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는 ‘정치와 공직의 경험이 없고, 조직과 세력도 전무하다’는 딱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의구심이 시작되는 지점은 대체로 비슷하다. 안 원장 본인도 ‘경험의 부재’는 인정한다. 그는 최근 발간한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정치 경험의 부족은 분명 저의 약점”이라고 썼다. “시장이나 국회의원 한 번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다면 어려움이 많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연 내가 자격이 있나’ 하는 고민이 깊은 것이기도 하고요.”
‘제3후보’ 대세론, 야당 존립 근거 흔들어
동시에 안 원장은 “한편으로는 ‘낡은 체제’와 결별해야 하는 시대에 ‘나쁜 경험’이 적다는 건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고도 했다. 자신의 약점을 담백하게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갖는 ‘역설적 강점’을 내세우는 화법이다. 무엇보다 경험의 많고 적음이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의 ‘모든 것’이 될 수 없다는 건 이명박 정부의 사례가 웅변한다. 안 원장 쪽 인사는 “정치와 공직의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누군가는 이명박이 되고 누군가는 박근혜가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조직과 세력의 부재’라는 측면은 어떨까. 사정이 조금 복잡해 보인다. 안 원장은 저서 발간과 한 차례의 방송 출연으로 4·11 총선 이후 독주를 계속해온 ‘박근혜 대세론’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그러나 안 원장은 여전히 한 명의 개인일 뿐이다. 유민영 대변인을 영입해 공보 라인을 단일화했고, 주변 인사들의 조언을 광범위하게 경청하고 있다지만 조직다운 조직은 갖추지 않았다. 새누리당뿐 아니라 민주통합당 내부에서도 ‘안철수 현상’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제3후보’ 대세론이 야당의 존립 근거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대선주자에게는 전위부대라고 할 수 있는 의회 내의 지원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역대 제3후보들이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유권자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정치세력과 손잡을 것이기 때문에 세력의 부재는 우려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여기엔 딜레마가 있다. 물론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어떤 형식으로든 야권과 단일화 혹은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안 원장이 촉구해온 ‘정치 변화’라는 과제에선 민주당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안철수 현상’이 함의하는 변화의 기획은 ‘낡은 체제’의 한 축인 야당을 가까운 미래의 파트너로 상정해야 하는 모순 속에서만 의미 있다는 이야기다. 안 원장을 돕고 있는 금태섭 변호사는 “이 변화는 안철수 원장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누군가의 기획에 의해 인위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라며 “모두의 승리를 위해 민주당이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안 원장에게 시간이 충분하진 않아
전문가들도 이 딜레마가 안 원장의 근본적인 고민거리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희웅 실장은 “안철수 원장이 안정적인 지원 세력을 민주당 내부에서 일정하게 흡수하는 작업은 물론 필요하다”면서도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안철수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안 원장이 갑자기 민주당을 대변하는 인물로 비쳐지거나 부정적 효과가 불거지는 방식으로 연대할 경우에는 무당파 성향의 지지층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연대를 하더라도 안 원장이 민주당에 직접 입당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공동 선대위나 공동 그림자 내각 등을 구성하면서 민주당과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민영 대변인은 “조직과 세력의 부재가 약점인지 강점인지 판단하려면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 맥락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패러다임 간의 근본적인 싸움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무 기반도 없는 사람이 국민과 공감해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의 문제니까요. 이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봐요. 기존의 공학과 문법이 아니라 안철수식 삶의 방식으로 정치가 가능할 수 있는지 보자는 겁니다. 대선까지 안 원장이 추구하고 있는 변화의 힘이 커진다면 조직과 세력이 없다는 측면은 오히려 강점이 될 거예요. 반대의 경우라면 안철수의 힘이 약화될 것이고 결국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정치 참여 문제에 대한 안 원장의 ‘가정법’을 단순한 여론 떠보기나 우유부단함의 발로로 읽어선 안 된다는 게 안 원장 쪽 인사들의 주장이다. 대선까지는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근본적인 의미에서 정치의 변화가 ‘외부 충격’만으로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안 원장은 <안철수의 생각>에서 정치·경제·외교·사회 등 각 영역에서 흡사 ‘집권 플랜’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수준의 구체화된 의견을 내놨다. 대선 출마 여부와 관련한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제 생각을 밝혔는데 기대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저는 자격이 없는 것이고, 제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겠지요.” 접근 방식의 ‘진정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를 지켜보는 유권자의 ‘피로감’은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안 원장에게 시간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가 정치 무대에 오른다면 감내해야 할 ‘검증 국면’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을 하다 보면 그릇을 깨거나 손을 베일 때도 있다”는 이른바 ‘그릇론’과 함께 승리했다. 지도자의 품격과 도덕성은 당시 대선의 시대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안 원장은 어떨까. 그는 무심코 한 무단횡단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반면 대선은 후보자의 ‘모든 것’을 검증의 도마에 올리는 무자비한 공세의 장이다.
안철수 “총알 맞아도 가야 할 길이라면”
이를테면 내구성의 문제다. 작은 흠결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안 원장의 저서에 대담자로 참여했던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안 원장은 “내 명예가 훼손되고 상처를 입고 혹은 총알 몇 방을 맞는다고 해도 이 길(대선 출마)이 가야 할 길이라면 그런 건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안 원장을 돕고 있는 한 인사는 “투명한 유리 같은 점이 있기는 하다”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이는 쪽이 오히려 자신의 협량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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