 9명 가운데는 ‘국조 반대파’도 있다. 김태흠·윤재옥 의원은 7월2일 국회 본회의 국정조사 실시계획서 표결 때 반대표를 던졌다. 김진태·이장우·김도읍 의원 등 3명은 표결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국정조사 기간인 7월2일 이후 ‘해외 나들이’를 다녀온 특위 위원도 여럿 있다. 간사인 권성동 의원과 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태흠 의원은 7월3일부터 4박5일 동안 중국에서 열린 ‘2013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및 사회 지도층 항일 전적지 탐방’ 행사에 다녀왔다.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과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가 주최한 행사로, 기업 협찬금으로 비용을 충당했다. 이철우 의원은 7월4일부터 중국 선양에서 열린 ‘한국주간’ 행사에 다녀왔다.
외유를 떠났던 특위 위원들이 돌아온 뒤 새누리당은 시간끌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정문헌·이철우 의원이 7월9일 사퇴하면서 ‘국정 원 저격수’로 불리는 진선미·김현 민주당 의원의 특위 제척을 요구했 다. 두 의원이 사퇴한 7월17일까지 국정조사는 마비됐고, 기관보고 가 시작된 7월24일 이전에는 증인 채택 협상으로 시간을 죽였다. 어 렵사리 시작된 회의에서도 새누리당 의원들의 본질 흐리기는 계속됐 다. 김도읍 의원은 “이번 국정조사가 삼권분립이 천명돼 있는 헌법에 합치하느냐”며 딴죽을 걸었다. 새누리당은 지난 3월 민주당과 국정 조사 실시에 합의할 때 삼권분립을 들어 “검찰 수사가 완료된 즉시” 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지난 6월25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대승적 결단”이라며 돌연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을 무단 공개한 다음날 이다. 억지춘향으로 시작한 국정조사라는 얘기다. 그리고 기관보고 이틀째 밤인 7월25일 새누리당은 무기한 연기를 선언했다. 국정조사 기간은 8월15일까지다.
분노한 시민들 시국선언 이어지는데…새누리당은 그동안 ‘청와대 여의도출장소’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지금 상황으로는 ‘국정원 여의도 지부’ 또는 ‘여의도지방경찰청’에 가 깝지 않을까 싶다. 국정조사에서 밝혀져야 할 것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 진상과 경찰의 수사 축소·은폐 의혹이다. 누가 왜 이런 짓을 저질 렀느냐는 거다. 국가권력이 시민들의 선거 의지를 왜곡하고 민주주 의를 훼손했다는 데 분노한 시민들의 시국선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 다. 7월25일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들은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처 음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새누리당이 국정원 댓글 사건의 진 상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라면, 새누 리당은 정당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거다. 민 주주의의 적일 뿐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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