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하중도에 위치한 중도 유원지 내 자전거도로. 왼쪽에는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의암호가 자리한다. 이 자리에 높이 3m의 제방을 쌓을 계획이다. 윤운식 기자
강원도 춘천 하중도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4대강 사업’ 예정지인 동시에 선사시대 유적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는 ‘보물섬’에 찾아간 7월21일, 높은 기온과 습도에 하루 종일 비도 오락가락했다. 빗속에도 하중도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도 유원지의 잔디밭은 푸르렀다. 세 명의 아이들이 맨발로 축구공을 차고 있었다. 한 쌍의 연인은 자전거를 달렸다.
‘하중도’는 하중도(河中島)이자 하중도(下中島)다. 금강산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흘러온 북한강이 소양강과 만나는 지점에 퇴적물이 쌓여 길쭉한 하중도(河中島)를 형성했다. 섬이되 섬이 아니었다. 태초에는 뭍에서 걸어가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겨울을 지나 봄에 이르는 갈수기에 강폭이 좁은 곳은 물이 말라 자박자박했다. 비옥한 농토를 일구며 사람들은 경계 없이 뭍과 섬을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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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도(下中島)는 기이한 운명이 낳은 이름이다. 1968년 의암댐이 건설되면서 물이 자박자박하던 땅은 거대하게 형성된 의암호 아래로 잠겼다. 수심이 얕은 섬의 가운뎃부분도 물에 잠겼다. 그리하여 중도가 두 개로 쪼개졌다. 위의 것은 상중도, 아래 것은 하중도라 불리게 됐다. 수몰지역 피해주민 150명이 상경 시위까지 벌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삼악산 중턱에 별장을 짓고 창문 너머로 의암호를 내려다봤다.
이후 하중도는 관광지로 개발됐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인 1986년 1월1일 중도 유원지가 개장했다. 공사 과정에서 고인돌 2기, 움집 5동 등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됐다. 유원지 한쪽 구석에 조그마한 전시장을 만들어놓고 공사는 계속됐다. 유원지 안에 야영장, 실외수영장, 잔디광장, 자전거도로 등이 잇달아 조성됐다. 중도 유원지는 춘천 시내 중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5분간 물살을 가르면 도착하는, 춘천의 대표적 관광지가 됐다.
유원지를 조성할 당시에도 하중도가 ‘보물섬’이란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1977년에 반월형 석도, 1978년에 유구석부(자루를 묶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홈을 판 돌도끼)와 마제단인석부(갈아서 만든 돌도끼) 등 매장문화재가 발굴됐다. 1980년대 초반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강원대 등 여러 기관이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 지석묘와 삼국시대 초기의 돌무지무덤, 철기시대 수혈주거지(일정한 깊이로 넓은 구덩이를 파서 바닥시설을 한 집터) 등이 하중도에 존재함을 확인했다. 2001년부터 중도 관광지의 운영을 맡게 된 강원도개발공사는 선착장 앞에 안내판을 세우면서 “이 섬에는 신석기 말기와 철기시대 초기의 유물과 주거지가 대량 발굴되어 북한강에 형성된 철기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평가되고 있다”고 밝혀 적었다.
유원지가 만들어진 뒤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다. 20년이 넘도록 하중도는 춘천 시민들의 ‘소풍 장소’였다. 춘천 시내 중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5분간 물살을 가르면 하중도에 위치한 중도 유원지에 가닿았다. 춘천에서 태어난 김선미(26)씨는 “4살 때 처음 중도 유원지에 놀러가서 수영을 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매년 소풍 장소가 중도 유원지였다. “지겹고도 정겨운”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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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유원지에는 자전거도로가 조성돼 있었다. 자전거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통행을 막아놓은 길이 눈에 띈다. 들어가서 조금 걸으니 도로 바로 옆 곳곳에 시뻘건 황토가 드러나 있다. 최근 강원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한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이었다. 길옆에 발굴된 채 방치된 유적지에는 빗물이 고여 흙탕물이 가득했다. 유적지 위에 대강 덮어둔 파란색 비닐천은 거센 빗줄기와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펄럭였다.
최근 발굴된 하중도 유물·유적
“유적지를 모래에 묻고 제방을 쌓으면 된다”
국토해양부가 이곳에서 벌일 사업의 이름은 ‘북한강 살리기 11공구(하중도지구) 사업’이다. 국토해양부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내놓은 ‘현장설명서’를 보면, 이 사업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제방 쌓기, 환경 정비, 자전거도로 건설, 교량 건설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630억원의 예산으로 지난 4월8일에 착공해 36개월간 공사를 한다는 계획이다. 사업 목적으로는 홍수 피해 해결, 하천 복원, 국민 여가문화 수준 향상 등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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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보물’의 존재를 아는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지건길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은 “하중도에는 워낙 유물·유적이 많아 원래부터 공사를 못할 것이라 예상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우려뿐만이 아니다. 착공 전에 실시된 조사에서 “섬 전체가 유적지”라는 경고가 나왔다. 지난해 6월1일~7월31일 진행된 지표조사를 담당한 강원문화재연구소는 “하중도 지구는 유원지 부분을 제외한 전역에 걸쳐 유적이 분포함을 알 수 있다”며 사업 시행에 앞서 유적의 분포와 범위, 성격 등을 파악하는 시굴조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사업은 강행됐다. 특히 문화재 발굴 조사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착공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착공일이 4월8일인데 문화재청의 발굴 허가를 받아 하중도 발굴 조사를 진행한 것은 5월7일부터다. 조사 기한은 7월 말까지다.
조사는 강원문화재연구소가 맡았다.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해 제방을 확장해야 하는 약 3347m 구간을 40m 간격으로 나눠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3분의 2가 넘는 구간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철기시대 주거지 등 다양한 유물과 유적이 확인됐다. 연구소 쪽은 지난 6월24일 ‘문화재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자료집’을 통해 “하중도의 현재 지형의 가장 바깥쪽에 대한 금번 조사 결과는 하중도 유적의 전반적 양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동쪽 강변에는 철기시대 유적, 서쪽 강변에는 청동기시대 유적이 밀집해 청동기·철기 문화를 재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병현 숭실대 교수(사학)는 “하중도는 전역에 선사시대부터 원삼국시대까지의 유적이 깔려 있는데다 철기시대 유물인 무문토기가 처음 발견된 곳이어서 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앞으로도 발굴조사를 계속해야 하는 땅에서 왜 4대강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유적지 분포와 공사구간이 일치하는 상황에서 유적지가 훼손될지 여부는 ‘선택’의 문제다. 지건길 문화재위원은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이르는 주거지들은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며 “이제 남은 선택지는 현장을 보존하느냐와 공사를 강행하느냐 두가지 뿐”이라고 말했다. 3347m의 공사구간에는 폭 14m의 제방에 건설될 예정이며 이번에 발굴된 유적지는 대부분 이 구간과 겹친다.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은 “공사 진행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원주지방국토관리청 북한강살리기사업팀 박재구 팀장은 “문화재가 나온다고 해서 공사를 못하는 게 아니다”라며 “교량부터 먼저 짓고 있으면 문화재 조사·발굴을 해도 공사 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올해 안에 문화재 조사·발굴이 끝나면 유적지를 모래로 묻고 그 위에 제방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병현 교수는 “모래로 유적지를 덮는 것은 현장 보존을 할 수 없을 때 선택하는 방식”이라며 “중요한 유적을 덮어버리는 일은 고고학자 입장에서 한없이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문화재 발굴 문제와 별도로 공사 자체가 ‘쓸데없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강 살리기 11공구(하중도지구) 사업’ 자체의 필요성을 따져볼 일이다. 사업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길이 3347m, 높이 3m의 제방을 쌓는 일이다. 국토해양부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밝힌 제방의 용도는 ‘홍수 방지’다. 하지만 확인 결과 하중도는 홍수 피해를 입은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도개발공사 중도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10년 동안 중도 유원지에 홍수 피해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유원지 주변에서도 홍수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중도를 관할하는 근화동 주민센터에서도 “하중도에 홍수 피해나 자연재해는 없었다”고 확인해주었다.
만에 하나 하중도에 홍수가 난다고 해도 피해를 입을 시설이 많지 않다. 현재 하중도에 거주하는 이들은 9가구 25명에 불과하다. 농경지도 많지 않아 일부에서 감자밭을 일구는 정도다. 가장 큰 시설인 유원지의 경우도 대부분 잔디밭인데다 그나마 유원지 주변은 자전거도로를 만들면서 제방을 쌓아둔 상태다. ‘3m 높이 제방’의 역할이 모호하다.
홍수 피해도 없는데 제방 쌓느라 630억원?‘녹색성장’을 의미한다는 자전거도로는 제방 위에 건설될 예정이다. 제방 길이만큼 긴, 섬 둘레를 도는 도로가 될 터다. 게다가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은 상중도와 하중도를 연결하는 교량을 세워 자전거를 타고 중도 전부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계획과 관련해서는 자전거 대여소 쪽의 반응마저 시큰둥하다. 중도 유원지 자전거 대여소를 운영하는 김아무개(60)씨는 “자전거로 현재 유원지만 돌아봐도 1시간인데 누가 멀기도 하고 볼거리도 없는 상중도까지 갔다 오겠느냐”고 말했다. 상중도와 하중도의 자전거도로가 건설돼 연결되면 총 연장은 8.3km, 교량의 길이는 167m다.
홍수 피해가 없는 지역에 제방을 쌓고, 이미 자전거도로가 있는 곳에 자전거도로를 건설하느라 들어가는 예산은 모두 630억원에 달한다. 춘천환경운동연합 유기욱 공동의장은 “민가도 없고 농가도 없고 홍수 피해도 없는 곳에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겠다는 말은 예산 소모를 위한 공사라는 말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쓸데없는 제방을 만드느니 선사 유적지를 조성하는 것이 관광 가치로도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에서는 현재 “전력 생산량도 미미한데 환경오염만 불러일으키는 의암댐을 없애자”는 논의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박정희의 업적’으로 평가되던 의암댐의 몰락은 지난 반세기 ‘개발의 욕망’을 상징한다. 의암호에 가라앉아 쪼개진 채 사람도 살지 않게 된 하중도는 이제 ‘4대강 사업’ 공사를 앞두고 있다. 무엇을 위한 개발인지, 기이한 운명의 보물섬이 조용히 묻고 있다.
춘천=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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