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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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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타 낙동강 괴물쥐의 운명

모피코트 인기 등에 업고 한국행, 겨울 나지 못해 1차 멸종 뒤
1년에 세 번 이상 번식하며 생태계 교란종으로 변질
등록 2013-06-27 10:36 수정 2020-05-03 04:27
뉴트리아가 하천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습.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를 보면, 뉴트리아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분포·확산하고 있다.낙동강유역환경청

뉴트리아가 하천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습.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를 보면, 뉴트리아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분포·확산하고 있다.낙동강유역환경청

그 녀석이 살던 곳은 뷔페 레스토랑이었다.

1989년 11월9일 낮 서울 성동구 화양동의 한 연립주택 앞마당에는 성인 팔뚝 길이를 넘고도 남을 만큼 큰 흰쥐가 나타났다. 연립주택 지하 창문 앞에서 가만히 웅크린 대형 쥐를 보고 놀란 주민들은 동사무소 직원을 불렀다. 몸길이 40cm에 몸무게가 3.5kg이 넘는 이 쥐는 결국 동사무소 직원에게 붙들려 근처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으로 ‘압송’됐다. 서울 한복판에 출현한 초대형 쥐 소동의 실체는 금세 밝혀졌다. 보호자도 나타났다. 연립주택 옆 블록에 있는 대형 뷔페 레스토랑에서 전시용으로 두고 있던 ‘뉴트리아’였다.

이때만 하더라도 뉴트리아는 생소한 동물이었다. 그럴 법도 했다. 뉴트리아가 한반도에 정착한 지 두 해가 조금 넘은 때였다. 원래 뉴트리아는 우리나라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호수·늪에서 사는 야생동물이었다. 털이 부드러워 유럽 등에서는 이미 1950년대부터 뉴트리아를 수입해 사육하면서 모피·식재료로 사용했다.

<font size="3">물쥐·물토끼·민물개·민물물개…</font>

팔자에 없던 먼 땅을 건너와 화양동 연립주택을 헤맨 뉴트리아의 사연은 ‘모피코트의 인기’와 관련이 있었다. 뉴트리아(Nutria)는 원래 스페인어로 수달 또는 수달의 가죽을 뜻한다. 1980년대 초는 초대형 어음 사기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큰손’ 장영자씨의 3천만원짜리 여우 모피코트가 화제가 되는 등 모피 옷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여우·밍크 등이 비싼 탓에 뉴트리아·너구리·사향쥐 등 값싼 모피용 재료가 필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뉴트리아의 생김새를 따 물쥐·물토끼·민물개·민물물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뉴트리아의 이민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1985년 7월 프랑스를 통해 우리나라로 처음 건너온 ‘뉴트리아선발대’ 100마리는 한반도에서 겨울을 두 차례 겪고 모두 죽었다. 당시 뉴트리아는 기온이 영상 5℃ 이하로 떨어지면 몸에 이상이 올 정도로 민감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뉴트리아 선발대’가 폐사하고 2년이 지나서야 불가리아에서 60마리가 다시 들어왔다. 충남 서산의 한 농장에서 적응을 거친 뉴트리아는 번식에 성공해 1990년대 중반까지 2400마리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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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처럼 어렵게 한국 땅에 정착한 뉴트리아는 현재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고 있다. 뉴트리아 사육사업이 쇠퇴해 야생에 버려진 뉴트리아가 늘면서 골치를 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1년에 세 번 이상번식하는 탓에 급격히 개체 수가 늘어나 농가 작물을 훼손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방송을 통해 ‘낙동강 괴물쥐’라고 소개되면서 혐오감까지 더하고 있다.

<font size="3">잡아오면 1마리당 2만~3만원</font>

뉴트리아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경고는 이미 1999년에 제기된 바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수달분과 위원 한성용 박사 연구팀은 1996~99년 경남 창녕 우포늪 포유류 서식 실태조사를 한 결과 뉴트리아가 대량 서식하고 있다며 정밀조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 뒤 정부는 2009년이 되어서야 뉴트리아를 ‘생태계 교란종’으로 분류해 관리하기 시작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2010년 생태계 교란종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뉴트리아는 낙동강 부근 11개 조사 지역에서 모두 151개체가 관찰되는 등 낙동강을 중심으로 분포·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에는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도 제주도 안 농가에서 버려진 뉴트리아가 서식하는 게 확인되기도 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뉴트리아를 잡아오면 1마리당 2만~3만원씩 보상해주는 수매제도를 실시하는 등 현상금까지 내걸린 상태다.

이처럼 뉴트리아가 ‘불청객’으로 전락한 것은 사람 탓이 크다. 외래종을 들여오면서 활용 가능성을 꼼꼼히 살피지 못한 것이다. 뉴트리아 계약 사육이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2001년에는 15만 마리까지 늘었지만 사업 수익성은 좋지 못했다. 1마리당 20만~30만원이 넘었지만, 뉴트리아 고기를 합법적으로 유통할 법체계는 마땅히 없었다. 건강원 등에 건강식품 원료로 유통되기도 했지만 대중화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뉴트리아는 축산법에 따라 가축으로 분류됐지만, 축산물공처리법에는 가축으로 포함되지 않는 등 법체계도 엉망이었다. 뉴트리아를 합법적인 식품 원료로 쓰도록 한 건, 2003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위생적인 도살 처리를 한 뒤 검사받는 대상을 정하는 ‘식품의 기준 및 규격’에 뉴트리아를 포함하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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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도 뉴트리아뿐만 아니라 황소개구리·큰입배스의 도입 실패를 교훈 삼아 외래종 피해를 예방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환경부는 주변 생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거나 서식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 외국산 동식물을 들여올 때는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는 내용을 담은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마련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적용될 이 법안에는 외래종 피해 실태 등을 조사·연구하는 외래생물관리계획을 5년마다 세우는 내용도 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을 중심으로 외래종을 들여오는 작업을 정부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도훈 국립환경과학원 자연평가연구팀 연구원은 “뉴트리아의 경우 유해성을 판단하기 전에 영리적 목적으로 도입된 면이 있다”며 “현재는 수입 외래종에 대해 전체적으로 유해성 여부 평가를 하고, 기존에 들어온 외래종을 주기적으로 조사해 최대한 확대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font size="3">미국에선 ‘조절 프로그램’ 운영</font>

실제로 미국·영국 등 뉴트리아 수입국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제를 겪은 바 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는 2002년부터 매해 평균 30만 마리씩 뉴트리아를 대규모로 포획하는 ‘조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최근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뉴트리아의 개체 수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언론에서 쥐와 고질라(괴수영화 주인공)의 합성어 ‘랫질라’(Ratzilla)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고향을 떠난 뉴트리아가 이래저래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참고 문헌 (국립환경과학원·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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