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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나병 환자가 된 느낌이었다”

신한은행이 고소한 혐의에 대해 모두 1심 무죄판결 받은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동료들 단독 인터뷰… “무슨 일로 고소 당하는지도 몰랐다”는 그들이 “마음의 빚을 덜게 되기”까지, 그리고 남은 과제
등록 2013-02-01 11:03 수정 2020-05-02 19:27

신상훈(65)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은 인터뷰를 거듭 거절했다. 2010년 9월 신한은행이 신 사장을 고소한 이른바 ‘신한 사태’가 지난 1월16일 1심 법원에서 모두 무죄로 판단됐지만 그는 “항소심이 곧 시작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검찰이 따로 수사해 기소한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등이 일부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마지막 카드를 제안했다. 신 전 사장과 함께 기소됐다가 무죄로 풀려난 이정원(57) 전 신한테이타시스템즈 사장과 한상국(54) 전 신한은행 기업고객부장과 ‘집단 인터뷰’를 하자고 말이다. 두 사람은 신 전 사장의 지시로 부실기업인 금강산랜드와 투모로에 부당 대출했다는 혐의로 지난 2년간 법정싸움을 벌였다. 고통받은 후배들이 명예를 회복할 기회라고 설득하자 신 전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1967년 산업은행에서 금융맨으로 첫발을 내디딘 신 전 사장은 1982년 신한은행 창립에 합류해 2003년 3월 신한은행장이 됐다. 6년간 행장으로 일하다가 2009년 3월 신한지주 대표이사 사장으로 옮겼다. 라응찬 당시 신한지주 회장에 이어 ‘넘버2’로 불렸다. 느닷없는 고소로 2010년 9월14일 이사회에서 직무집행정지를 당했고 3개월 뒤 사퇴했다.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은 2010년 9월 ‘신한 사태’ 이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신한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몇몇 사람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는 재판이 다 끝나면 가족과 함께 쉴 계획이라고 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은 2010년 9월 ‘신한 사태’ 이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신한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몇몇 사람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는 재판이 다 끝나면 가족과 함께 쉴 계획이라고 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신한 사태가 벌어진 뒤 2년 만에 언론과 하는 첫 인터뷰다.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이하 신) 재판이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는 조용히 있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언론에서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에 대한)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신한은행 쪽에선) 내가 뒤에 있다고 오해한다. 공개재판 과정에서 대부분 나온 이야기일 뿐인데도 ‘신상훈이 흘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엉터리 고소 탓에 나는 2년간 죄인 취급을 받았는데 그들은 아직도 진실을 외면한다. 안타까운 심정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설범식)는 신한 사태로 기소된 신상훈 전 사장과 이백순(61) 전 신한은행장에게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등 혐의로 각각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정원 전 사장과 한상국 전 부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신한 사태란 신상훈 전 사장이 신한은행장으로 재직하던 2006∼2007년 부실기업인 금강산랜드와 투모로에 950억원을 부당 대출(배임)하고 창업주 이희건(2011년 사망) 명예회장의 경영자문료를 가장해 은행 돈 15억6천만원을 빼내 개인적으로 사용했다(횡령)는 혐의로 신한은행이 신 전 사장을 고소한 사건이다. 은행이 최고경영자를 고소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금융계는 “충격적인 일”이라고 당시 입을 모았다. 은행감사위원회 보고나 금융감독원에 대한 조사 의뢰 등 사전 절차도 밟지 않았다.

검찰은 4개월간 수사한 뒤 배임 438억원, 횡령 15억6600만원에 재일동포 주주에게 8억6천만원을 받았다(금융지주회사법 및 은행법 위반)며 신 전 사장을 기소했다. 고소를 지휘한 이백순 당시 행장도 함께 3억원을 횡령하고 재일동포 주주에게 5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가 신한은행이 고소한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로 판단하고 검찰이 별도로 수사한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등만 유 죄로 인정해 신한은행의 고소가 부당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신한은행이 고소한 혐의에 대해선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이번 판결이 나에게 아직 완전한 자유를 주지는 않았다. 판결을 존중하고 일부 부족한 부분은 항소심에서 다툴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나와 피고인석에 앉아 공포를 느꼈을 후배들에게 자유를 준 것에 감사하다.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됐다.

한상국 전 신한은행 기업고객부장 애초에 조작된 기획고소였다는 게 재판 과정과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직원 들이 대놓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도 했다. 그런데 법원이 공식적으 로 억울한 고소였다는 걸 밝혀준 거다.

이정원 전 신한데이타시스템즈 사장(이하 이) 신한은행에서 24년 동안 기업 여신 업무를 담당하며 자부심이 컸다. 그런데 업무와 관련한 배임 혐 의로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한 순간 ‘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판부가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인정하며 무죄판결을 내리자 희열과 눈물이 함께 차올랐다.

판결문 내용은 이렇다. “이 사건 변론 과정에서 나타난 제1금융권 신한은행 여신 결정 시스템의 투명성, 여신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 한 각종 제도적 장치, 신한은행 여신 담당자들의 책임감과 사명감, 오랫동안 이를 토대로 이루어진 여신 심사를 통해 형성된 신한은행 내부의 여신 심사에 대한 높은 기대 및 신뢰를 고려하면, 신한은행 여신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당시 은행장이던 피고인 신상훈의 친분관계에 따라 여신 가부가 왜곡될 개연성이 큰 분위기였다고 보 이지 않는다.”

2010년 9월2일 당시 고소당할 것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나.

고소 당일 아침에야 이백순 당시 행장이 찾아와 ‘사퇴하지 않으 면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그 전까지는 까맣게 몰랐다. 하도 기가 막 혀 내가 ‘그래, 해라’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그러면 우리 조직이 공멸 이지요’라고 받아치더라.

무슨 일로 고소당하는지도 몰랐다. (배임 혐의로 기소된) 투모 로 여신을 승인한 과정을 소명할 기회조차 전혀 없었다. 묻지도 않았 다. 설사 의심되는 게 있더라도 은행은 금융감독원에 검사를 의뢰하 고, 거기서 문제가 밝혀지면 검찰에 고발하는 게 순서인데 말이다. 다 생략됐다.

“언론이 내분, 권력투쟁이라고 표현하는데 명백히 잘못된 보도다.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났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라 회장이) 4연임에 성공하기 전에도 ‘더 (회장직을) 하시라’고 말해왔다. 내가 (회장 자리에 오르려고) 급히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거의 30년간 모셔온 라 회장을 밀어내려 했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

신한은행이 느닷없이 왜 고소를 한 것인가.

언론이 내분, 권력투쟁이라고 표현하는데 명백히 잘못된 보도 다.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났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라 회장 이) 4연임에 성공하기 전에도 ‘더 (회장직을) 하시라’고 말해왔다. 내 가 (회장 자리에 오르려고) 급히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거의 30년간 모셔온 라 회장을 밀어내려 했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도화선은 ‘박연차 50억원’이었다. 라응찬 회장이 골프장에 투자하 라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건넨 50억원이 2008년 검찰 수 사로 드러났다. 라 회장이 차명계좌로 관리하던 자금의 일부였다. 검 찰은 단순한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라며 2009년 5월 무혐의 처분했 다. 하지만 2010년 4월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은 비자금이라며 재조 사를 주장했다. 2010년 8월 금감원이 차명계좌를 밝혀냈고 라 회장 의 중징계가 기정사실화됐다. 당시 신한지주는 라 회장과 신 사장이 각자 대표이사를 맡은 2인 체제였다. 라 회장이 중징계를 받아 대표 이사에서 물러나면 신 사장이 홀로 대표이사로 남을 상황이었다.

고소 당일 이백순 행장이 나를 불러 “라 회장 목까지 칼이 왔다” 며 신 사장을 사퇴시켜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또 라 회장의 뜻이 라며 “스탠스를 잘 취하라”고 했다. 고소한 뒤에도 신 사장만 사퇴하 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여러 차례 메시지가 왔다.

한상국 전 신한은행 기업고객부장(왼쪽)과 이정원 전 신한테이타시스템즈 사장(가운데)은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함께 배임 혐의로 기소돼 2년간 재판을 받고 지난 1월16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신한 사태’로 이 전 사장과 신 전 사장은 이미 회사를 떠났고 한 전 부장은 조사역으로 대기발령 상태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한상국 전 신한은행 기업고객부장(왼쪽)과 이정원 전 신한테이타시스템즈 사장(가운데)은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함께 배임 혐의로 기소돼 2년간 재판을 받고 지난 1월16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신한 사태’로 이 전 사장과 신 전 사장은 이미 회사를 떠났고 한 전 부장은 조사역으로 대기발령 상태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결국 2010년 12월7일 신 사장은 사퇴했다.

이듬해 3월이면 임기가 끝날 거였다. 어차피 (연임은) 안 될 것이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함께 배임 혐의로 고소당한 이 정원 사장과 한상국 부장 외에도 전직 비서실장 2명이 피의자 신분 으로 바뀌어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15~16차례 검찰에 불 려다녔다. 부하 직원들이 나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건 못 보겠더라. 결국 내 사표가 목적이 아니었나. 내가 사퇴하면 다른 직원들은 괜찮을 줄 알았다.

신 사장이 사퇴하자 실제로 신한은행은 고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이백순 행장이 2010년 12월8일 검찰에 이렇게 진술한다. “고소 사실이 횡령과 배임으로서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고소를 취소하더라도 검찰에서 계속 수사할 수 있다고 들었다.”

“내가 꼭 나병 환자가 된 느낌이었다. 어떤 직원들은 경영감사부의 회유와 압박도 있었지만 스스로도 ‘잘못하면 내 신분도 (피의자로) 바뀔 수 있겠다’고 판단해 일부러 나를 피했던 것 같다. 또 내가 아꼈던 후배들은 나 스스로 일부러 거리를 두기도 했다. 내가 청춘을 몸 바친 조직으로부터 이렇게 버림당하고, 내가 살기 위해 그 조직과 맞서야 한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이정원 전 신한테이타시스템즈 사장
지난 2년간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내가 꼭 나병 환자가 된 느낌이었다. 어떤 직원들은 경영감사부의 회유와 압박도 있었지만 스스로도 ‘잘못하면 내 신분도 (피의자로) 바뀔 수 있겠다’고 판단해 일부러 나를 피했던 것 같다. 또 내가 아꼈던 후배들은 내 스스로 일부러 거리를 두기도 했다. 내가 청춘을 몸 바친 조직으로부터 이렇게 버림당하고, 내가 살기 위해 그 조직과 맞서야 한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검찰이 배임 혐의로 이정원 사장을 기소하자 회사는 그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이 사장이 거절하자 그를 해임했다. 한상국 전 부장은 신한은행 직원만족센터 조사역으로 발령받았다. 지난 1월16일 무죄판결이 났지만 한 전 부장은 아직도 조사역으로 대기 발령 상태다.

신한은행 조직에도 상처가 컸다.

신한은 사람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었다. 출신도 안 따지고 능력만 있으면 회사가 키워주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직원들도 고객을 위해 거침없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그런데 요즘은 협력해서 시너지를 내기보다는 책임 소재를 미루고 서로 눈치 보는 일이 많아졌다고 들었다. 참으로 가슴 아프다.

신한은행을 창업한 재일동포 주주들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고객이나 주주들에게는 죄송하다. 잘잘못을 떠나 신한이 신뢰를 잃고 추락한 것에 대해 참담하게 생각한다. 내 부덕의 소치다. 특히 일본 창업 주주들에게는 더 그렇다. 고 이희건 전 명예회장의 묘소에 찾아가려고 한다.

신 사장은 이희건 전 명예회장의 경영자문료를 둘러싼 법정 다툼이 혹시 명예회장의 족적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지 않았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은 18년간 신한은행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일체의 급여를 받지 않았고, 2008년에는 신한지주 주식 80만 주(약 400억원)를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한일교류재단에 넘겼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나는 이미 떠난 사람이다. 그러나 남아 있는 이들 중에 (라 전 회장과 이 전 행장을 제외하고) 이번 고소를 적극적으로 기획한 이가 상당수 된다. 정리돼야 한다. 대충 끝내고 넘어가면 제2, 제3의 신한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퇴임식도 못하고 떠났지만 신한이 나를 저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몇몇 사람이 문제였을 뿐이다. 지난 30년간 빠르게 성장해온 신한이 다시 선두를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재판이 끝나면 가족과 함께 쉬고 싶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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