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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얘기다. 소아시아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가 자기 수레를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놓고 “장차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여러 사람이 이 매듭을 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도 풀지 못했다. 훗날 페르시아 원정에 오른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지나다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렸다.
사람들은 알렉산더의 과감성에 환호한다. 그리고 복잡한 세상일도 한 방에 해결하는 비법을 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일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아니다. 사회문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보다 몇천∼몇만 배 더 복잡하다. 단칼에 두 동강 낼 수도 없다. 그렇게 단순하다면 남북 분단도, 독도 문제도, 기아 문제도 있을 리 없다.
빈곤, 남북문제보다 오래갈 범죄문제
최근 초등학생 성폭행, 직장 동료 테러, 지하철 칼부림 등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 이 때문에 불심검문 부활, 아동성폭력 전담반 구성, 화학적 거세 확대, 전자발찌 제도 강화 등 다양한 대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나오고 있다.
범죄는 수많은 요인이 결합해서 발생한다. 그래서 비슷한 조건을 갖고 있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적 형질도, 성장 환경도 거의 비슷하다. 그럼에도 형은 혹은 동생은 범죄자가 되고, 다른 형제는 사회적으로 신망을 받는 사람이 된다. 사회를 뒤흔드는 강력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일단 범죄자의 성장 환경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번 전남 나주 초등학교생 성폭행범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결손가정에다 중학교 중퇴 학력이다. 집에서 밥도 못 먹고 용돈도 못 받자 어려서부터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급식비를 안 낸다고 방송해 창피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20명 이상을 연쇄 살인한 유영철도 그렇고, 서울 서남부 일대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은 연쇄살인범 정남규도 그렇다.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모두 범죄자가 돼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가. 아니다. 범죄심리학자 에이드리언 레인이 즐겨 하는 얘기가 있다. 자기는 영국의 대표적인 슬럼 지역에서 자랐는데 결국 범죄를 전공하는 학자가 됐다고.
그렇다고 성장환경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범죄를 설명하는 데 사실 성장환경만큼 중요한 변수는 없다. 다만 이 변수 하나로는 범죄에 대해 설명하기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범죄문제 해결이 어렵다. 마음 같아서는 매듭을 단칼에 자르듯이 일거에 해결하는 방안이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이런 대책은 없다.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탁월한 경제학자 수십 명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해도 바로 몇 달 뒤 경제상황을 예측하지 못하는 법이다.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범죄문제 해결은 빈곤문제나 남북문제 해결만큼, 어쩌면 훨씬 더 어렵다. 남북은 언젠가 통일되겠지만, 확신하건대 인류가 남아 있는 한 범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언론의 선정주의가 범인이다?
새로운 대책을 만들어내는 경찰 등 법집행기관의 처지도 안쓰럽다. 여론이 들끓고 정치권과 청와대에서는 대책 마련을 요구하니 뭔가 내놓기는 해야 하니까 말이다. 언론 탓도 크다. 큰 사건이 하나 터지면 물 만난 고기처럼 대서특필해댄다. 언론의 속성상 어느 한 곳에서 나름대로 특종이라도 터뜨리면 다른 곳에서는 만회하려고 뭔가 더 큰 게 없나 이 잡듯이 뒤진다. 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밝혀지지 않았을 사건들이 ‘비슷한 사례’라는 이름으로 묶여 갑자기 ‘신드롬’으로 떠오른다. 언론 특유의 취재 경쟁과 과장·선정주의 등이 결합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풀려지고 세상이 곧 어떻게 될 것 같은 분위기로 몰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세상을 곧 물에 잠기게 할 듯한 폭우도 몇 달간 계속 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름 역시 그럴듯하게 만들어진다. ‘묻지마 범죄’ ‘무동기 살인’ 등. 그러나 세상에 이유 없는 범죄가 어디 있는가. 만약 동기가 없고 이유가 없다면 범죄 자체가 성립하지도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교도소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 법이다.
범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는 항상 끔찍한 범죄의 연속선상에서 살아왔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범죄가 수백 년 전에도, 수천 년 전에도 있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은 범죄에 정확하게 적용되는 말이다. 옛날에 없던 해킹이나 보이스피싱 같은 신종 범죄 역시 기술과 수법의 차이일 뿐이다. 분노·보복·치정·이욕(利慾) 등의 범행 동기는 바뀌지 않는다. 100년도 더 전에 에밀 뒤르켐이 만들어낸 ‘아노미’(Anomie)란 말도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분노의 한 표현일 뿐이다.
문제는 ‘물타기’다. 강력범죄가 증가한다고 불심검문, 화학적 거세, 심지어 고환을 제거하는 물리적 거세 얘기까지 나온다. 수천 년 동안 환관들에 의해 일어난 잔혹한 성범죄를 알고 하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시간의 가치가 다른 범죄자
처벌 강화로 범죄가 줄어드는가. 일시적으로 범죄 감소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오래 못 간다. 미국에서 1975∼89년 강력한 범죄 억제 대책의 일환으로 평균 선고 형량을 3배 늘렸지만, 범죄율은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시간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에게 미래의 가치는 높지 않다. 범죄를 저질러 생기는 가치는 당장 지금이고 처벌은 훗날의 얘기다. 잡힌다는 가정에서 말이다. 범죄란 게 원래 그렇다. 사람을 죽이면 극형을 받는다는 걸 모르고 살인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살인이나 성폭행도, 높은 형을 받는 것을 알고도 저지른다. 형량이 높은 미국에서 범죄율이 높은 이유다.
그렇다고 처벌을 느슨하게 한다?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다. 단기적 처방과 장기적 대책을 동시에 마련해야 할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래서 범죄 대책이란 게 ‘밥 많이 먹으면 배부른’ 누구나 아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다른 문제도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문제는 누구나 아는 정답을 그대로 실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창무 한남대 교수·형사사법학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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