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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맞았습니다. 세 딸아이 앞이었습니다.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벌어지는 행사에는 빵이 그득 쌓여 있었고, 아이들은 그 빵을 먹고 싶어했습니다. 하도 보채기에 빵을 집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는데, 그 장면을 본 경비가 달려와서 뺨을 때렸습니다. 남자 어른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가장으로서 처자식이 보는 데서 남에게 뺨을 맞았다는 수치심이 참기 힘들었고,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중학생 한 명이 빵 5개를 품에 안고 달려왔습니다. 중학생은 빵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다시 한번 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시는 창피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았다.” ‘parkbr’님이 보내준 사연입니다. 그는 이 중학생을 천사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중학생을 생각하며 어린이문화재단에 10년째 후원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콧등이 시큰해진 사연들천사를 만난 분의 사연을 듣고 싶었습니다. 공모 기간은 짧았습니다. 응모하고 싶다고 쓸 수 있는 글이 아닙니다. 기억을 되살리고 그걸 글로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인 것까지 고려하면 일주일 새 도착한 39편은 놀라운 숫자였습니다. 이렇게 ‘내가 만난 천사 이야기’ 공모를 진행하며 천사의 날갯짓 소리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눈덩이 같은 빚을 감당하지 못해서 자살을 생각하던 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일깨워주신 분, 엉망으로 취해 지갑도 없이 집으로 가던 길을 무사히 지켜주신 분, 어려운 사정을 듣고 입학금을 몰래 내주신 공무원, 시위 중 넘어진 이를 향해 손을 내밀어준 ‘잘생긴 남자’… 사연 하나하나를 읽으며 어김없이 콧등이 시큰해져와서 사무실에 앉아 있기 곤란한 적이 여러 번입니다. ‘parkbr’님이 흘린 두 번째 종류의 눈물 때문이었지요.
천사는 불쑥 나타났습니다. 아이 앞에서 뺨을 맞았을 때, 지리산에서 쓰러질 지경이 되었을 때, 늦은 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버스를 내렸을 때, 여행하다 탈수 상태가 되었을 때, 이국의 구치소에 갇혀서 연락할 방법이 묘연할 때, 어디선가 나타난 천사는 목숨과도 같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천사는 오랫동안 곁에 있었습니다. 10년간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보살펴준, 셋집이라기보다는 자식처럼 보살펴준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주위에 웃음을 전파시킨 젊은 암환자도 있었습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도 장애인 목사가 이끄는 시골의 작은 교회를 오랫동안 후원한 분도 있었습니다. 이기적 선택임에도 후원해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진심은 진심을 알아본다과 편집진이 머리를 맞대고 10편의 글을 골랐습니다. 고르는 사이 150일째 고공시위 중인 한진중공업 김진숙 위원의 글이 도착했습니다. 바다의 하늘에 떠 있어 글 전달이 어려웠던 사정을 고려해 고심 끝에 이 글을 마지막 후보작으로 합류시켰습니다. 10편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네티즌 투표를 했습니다. 150여 명이 투표를 해주셨습니다. 로그인이라는 귀찮은 과정을 거치고 말입니다.
글을 읽으신 분이 이런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진심은 진심을 알아본다고 천사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귀동냥하며 진심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천사병’은 감염률이 높은 전염병인가 봅니다. 글을 응모해주신 분, 투표해주신 분 모두 감사합니다. 훈장도 상장도 없지만, 쑥스럽게도 감히 임명합니다. 천사를 기억해준 분, 천사 이야기에 감동하신 분, 당신들은 모두 천사입니다.
구둘래 기자 디지털콘텐츠국 기획편집팀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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