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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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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익빈 수렁에 빠진 동네를 구하라


부자 감세로 수입은 줄고 복지 확대로 지출은 늘어난 지자체…
재정 파탄의 피해는 어린이·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다
등록 2010-07-29 16:15 수정 2020-05-03 04:26

광주 광산구의 어린이 2만2667명은 오는 10월부터 어린이집을 못 갈지도 모른다. 이들은 1인당 많게는 한 달에 70만원에서 적게는 12만원까지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10월에 구 예산이 동날 전망이다. 총 551억원의 예산이 국가보조금과 구 자체 예산으로 충당되는데, 광산구청이 자체 부담금 80억원 중 56억원밖에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 예산 집행에 맞춰 국가보조금이 지급되는 구조여서, 10월부터 구 예산이 집행되지 않으면 더 이상 국고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 밖에도 광산구청의 다양한 복지사업이 중단될 위기다. 당장 7월 말부터 이 지역 노인들은 점심을 걱정해야 한다. 광산구청은 1997년부터 10년 넘게 경로당에 분기마다 20kg들이 쌀 5~9포대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도 329개 경로당의 노인 1만여 명을 위해 쌀을 지원했는데, 이미 상반기에 예산이 소진됐다. 한 해 필요한 2억9천만원 중 1억5200만원만 마련됐기 때문이다. 구청 쪽은 지역 농협이나 대형마트 등에 도움을 호소하지만, 경기 불황으로 이 또한 쉽지 않다. 또 65살 이상 노인에게 매달 2만~14만4천원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도 총 181억원의 예산 가운데 172억원만이 책정돼 한겨울인 올 12월에는 지급이 불투명하다. 심지어 광산구청 공무원 800여 명의 임금도 걱정한다. 직원 인건비 511억원 가운데 163억원을 예산에 반영하지 못해 오는 8월까지만 온전히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처지다.
<font color="#00847C">어린이집 못 가고, 노인은 끼니 걱정</font>

지난 2008년 9월1일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금까지도 ‘부세 감세’라고 비판받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재도약 세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

지난 2008년 9월1일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금까지도 ‘부세 감세’라고 비판받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재도약 세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

이처럼 예산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나둘이 아니다. 차라리 호화 청사 건립 등 전임 시장의 무분별한 예산 집행으로 최근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경기 성남시를 부러워하는 지경이다.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성남시는 호화 청사를 짓다가 문제가 발생했지만, 재정자립도가 허약한 다른 지자체는 청사를 짓기는커녕 독자적인 사업을 펴기도 힘들다. 정부의 부자 감세 등으로 인해 지자체 수입이 줄어 광산구청의 경우 예산 2773억원 가운데 10%가량이 모자란 상태”라고 말했다. 또 “자치단체 사업 가운데 사회복지 사업이 52%에 달한다”며 “복지사업이 어려워지면 피해는 어린이와 노인 등 사회적 약자나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민 구청장의 말대로 지자체의 재정난은 정부의 ‘부자 감세’가 가장 큰 원인이다. 2008년 9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재도약 세제’를 발표했다. 세금을 줄여 소비를 촉진하고, 일자리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강 장관은 소득세율을 8~35%에서 6~33%로 2%포인트 낮추겠다고 밝혔다. 법인세율 역시 과표 기준을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올리고, 과표 2억원 이하는 세율을 13%에서 2010년 10%로, 2억원 이상은 25%에서 2009년 22%, 2010년 20%로 각각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정책은 저소득층이나 중소기업보다 부유층과 대기업이 더 많은 혜택을 누려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일었다.

부자 감세에 따른 지자체의 재정난은 부동산 경기 하락과 맞물리면서 올 들어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방자치단체 재정난의 원인과 대책’이라는 보고서를 내어 중앙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지방재정이 총 30조1741억원 줄어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감세 정책에 따른 지방재정 세입 변동 현황

감세 정책에 따른 지방재정 세입 변동 현황

<font color="#C21A8D">중앙정부가 줄이면 지자체가 굶는다</font>

구체적으로는,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가 자치단체의 몫인 지방소득세(옛 주민세)를 줄였다. 지방소득세는 국가에 내는 소득세와 법인세의 10%를 지자체가 따로 부과하는 세금인데, ‘형’이 줄어 ‘아우’도 줄어든 셈이다. 이로 인해 지방소득세는 2010년 1조7141억원, 2011년 1조7541억원, 2012년 1조7304억원 등으로 5년간 6조2784억원이 줄어들 전망이다.

또 국세 자체가 줄어듦에 따라 국세의 19.24%를 지자체에 배당하는 지방교부세도 덩달아 감소했다. 지방교부세는 중앙정부가 자치단체 재정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배정하는 지원금이다. 지방교부세는 올해 3조641억원이 줄어드는 등 앞으로 해마다 3조원 이상씩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100% 지방자치단체가 거두는 종합부동산세 역시 과세 기준이 완화되면서 2010년에는 7조9329억원, 2011년에는 8조1003억원, 2012년에는 8조547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지자체가 쓸 돈이 적어져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계속 떨어진다. 2007년 재정자립도는 53.6%였지만 계속 떨어져 2010년 52.2%를 기록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인 군은 18%로 가장 열악하다. 정부가 부가가치세의 5%를 지자체 세입으로 전환해주는 지방소비세 제도를 올해부터 도입하고 소득세·법인세 인하를 일부 유보하는 등 지방의 세수를 늘리기 위한 조처를 취했지만, 이로써 회복되는 지방재정은 11조6천억원 수준이어서 여전히 18조6000억원가량이 부족하다. 더욱이 부가가치세는 주로 재정자립도가 좋은 수도권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지방소비세가 수도권과 다른 지역 간 양극화를 심화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세금을 줄여 소비를 늘린다는 정부 목표가 제대로 실현된 것도 아니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분석한 ‘소득세법 개정 및 소득이전의 소비 진작 및 소득재분배 효과’ 보고서를 보면, 2009년 소득세율 인하로 세금은 4조원이 줄었지만, 소비 증가분은 1조2240억원에 불과했다.

이렇게 지자체의 예산은 줄어들지만 쓸 곳은 해마다 많아진다. 기초생활급여, 기초노령연금, 영·유아 보육료 지원 등은 정부 예산과 지자체 예산이 합쳐져 집행되는데, 혜택 대상이 넓어지면서 지자체의 부담도 늘고 있다. 여기에 경제위기 이후 정부가 예산 지출을 독려하면서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다. 결국 재정파산 상태에 이르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올해 직원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해 사실상 파산 상태에 빠진 지자체가 전체(244곳)의 16.3%인 40곳에 달했다. 지난해보다 29곳이 늘어난 수치다. 군의 경우 86곳 가운데 27곳으로, 비율이 31.4%에 이른다.

모자란 예산은 이자를 지급하면서 빚을 질 수밖에 없다. 부산 남구청은 올 초 직원 인건비를 주지 못해 지방채 20억원을 발행했다. 이런 식으로 늘어난 전체 지방채 채무가 2009년 25조5531억원에 달했다. 2008년 19조2255억원에 견줘 1년 만에 32.9%나 늘어난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채 발행 기준을 엄격하게 한다고 7월13일 밝혔지만, 지난해에는 예산 조기 집행을 독려하면서 지방채 발행 한도를 늘려준 바 있어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font color="#008ABD">“부자 감세 철회 없으면 더욱 심각해져”</font>

조승수 의원은 “최근 발표된 지자체 재정난에 대한 정부 대책은 책임을 지자체에만 떠넘기는 무책임한 것”이라며 “부자 감세 철회, 지방소비세 확대, 사회복지교부금 신설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이 없이는 현재의 지자체 재정난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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