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시가 한강공원 이촌지구에 조성하는 8천㎡ 규모의 시민텃밭 사업에 대해 국토해양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는 소식이 뉴스에 등장했다. 서울시의 계획은 이촌지구 둔치를 시민 1천 명에게 8㎡씩 2만원에 분양해, 4월14일부터 시민들이 직접 채소류를 가꾸고 수확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는데, 국토부는 하천법상 수질오염이 우려되는 하천구역인 만큼 농작물 경작이 금지돼 있다는 이유로 불가 방침을 밝혔다는 것이다. 4대강 주변의 경작지도 그런 이유로 철거했는데 한강변도 마찬가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게 권도엽 국토부 장관의 태도다.
쿠바 아바나 도시농업의 성공
지자체와 중앙부처 간 분쟁의 승패와 별도로, 이 사례는 도시농업이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촌지구 텃밭 신청에는 6천 명 이상의 시민들이 몰렸다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시민들이 삭막한 도시 속에서 만질 수 있는 흙과 직접 수확하는 푸성귀에 목말라 있었다는 얘기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위를 둘러보면 대도시의 후미진 골목과 옥상마다 스티로폼 화분과 고추 모종들을 발견할 수 있다. 베란다용 화분이나 작은 물접시를 활용하는 수경재배 키트도 속속 보급되고 있다.
도시농업의 사전적 의미는 ‘도시 지역 안에서 이뤄지는 농업’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최근엔 ‘도시 행정구역 안에서 이뤄지는 농업으로서 공공적·생태지향적 성격을 갖는 농업’이나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의 대안으로 등장한 농업’에 국한해 이르기도 한다. 도시농업에는 전형이나 원칙이라는 것이 없다. 혹자에게는 심심풀이 취미활동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씨앗에서 싹이 움터서 가지를 뻗고 열매 맺는 과정을 옆에서 응원하며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머리와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일단 발동이 걸리면, 덩굴작물은 무엇이 있을까, 유기농으로 해보면 어떨까, 내 식탁 중 몇%까지 로컬푸드로 충당할 수 있을까, 우리 동네의 자투리땅은 어디 없을까까지 진도가 나가기 일쑤다.
하지만 도시농업에 대해 그 이상의 가능성, 즉 도시민을 충분히 먹여살릴 가능성이 낮게 평가돼선 안 된다. 많은 인구가 좁은 면적에 모여 사는 도시는 환경과 에너지 위기에 그만큼 취약하다. 이런 약점과 위기가 도시농업 활성화의 계기가 된 사례가 많다. 많은 이들이 소개하는 쿠바 아바나의 도시농업도 예외가 아니다.
1989년 옛 소련이 붕괴해 소련으로부터의 식량과 원유, 비료 공급이 어려워지자 쿠바는 극한의 식량 위기에 내몰렸다. 주요 곡물 재고가 바닥났음은 물론이고, 그나마의 식량을 수송할 교통수단도 연료가 부족해 움직일 수 없었다. 인구의 80%가 모여 있는 도시에서는 급한 대로 자력갱생·자급자족하는 수밖에 없었고, 쿠바 인민의 지난한 투쟁이 있었겠지만 그 결과는 뜻밖에 세계적인 도시 유기농 단지였다. 이제 인구 220만 명의 아바나는 시 면적의 40%가 농지로 바뀌어 8천 곳이 넘는 지역에서 크고 작은 도시농장이 운영되고 있다.
근교 농지의 생산량 제법 많아일본 역시 대지진으로 도시가 한두 주일이나 고립된 경험을 겪은 뒤 유사시 살아갈 방도는 근처에서 직접 농산물을 키워먹는 것뿐이라는 인식이 생겨 도시농업의 활성화를 촉진했다. 이후 일본은 ‘시민농원’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농업을 활성화했고, 도쿄시 등에서 조례 제정을 통해 다양한 도시농업 육성 및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도시농업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은 독일이다. 소정원쯤으로 번역되는 ‘클라인가르텐’은 19세기 중반 도시로 몰려든 가난한 노동자에게 도시 유휴지에서 채소를 길러 먹을 수 있게 한 아르멘가르텐에서 시작됐다. 전쟁 중에는 도시인들의 식량 공급원으로 활용됐고, 대공황기엔 생계를 위한 소규모 생산기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근엔 여가·휴식 공간의 기능이 더해져 독일의 도시 생활에서 없어선 안 될 공간이 되고 있다.
도시농업의 가장 긍정적인 기여 가운데 하나는 ‘푸드 마일리지’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식품이 생산된 곳에서 일반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를 가리키는 푸드 마일리지는 농산물 공급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가능하면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이 안전하고 수송에 따른 환경오염을 줄인다는 문제의식을 포함한다. 도시농업을 통해 생산된 농산물은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에 대비할 방도가 될 뿐 아니라, 평소에도 화석연료 이용을 저감함으로써 기후변화 완화에 도움을 주고, 안전하고 영양 있는 제철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편익까지 있으니 1석3조다. 대도시의 쾌적성을 더하고 시민들의 정서를 함양한다는 기능까지 더하면 1석5조다.
실제 4대강 사업으로 위기에 처한 팔당 유기농 단지에서 수도권 유기농산물의 70%를 공급해왔고, 이명박 정부가 경작을 중단시킨 낙동강 삼락둔치에서 생산되는 배추와 상추는 부산 지역 공급량의 30%를 차지했다. 근교의 농지만 해도 규모와 생산량이 제법 된다는 얘기다. 서울과 부산의 자투리땅을 잘 활용할 경우 도시농업이 도시민을 먹여살리는 일은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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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제는 제도적 지원
문제는 제도적 지원이다. 지역마다 도시농업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일정 규모의 공공 토지를 시민농원으로 지정하면 경작지와 함께 일자리도 창출된다. 각 광역시·도에 있는 농업지원센터에서 도시농부학교를 열고 농민 직거래 장터를 활성화하면 한국 도시들에서도 유럽과 일본 도시의 텃밭과 주말장터 광경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규모 있는 텃밭이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다. 뚝섬 시민의 숲과 한강 여의도 둔치의 절반을 시민텃밭으로 조성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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