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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하던 5108호 병실이 술렁였다. 한 지역신문 기자가 환자들에게 병원 폐업에 대한 의견을 묻고 나 간 뒤였다. 폐암 말기로 입원한 김병철(89) 할아버지를 간호하던 아내 송명희(84) 할머니의 온화한 얼굴 이 파랗게 질렸다. “우리는 집으로는 죽어도 몬 간다. 지금도 (산소호흡기 없으면) 숨도 제대로 몬 쉬고, (폐에서) 물도 빼야 한다. 대학병원은 자리 없어 안 될 끼고, 딴 병원은 너무 소라서(비좁아서) 영 파이 다.” 온종일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던 할아버지도 큰소리를 냈다. “내는 죽을 때 다 됐는데 어디로 나 가겄노. 오늘 죽을란지 내일 죽을란지 모른다.” 화를 쏟아낸 할아버지가 숨이 찬 듯 코에 산소호흡기를 달고는 자리에 누웠다. 옆 침대에 누워 있던 문석호(89) 할아버지가 걱정을 이어갔다. “집에 아들하고 며느리가 있어도 먹고살기 바빠 내를 몬 봐주거든. 대학병원에 며칠 있었는데 하루 간병비만 10만원이 나오데. 도저히 당할 수가 없는 기라. 근데 여는 하루 간병비가 1만원인 기라. 아직도 석 달은 있어야 다 낫는다고 하는데 마음이 영 불안타. 딴 데는 몬 가고 여 있다 집에 가야제. 집에 가믄 누워서 기어 다녀 도 마음은 편할 끼다.”
5108호 병실엔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겠노라는 5명의 할아버지 환자가 있다. 각혈이 심해 지난 2월 입원한 강영진(89) 할아버지는 “죽어서야 나가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규정대로 라면 아내가 늘 곁을 지키는 김병철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4명은 지난 3월8일 진주의료원을 떠 났어야 하는 환자들이다. 65살 이상 고령인데도 밤낮으로 돌봐줄 보호자가 없는 이들이 지금껏 저렴한 비용으로 간병·간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줬던 진주의료원의 ‘보호자 없는 병실’ 사업이 갑자기 중단되 면서 간병인들이 떠나버린 탓이다. 보호자가 없는 할아버지 환자들에겐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민간병원으로 옮기는 대신 간병인이 아직 남아 있는 5108호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텅텅빈 병실들 사이에 5108호실만 정원이 꽉 차 있는 이유다.
진주의료원에 대한 폐업 절차는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기습적인 폐업 선언에 경남도의회와 진주의료원 직원 등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경남도는 움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난 3월7일 경남도의 지방의료원에서 진주의료원을 삭제하는 내용의 ‘지방의료원 설립 및 운영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법적인 마무리 절차에 들어갔다. 같은 날 진주의료원 폐업을 포함해 출연·출자 기관의 구조조정을 수행할 ‘산하기관 구조개혁 추진위원회’도 발족했다. 이와 함께 진주의료원의 진료 기능을 마비시키는 행정 절차도 병행했다. 경남도가 지원해오던 ‘보호자 없는 병실’ 같은 공공의료사업을 중단시켰고, 유일한 내과 전문의이던 내과과장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연장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입원 중인 환자는 내보내고 찾아오는 환자는 막기 위한 조처였다. 경남도의 압박은 효과가 있었다. 폐업 결정 직전 200여 명에 이르던 입원 환자 수는 3월12일 133명으로 줄었다.
토목사업 거가대교엔 연 242억원 지출
병원에서 갑작스럽게 쫓겨나듯 내몰린 환자와 보호자들의 원성은 크다. 진주의료원으로 가는 택시에서 만난 택시기사 송진갑(52)씨는 ‘진주의료원’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격하게 화를 냈다. 그의 사연은 이렇다. 그는 지난 2월19일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진주의료원의 ‘보호자 없는 병실’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보름 만인 3월6일 경남도에서 “환자를 도가 지정한 민간병원으로 옮기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과는커녕 자초지종에 관한 설명도 없었다. “진주의료원은 하루 입원비가 1만원인데 민간병원은 3만원이다. 한 달에 90만원을 간병비로 낼 형편이 안 된다. 일단은 진주의료원과 같은 비용에 어머니를 모셔주기로 했는데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다. 선거 치를 때 서민들 잘살게 해주겠다고 해서 홍준표(경남도지사)를 뽑았는데 이렇게 말을 바꿀 줄 몰랐다.”
일방적인 폐업 결정으로 직원들의 생활도 무너지고 있다. 진주의료원 소속 직원은 의사 17명(공중보건의 5명)을 포함해 236명에 이른다.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게 된 이들은 폐업 결정이 난 뒤부터 휴무일과 연차휴가 등을 활용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매일 창원시의 경남도청을 찾아가 항의농성을 벌이고, 경남도민들에게 폐업에 반대하는 서명도 받으면서 백방으로 뛰고 있다. 조미영(45) 간호사는 “지난 5년간 병원 경영 정상화를 위해 고통을 나눠온 세월이 서글프다”고 했다. 23년차 간호사인 그의 월급은 2008년 250만원에서 멈춰 있다. 그나마 지난해부터는 3~4개월씩 한 푼도 못 받을 때가 있었다. 지금도 7개월치가 밀려 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해도 생활은 늘 빠듯했고 마이너스통장의 대출은 늘기만 했다. 젊은 간호사들은 임금 체불을 견디지 못해 하나둘 떠났지만 그는 진주의료원에 악착같이 남았다. 그는 “첫 직장이라 애착이 컸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노인병동에는 갈 곳 없는 노인이 50명 넘게 있다. 이젠 그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고 말했다.
경남도는 환자와 직원들의 반발에도 폐업을 강행하는 이유로 심각한 경영 부실을 내세우고 있다. 윤한홍 행정부지사는 폐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진주의료원이 매년 40억∼60억원의 손실로 현재 300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어 폐업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3~5년 안에 자본금을 잠식한 뒤 파산할 수밖에 없는 진주의료원에 도민의 혈세를 계속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폐업할 정도로 경영 상태가 악화되지는 않았다”며 맞서고 있다. 실제 진주의료원의 재무제표를 보면 병원을 중안동에서 지금의 초안동으로 신축 이전한 2008년부터 5년 동안 연평균 56억원의 적자를 냈다. 그러나 그중 회계상 손실로 계산되더라도 현금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감가상각비를 제외하면 실제 적자는 연평균 25억원에 불과하다. 진주의료원이 331억원의 자본금(2012년 기준)을 3~5년 안에 까먹고 파산할 것이란 경남도의 추정은 과도한 셈이다. 게다가 경남도가 진주의료원에 공공의료사업 수행 등의 명목으로 지급하는 지원액은 지난 3년간 연평균 12억원으로, 경남도가 거가대교(연간 242억원)·마창대교(100억원) 같은 토건사업을 위해 매년 민간사업자에게 지출하는 혈세 규모와는 비교가 안 된다. 박석용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진주의료원지부 지부장은 “진주의료원에는 연 20만 명 정도의 도민이 찾는다. 공공의료기관으로 민간병원보다 저렴하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연간 30억원 정도 낮게 진료비를 책정하다보니 불가피하게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래도 조만간 인근에 혁신도시(1만3천 가구)가 들어서고 건설 중인 아파트 단지(4천 가구)가 완공되면 발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경남도가 무조건 진주의료원의 문을 닫게 하겠다는 건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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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례 생겼으니 다른 지자체 따라할 것”
진주의료원 사태에 다른 지방의료원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영 위기는 대부분의 지방의료원들이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지역거점공공병원 운영평가·진단 결과 발표’를 보면, 2011년 기준으로 34개 지방의료원 가운데 흑자를 낸 곳은 7곳에 불과했다. 그나마 흑자액도 대부분 1억~6억원에 머물렀다. 의료진료 부문에서 수익이 난 곳은 의료진이 토요일에도 무급으로 일한 김천의료원이 유일했다. 게다가 군산의료원(410억원)·부산의료원(368억원)·서울의료원(314억원) 등은 진주의료원보다(252억원)보다 부채가 많았다. 언제든 제2·제3의 진주의료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지금으로선 경남도의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높지 않다. 4월 중순 조례개정안을 최종 처리하게 될 경남도의회 구성이 경남도에 유리한 탓이다. 재적 의원 58명 가운데 40명이 새누리당 소속이다. 유지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공공병원을 수익성 논리로 폐업시키리라곤 우리도 상상을 못했다. 이제 선례가 생겼으니 다른 지자체도 얼마든지 공공병원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공공의료가 훼손되고 의료 민영화를 앞당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누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란 의미다.
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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