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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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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빠’의 건투를 빈다

등록 2012-07-11 17:53 수정 2020-05-03 04:26
박래군은 최근 신상에 관한 질문을 받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민주당의 한 대선후보 캠프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라있어서다. 하지만 그 박래군은 이 박래군이 아니다. “1994년 구국전위 사건에 연루된 것도, 2003년 장관 보좌관을 한 것도 내가 아닌 다른 박래군이라니까.” 두 박래군은 흔치 않은 이름뿐 아니라 출생연도까지 같지만, 이름의 한자가 다르다. 그가 올래(來)에 임금군(君)자를 쓰는데, 이 박래군은 올래에 무리군(群)을 쓴다. 자신의 이름을 두고 ‘아버지가 데모꾼 되라며 지어준 이름’이라며 박래군은 웃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래군은 최근 신상에 관한 질문을 받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민주당의 한 대선후보 캠프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라있어서다. 하지만 그 박래군은 이 박래군이 아니다. “1994년 구국전위 사건에 연루된 것도, 2003년 장관 보좌관을 한 것도 내가 아닌 다른 박래군이라니까.” 두 박래군은 흔치 않은 이름뿐 아니라 출생연도까지 같지만, 이름의 한자가 다르다. 그가 올래(來)에 임금군(君)자를 쓰는데, 이 박래군은 올래에 무리군(群)을 쓴다. 자신의 이름을 두고 ‘아버지가 데모꾼 되라며 지어준 이름’이라며 박래군은 웃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나는 30년 된 야구팬이다. 아버지의 목마를 타고 처음 간 야구장에 압도된 꼬마는 혼자 더블헤더를 보러 가는 국민학생으로, 주간 야구잡지를 정기 구독하는 중학생으로,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라디오로 야구 중계를 듣는 고등학생으로 성장했다. 트위터도 없고, 케이블 방송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10분 단위로 경기 상황을 알려주는 전화 서비스로 지금 이 나라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시합의 실시간 결과를 확인하다 한 달 전화요금 20만원을 찍어버리는 바람에 방과 후 신문을 돌려야 했던 지독한 ‘야빠’였다. 그때의 유일한 꿈은 전 경기를 정규방송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보는 것이었다. 모든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정말 올까? 중학교 때 일기에 썼던 말이다.

중계되지 않으니 기록되지 않는다

그런 세상이 정말로 왔다. 1년 한 팀당 133게임, 총 532경기가 하루 4시간씩 생중계된다. 그것도 아쉬웠는지 경기가 끝나자마자 4개의 하이라이트 방송이 쏟아진다. 야구장에 동원된 10여 대의 카메라는 더그아웃 구석구석까지 선수들을 관찰해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카메라 워킹은 야구장에서 만들어지는 추억을 360도로 기록해둔다. 야구팬에겐 축복 같은 세상이다.

한국 야구를 세계 최고라 부르기엔 이견이 있겠지만, 한국 야구가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리그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야구팬들은 해외 야구에 눈을 돌릴 이유가 없었고, 일일 연속극처럼 매일 중계되는 시합에, 팀과 선수와 팬들 사이에는 날마다 하루치의 추억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매일 밤 만나는 9명의 남자. 그들의 인생이 매일 생중계되는 것, 한국에서는 야구팬이 되기로 마음먹는 순간, 수많은 콘텐츠가 그의 팬심을 지원해준다. 스포츠 경기 중 가장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가장 긴 러닝타임을 가진 이 야구라는 놈은, 일단 팬으로 입문하는 순간 ‘지구는 다이아몬드형이다’라고 믿게 만든다. 야구는 타임아웃이 없다. 9회말 스리아웃이 되기 전까지 당신은 영원한 젊은이다.

‘축빠’ 처지에서는 부러울 수도 있겠다. 축구팬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을 능가하는 월드컵 4강의 추억을 가졌다. 2002년의 월드컵 이후 K리그엔 경기당 2만 명의 관중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4강 신화의 주인공들이 성장했던 현장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축구팬 외에 한국 프로축구 16개 팀의 이름을 외우는 사람은 드물다. 팀별 주력 선수의 이름도 잘 매칭되지 않는다. 어떤 팀이 가진 한을 이해하지 못한다. 선수 개개인이 운동장에서 만들어온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 중계가 되지 않으니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에 비해 축구라는 스포츠의 상대적인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야구는 오늘 지면 내일 그 팀에 그대로 복수할 수 있다. 지난 경기의 여운이 있는 상태에서 다음날 바로 새로운 경기가 시작된다. 팬들은 감정적으로 쉴 틈이 없다. 그리고 스포츠 채널은 이 각본이 필요 없는 일일 연속극과, 야구가 끝난 뒤 시작하는 해외 축구를 선택했다. 한국 야구에 끊임없이 새로운 팬층이 유입되고 있을 때, 축구팬들은 영국과 스페인리그에도 팬을 뺏기고 있었다. 를 혐오하는 축구팬 함문형(27)씨는 프로축구 중계를 해주는 TV조선에 감사한다. TV조선은 한국의 수백 개 케이블 방송에서 그를 위로하는 유일한 채널이다.

‘아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나는 안다. 프로야구 전 경기가 중계되는 세상을 꿈꾸던 중학생의 꿈은 서른이 넘어서야 현실이 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라디오로 중계를 듣고 전화 서비스로 스코어를 확인하던 ‘아재’들이 오랜 시간 프로야구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 최고의 인프라는 바로 이 아재들이었다. 지금, 온 세상이 외면해도 여전히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고 점프를 하며 응원가를 부르는 축빠 그대들. 온 진심으로 K리그를 지켜달라. 원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K리그 최고의 인프라는 그대들이다. 건투를 빈다.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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