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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은 염치도 없니?

김석기·이동관·박영준·정운천·정동기·허준영 등 MB측근들 무더기 공천 신청… 새누리당 안에도 낙천 여론 만만찮아
등록 2012-02-24 11:57 수정 2020-05-03 04:26
2009년 1월20일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세입자 등 6명이 숨진 ‘용산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석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김 전 청장은 새누리당에 경북 경주 국회의원 공천 신청을 했다. <한겨레> 이정아

2009년 1월20일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세입자 등 6명이 숨진 ‘용산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석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김 전 청장은 새누리당에 경북 경주 국회의원 공천 신청을 했다. <한겨레> 이정아

2월15일 지역구의원 공천 신청을 마감한 새누리당엔 모두 972명이 몰려들었다. 평균 경쟁률은 3.97 대 1이었다. 예상과 달리 공천 신청자가 민주당(2.91 대 1)보다 높은 경쟁률을 보이자 새누리당은 고무된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강이 크다고 무조건 1급수는 아니듯, 지원자가 많다고 해서 ‘좋은 국회의원감’이 더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아무리 직업 선택의 자유라 해도, 유권자로선 ‘뻔뻔한 선택’을 했다고 여길 이들이 수두룩한 탓이다.

김석기, “용산 참사로 총선 못 나가면 억울“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에서 경찰특공대가 ‘진압 작전’을 개시했다.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무조건 삶의 터전을 비우라는 ‘재개발’에 맞서 세입자들이 옥상에 망루를 짓고 하루 전부터 농성을 벌이던 곳이었다. 뼛속까지 얼어붙는 한겨울의 새벽, 경찰은 세입자들에게 사정없이 물대포를 쐈다. 경찰특공대는 컨테이너에 올라탄 채 옥상으로 진입했다. 건물에서 불이 났다. 시뻘건 화염은 망루까지 집어삼켰다. 경찰은 작전을 멈추지 않았다. 망루가 무너졌다. 농성을 벌이던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도 함께 무너졌다. 이 작전의 책임자가 바로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다.

김 전 청장은 새누리당에 경북 경주 공천을 신청했다. 용산 참사 당시 경찰청장에 내정돼 있던 김 전 청장은 스스로 옷을 벗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덮으려 했다. 검찰은 두 차례의 서면조사로 그에게 ‘면죄부’를 발급했다. 2년 뒤인 지난해 2월 이명박 대통령은 그를 주오사카 총영사로 임명했다.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10개월 만에 김 전 청장은 총영사직을 관뒀다. 비판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총선 출마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사이 용산 세입자 등 8명은 4년~5년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여전히 쇠창살 안에 갇혀 있다.

그는 2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용산 참사와 관련해 “당시 무고한 시민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상황에서 시행된 조처는 적법했다. 그것(용산 참사) 때문에 총선에 못 나간다면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 전 청장의 총선 출마는 국민을 조롱하고 모독하는 행동”이라며 새누리당에 그의 낙천을 요구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아성인 서울 강남을 공천 신청자 가운데는 이명박 정권의 ‘떡고물’을 받아먹은 사람이 둘이나 있다.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허준영 전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이 그들이다. 여기에 전략공천설이 나도는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까지 포함하면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만 셋이다.

정동기 전 민정수석은 대검찰청 차장 때인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을 덮어준 바 있다. 당시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을 코앞에 두고 불거진 도곡동 땅 의혹은 이 대통령을 몹시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때 정 전 수석은 자신을 찾아온 이재오 의원에게 “그 땅은 이명박 후보와 관계없다”고 말했다. 대선 직전 차장직을 사퇴한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에 몸담았고,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야당은 중립성과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감사원장에 대통령의 측근인 민정수석을 앉히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의 이런 ‘승승장구’가 도곡동 땅 의혹을 덮어준 대가가 아니냐고 의심했다. 정 전 수석을 둘러싼 의혹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정 전 수석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민정수석 시절에 보고받았고, 남경필 당시 한나라당 의원 등의 사찰에도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전관예우 논란도 불거졌다. 대검을 그만둔 뒤 직행한 법무법인 바른에서 7개월 동안 7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정두언, “대통령 실정 주범이 출마하다니”

새누리당에 서울 강남을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한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 <한겨레> 이종근

새누리당에 서울 강남을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한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 <한겨레> 이종근

결국 정 전 수석은 ‘후보자’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이명박계 돌격대장’인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까지 나서서 정 전 수석의 사퇴를 압박했고, 청와대에 ‘부적격’ 의견을 통보한 것이다. 결국 감사원장 후보자직을 사퇴했지만, 그는 “나의 경력과 재산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모든 사생활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철저하게 유린돼왔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런 내용이 담긴 기자회견문은 A4용지 5장 분량에 이르렀다.

그는 지난 2월10일 강남을 예비후보에 등록했다는 보도자료에도 이 기자회견문을 첨부했다. “땀으로 이룬 것들이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겠다. 편 가르는 정치, 증오의 정치와 싸우겠다”는 것이 출마의 변이었다.

참여정부 때 경찰청장을 지낸 허준영 전 사장이 정치적 구설에 오르기 시작한 건, 2006년 서울 성북을 보궐선거 때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하면서부터다. 당시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2008년 총선에선 서울 중구 공천을 신청했지만 전략공천된 나경원 전 의원에게 밀렸다. 그 대신 그는 코레일 사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장 자리에 앉았다. ‘낙하산’으로 입성한 코레일에서 그가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인 일은 ‘공기업 선진화’였다. 2012년까지 철도 안전과 직결된 현장 유지·보수 인력 2958명(57.9%)을 포함해 모두 5115명을 ‘자르기로’ 한 것이다. 줄어든 인력은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으로 메웠다. 선로 안전 점검과 열차 정비 횟수도 줄었다. ‘고장철’이라는 KTX의 오명은 여기서 비롯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2009년 철도노조 파업 직후 코레일 쪽이 단체협약 해지를 사전에 계획했음을 보여주는 내부 문건이 발견돼 허 전 사장은 ‘파업 유도’ 논란을 빚기도 했다.

김종훈 전 본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도사’다. 공천을 신청하지 않은 그의 강남 출마설이 나도는 것은 새누리당 일부에서 그를 강남을에 전략공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부터다. 대표적인 한-미 FTA 반대파인 정동영 민주당 의원이 강남을 출마를 선언한 이상, 그를 꺾을 만한 상징적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김 전 본부장은 “선거가 다가오니 민주당이 한-미 FTA를 쟁점화하는데, 그런 주장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가 중요하다. 거기서 내가 역할을 할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디서 할 것인지는 당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도 “비례대표도 월급을 받는 건데, 당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몰라도 내가 ‘(월급을) 줄래요?’라고 묻고 싶지 않다”고 했다. 스스로 나서지는 않겠지만, 새누리당이 ‘레드카펫’을 깔아준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대통령 실정의 주범으로, 용퇴론까지 나오는 마당에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 사람이 출마를 한다니 기가 막힌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2월16일 문화방송 라디오 에서 한 말이다. 겨냥한 상대는 서울 종로 공천을 신청한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다. 이 전 수석은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을 지내며 ‘청와대 핵심 관계자’라는 익명으로 언론을 통해 온갖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냈다. ‘핵관’이라는 별명은 거기서 비롯됐다. 또 다른 별명인 ‘마사지의 달인’은 이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 핵심 내용을 자의적으로 고쳐 브리핑한 뒤 논란이 일자 “대통령의 발언이 오해를 살 수 있어 ‘마사지’를 하다가 오해가 생겼다”고 해명한 데 기인한다.

정병국·나경원·이재오·진수희 등도 신청

‘핵관’과 ‘마사지의 달인’이라는 별명은 이 전 수석의 비뚤어진 언론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사실을 왜곡·과장해 브리핑하면 언론은 그대로 ‘받아쓰기’를 하고, 그 결과 여론을 주무를 수 있다는 태도다. 정두언 의원을 비롯해 새누리당의 쇄신파가 이 전 수석과 갈등을 빚은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왕차관’으로 불리며 위세를 떨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은 대구 중·남구에 공천 신청장을 냈다. 그는 이 정부 초기부터 인사 전횡과 국정 농단의 주역으로 지목된 바 있다. 또한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CNK 다이아몬드 주가조작 의혹,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 로비 의혹, 이상득 의원의 포스코 회장 선임 개입 의혹 등 이 정부 들어 불거진 대형 의혹 사건마다 등장했다. 물론 그의 항변처럼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직 없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조차 그는 전폭적인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는 것이다.

이들 못지않은 정권 실세가 박형준 전 정무수석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이명박 캠프 대변인을 맡았고, 청와대 홍보기획관·정무수석과 대통령 사회특보를 지냈다. ‘쇠고기 촛불’로 몰락 위기에 빠진 이 정부를 구해낸 ‘친서민 중도실용’을 비롯해 ‘공생발전’ 등의 아이디어가 그의 머리에서 탄생했다. ‘수구꼴통’으로 치닫는 이명박 정부에서, 비교적 합리적인 쇄신파와 힘을 합쳐 ‘파국’을 막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위기만 모면했을 뿐 실은 이 정부의 ‘본질’을 가리는 포장에 급급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부산 수영구의 공천을 신청했다.

‘언론 악법 날치기’의 주역으로 종합편성채널을 탄생시키는 데 큰 힘을 쏟은 정병국 전 문화관광체육부 장관과 나경원 전 의원은 각각 자신의 원래 지역구인 경기 양평·가평과 서울 중구 공천을 신청했다. 이명박 정부 장관 출신 가운데선 정 전 장관 말고도 이재오(서울 은평을)·주호영(대구 수성을) 전 특임장관,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서울 성동갑),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전북 전주 완산을)이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다. 특임장관실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각각 차관을 지낸 김해진·박선규 전 차관은 서울 양천갑에 나란히 공천 신청서를 접수했다.

‘박영준 라인’ 중에선 선진국민연대를 박 전 차관과 함께 주도한 김대식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부산 사상에, 박 전 차관과 함께 인사에 비선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산 정인철 전 청와대 기획관리비선관이 경남 진주갑에, 인수위 시절부터 박 전 차관과 인선 작업을 함께한 이상휘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경북 포항북에 공천 신청을 했다. 그 밖에 김형준(부산 사하갑) 전 춘추관장, 김연광 전 정무1비서관(인천 부평을), 이태규 전 연설기록비서관(경기 고양일산서), 이성권(부산 부산진을) 전 시민사회비서관, 김희정(부산 연제) 전 대변인 등 청와대 참모 출신들도 공천을 신청했다.



이들의 출마에 관해선 ‘실세용퇴론’이 제기되는 등 새누리당 안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이명박 정부 실정에 직접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인물들이 선거에 나서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엔 그러잖아도 새누리당이 불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총선에 ‘이명박맨’들이 출마하면, 선거 구도가 ‘정권 심판’으로 흐르기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책임져야 할 인물이 선거에 나서나

이들의 출마에 관해선 ‘실세용퇴론’이 제기되는 등 새누리당 안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이명박 정부 실정에 직접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인물들이 선거에 나서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엔 그러잖아도 새누리당이 불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총선에 ‘이명박맨’들이 출마하면, 선거 구도가 ‘정권 심판’으로 흐르기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이를 두고 이동관 전 수석은 2월15일 SBS 라디오 에서 “정치가 5년에 한 번씩 푸닥거리하듯 단절과 청산의 목소리로 점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계승과 진화의 역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준 전 수석도 “지금 이 대통령이 어렵고, 지지를 적게 받는다고 해서 전적으로 단절하려고 하면 실패를 가져올 확률이 훨씬 크다. 아무리 대통령이 인기가 없어도 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화합’을 강조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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