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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노사, 불법 정치후원금 거뒀다?

회사 임원 포함된 KT노조 정치후원금 400명 명단과 모금 공문 단독 입수… KT “노조 차원에서 한 일로 회사와는 무관” 해명
등록 2011-11-23 07:17 수정 2020-05-02 19:26

KT 노사가 조직적으로 국회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낸 정황이 드러났다.
은 2010년 정치후원금을 낸 KT노조 강북지방본부 400명의 명단 등이 적힌 자료를 확보했다. 400명이 10만원씩 총 4천만원을 국회의원 정치후원금으로 낸 것으로 돼있다. 명단에는 KT노조 조합원뿐만 아니라, 강북본부에 속한 KT 지사의 전무를 비롯해 상무·팀장 등 회사 쪽 간부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명단에 포함된 복수의 관계자는 과의 전화 통화에서 ‘회사와 노조의 지시에 따라, 어떤 국회의원을 후원하는지 모른 채, 수석팀장이나 노조 지부장에게 현금 10만원을 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서울 시내의 한 KT지사 팀장은 “노조에서 지부장이 내라고 해서 낸 것처럼 수석팀장이 주도해서 가져갔다”며 “나중에 누구한테 줬다고 알려줬는데 의원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나라당으로 안다”고 말했다.

KT노조와 회사 쪽이 2010년 조합 및 회사 간부들로부터 정치후원금을 조직적으로 거둔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 광화문의 KT 본사. <한겨레> 이정아 기자

KT노조와 회사 쪽이 2010년 조합 및 회사 간부들로부터 정치후원금을 조직적으로 거둔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 광화문의 KT 본사. <한겨레> 이정아 기자

“노조 통한 쪼개기 후원?”

현행 정치자금법은 조직적 모금을 통해서나 강요로 국회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내는 것을 금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문서와 증언대로라면 KT 회사와 노조는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셈이다. 정치자금법 제31조 2항은 “누구든지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돼 있다. KT 노사가 지시를 내려 조직적으로 모금했다면 ‘단체와 관련된 자금’이 된다. 정치자금법 제33조는 “누구든지 업무·고용, 그 밖의 관계를 이용하여 부당하게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알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KT 노조와 회사가 지시를 내렸거나 직원이나 조합원이 돈을 내라는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불법이 된다.

앞서 올해 초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가 조직적으로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을 전달해 법원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청목회보다 훨씬 더 큰 기업이나 단체도 비슷한 위법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의혹이 파다했다. KT 관계자들의 말대로라면, 그 의혹이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하지만 명단에 있는 KT 노조와 회사 쪽 관계자 상당수는 과의 통화에서 정치후원금 지원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등의 말로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서울 시내의 한 지사장은 “정치후원금을 낸 것은 아는 국회의원에게 냈는지, 회사를 통해 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말을 흐렸다. KT노조 강북지방본부도 마찬가지다. KT노조 강북지방본부장은 “그때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고, 또 다른 노조 관계자는 “개별적으로 후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다”며 입을 닫았다. 반면 서울 시내의 한 팀장은 “강압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라면서도 “수석팀장이 지역구 의원에게 후원을 하자고 해서 나를 포함해 팀장들에게 현금으로 10만원을 거둬간 적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말을 흐리거나 사실 관계를 부인했지만, 은 명단에 포함된 복수 관계자에게서 ‘조직적 모금’ 정황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확보했다. 서울 시내 한 지사의 팀장은 “2009년에 이어 2010년에도 정치후원금을 냈다”며 “당시 수석팀장이 와서 소득공제할 때 돌려받을 수 있으니 내라며 누구에게 후원한다는 말 없이 현금으로 10만원을 거둬갔다”고 말했다. 또 “노조에서 지부장이 내라고 해서 낸 것처럼 수석팀장이 주도해서 가져갔다”며 “나중에 누구한테 줬다고 알려줬는데 의원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나라당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팀장도 “세금공제가 된다고 하니까 (조직적으로) 냈던 것”이라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도 “지부장이 정치후원금을 걷고 있는 상황을 지사장이 모를 리 없다”며 “회사에서 직접 걷기 부담스러워서 노조를 통해 조직적으로 걷게 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문체위·정무위·법사위 등 의원 50명 후원 계획

노조 지부장의 증언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을 꼭 감춰달라는 KT노조 강북지방본부의 한 지부장은 “노조가 누구는 냈고 누구는 안 냈다는 명단을 공개해서 안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며 “내야 하는 상황이어서 (대상자들끼리) 내부적으로 통화해서 ‘아이고, 우리도 내자’고 10만원을 냈다”고 말했다. 또 “내가 원하는 당이나 의원한테도 아니고 그냥 10만원을 낸 것”이라며 “지부마다 지부장을 비롯해 그 아래 사무부장, 조직부장 등이 대상이었고 어떤 지부는 직원도 현금을 내 지방본부에 보내줬다”고 말했다. 그는 “일괄적으로 거두면서 누구를 후원한다는 말이 없었다”며 “나중에 문자메시지를 통해 누구에게 전달됐다고 통보받았는데,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나라당 소속이었다”고 말했다. 정치후원금을 낸 이들이 어느 국회의원을 후원할지도 몰랐고 사후에 통보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강북지방본부에만 국한된 것이었을까? 이 확보한 KT노조 부산지방본부의 공문을 보면 전국적으로 벌어진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부산지방본부가 2009년 9월 작성한 ‘KT노동조합 정책 관련 정치세력화 추진’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보면, “민주노총 탈퇴로 인하여 KT노동조합의 정당정치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조합의 위상 제고와 정책교섭 증대 및 통신 규제 정책 및 입법 과정 속에서 조합원의 고용 안정에 대한 대외활동을 강화하고자 합니다”라고 돼 있다. KT노조는 그 2개월 전인 2009년 7월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부산지방본부 문서를 보면, “통신산업정책 결정의 핵심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무, 법사위원회 등 주요 국회의원을 대상으로”라며 구체적인 지원 대상을 정하고 “1차 지원할 대상 선정(전국 약 50명, 부산지방본부 4명: 한나라3/민주1)”을 했다. 요컨대 전국적으로 국회의원 약 50명을 후원할 것이며, 부산지방본부는 한나라당 3명과 민주당 1명의 국회의원을 후원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또한 “향후 정치후원금 모집에 대해 연말 세액공제로 환급하며 조합원 대상으로 확대하여 지속적인 정치활동을 하고자 하오니 적극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지속적으로 이런 활동을 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KT노조 부산지방본부 관계자는 “2009년이라서 기억은 안 난다”면서도 “자발적으로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조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한 것이고, 노조에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으면 하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KT노조 중앙본부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며 “KT노조 중앙본부 간부들이 연말정산도 받고 깨끗한 정치를 위해 한 적은 있다”고 해명했다.

“거절하면 지방 발령 받을까 두려워”

그럼에도 전국적 모금이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증언이 나온다. 해당 지역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팀장은 “2009~2010년 정치후원금을 낸 것은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부장이 용지를 들고 와서 사인하도록 하고 현금을 받아갔다”며 “지방으로 인사가 나는 등 불이익이 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사인을 안 하냐”고 되물었다. 그는 “청목회 사건이 터지자 내부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며 “그래서인지 올해에는 정치후원금 얘기가 아직까지 없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서쪽 지역과 인천 등을 담당하는 KT노조 서부지방본부의 한 직원도 “지부장이 A4용지 한 장을 가져와서 전화번호와 주민번호, 이름, 사인을 적게 하고 현금 10만원씩 거둬갔다”며 “자발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치후원금을 조직적으로 냈다고 인정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회사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 지부장은 “노조원도 아닌 지사장을 비롯해 팀장들까지 (정치후원금을) 내는 상황을 회사에서 모를 리 없다”며 “회사 쪽의 동의나 지시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도 “지부장이 정치후원금을 걷고 있는 상황을 지사장이 모를 수 없다”며 “회사에서 직접 걷기 부담스러워서 노조를 통해 조직적으로 걷게 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T 홍보실은 “KT노조 강북지방본부 차원에서 한 일로 회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국적 차원에서 진행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KT노동인권센터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KT 기업문화가 철저히 상명하달식이라서 위(회사)에서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데, 상무 등 회사 간부들이 낸 것을 보면 회사 쪽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며 “특히 이석채 회장 등 ‘낙하산’ 인사가 KT에 입성하면서 정치권에 보답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2009년 KT노조 부산지방본부의 공문을 보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정무위원회, 법사위원회 등 소속 의원 등에게 정치후원금을 제공할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2009년 KT노조 부산지방본부의 공문을 보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정무위원회, 법사위원회 등 소속 의원 등에게 정치후원금을 제공할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청목회가 건넨 3억여원보다 액수 클 듯

KT노조는 12개 지방본부로 구성돼 있다. 강북지방본부에서 2010년 한 해에만 4천만원을 거뒀다면, 다른 지방본부를 포함하면 총 5억6천만원이 국회의원에게 건네졌다는 계산이 나온다. 2009년에도 같은 후원이 이뤄졌다는 정황을 고려하면 금액은 더욱 커진다. 청목회가 건넸다는 3억830만원보다 훨씬 큰 금액이다. 법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청목회 최아무개(55) 회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같은 혐의로 기소된 간부 양아무개(55)씨와 김아무개(52)씨에게는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불법 후원금 제공 혐의 노조 수사 진행 상황
민주노동당·진보신당 관련만 속도 빨라
지난 2월23일 서울서부지검은 KT 계열사인 KT링커스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정치권에 불법 후원금을 제공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때문이었다. KT링커스 노조는 조합원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한나라당 전·현직 의원 5명과 민주당 의원 2명 등 7명에게 1인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고발한 데 따른 것이었다.
지난 5월 서울중앙지검은 LIG손해보험과 KDB생명의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두 회사의 노조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불법 정치자금을 전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때문이었다. 이 역시 선관위의 고발에 의한 것이었다. 그 뒤 11월18일 현재, 수사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서울중앙지검은 이미 지난 8월 두 노조를 비롯해 8개 노조 관계자, 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그 관계자들을 불구속 기소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반면 그보다 수개월 앞서 KT링커스를 압수수색한 서울서부지검은 여전히 수사 중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은 ‘진보세력에 대한 표적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신창현 부대변인은 “선관위가 지난해 발표한 ‘정당 및 후원회 등의 정치자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위법 건수 397건 가운데 116건이 한나라당과 연루된 것”이라며 “그럼에도 검찰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만 제대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이 개인의 소액 후원까지 지나치게 통제한다는 비판도 많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은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이나 이익단체의 경우 정치자금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청목회처럼 작은 단체에서 개인이 내는 후원금까지 규제하는 것은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규제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하 소장은 “지금은 연간 300만원 이상을 후원한 사람의 인적사항만 공개하는데, 이를 훨씬 낮춰 투명성을 보장하는 대신 개인 후원을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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