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향응 리스트 파문’의 진실을 밝힐 진상규명위원회(이하 규명위)가 전직 건설업체 대표 정아무개(51)씨를 소환 조사하는 등 본격적인 조사 행보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규명위 활동이 무색하게, 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거라는 기대감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성낙인 위원장(서울대 법대 교수)이 구조적인 검사 비리를 제대로 규명할 수 있을지에 의구심이 일고 있다.
“선생님이 위원장이라니 걱정…”
성낙인 위원장은 4월22일 위원장으로 위촉된 뒤 기자들과 만나 “검사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이 문제는 한국 사회 특유의 온정주의 탓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참여연대는 이튿날 낸 성명에서 “이해관계자한테 지속적으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것은 포괄적 뇌물 수수”라며 “아직 실체 규명조차 되지 않은 사건의 성격을 미리 예단하는 것은 위원장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수 단체인 선진화개혁추진회의 역시 성명을 내고 “(규명위는) 검찰이 민간인들을 여론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한두 명의 희생양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성 위원장의 제자이자 예비 법조인인 서울대 법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성 위원장에 대한 자질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 4월23일, 성 위원장의 개인 누리집 게시판에 한 졸업생이 장문의 글을 남겼다. 서울대 법학과 01학번으로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힌 이 졸업생은 “선생님께서 이번 ‘떡검’의 성로비 조사 위원장이 되셨다는 뉴스를 듣고 너무도 걱정이 되는 바가 많아 이렇게 글 올립니다”라며 “이번 기회를 고위 검찰들과의 라인을 공고히 하는 기회로 사용하실지 아니면 제대로 된 사법 개혁에 앞장서실지 저와 제 후배·선배들은 지켜보고 있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논쟁적인 글에 댓글이 폭발했다. 한 재학생은 “주관에 근거한 소감이라면 교수님께 메일로 보내도 충분하다. 다분히 모욕적이고 인신 공격적인 글”이라고 비판했지만, 대부분의 댓글은 “다른 교수님도 많으신데, 하필이면 성낙인 교수님이냐” “대놓고 봐주기 아닌가?” 등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논란이 계속되자, 성 위원장의 누리집에서 해당 글은 삭제됐다.
민간 위원이 포함된 규명위의 역할도 모호한 상태다. 성낙인 위원장은 4월27일 열린 규명위 첫 회의에 앞서 “(규명위 산하) 진상조사단이 내놓는 결과가 미흡할 경우 전면 재조사를 요구할 수 있으며, 민간 위원들이 직접 조사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한 강경 발언이었다. 그러나 회의를 마친 뒤 규명위 대변인인 하창우 위원(변호사)이 내놓은 설명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법률상 수사권의 주체는 검사들”이라며 “민간 위원이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지 먼저 법리 검토를 해본 뒤, 민간 위원이 조사에 참여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조사 과정을 전부 영상 녹화해 감시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분량이 만만찮을 녹화물을 누가 어떻게 열람하고 감독할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었다.
서울대 총장 선거 일정 탓 회의 연기?규명위의 사태 장악력에 의구심이 일면서, 진상 규명 의지 자체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 규명위는 위원장이 위촉된 지 5일 만에야 첫 회의를 열었다. 그나마 이날 회의에도 민간 위원 가운데 2명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같은 논란의 배경으로 성 위원장이 첫손에 꼽힌다는 것이다. 규명위의 첫 회의가 월요일이 아닌 4월27일(화요일)에 열린 이유도, 서울대 총장 선거에 나선 성 위원장의 선거 운동 일정이 전날까지 빡빡하게 잡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위원장뿐만 아니라 민간 위원들이 모두 현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을 조율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노현웅 기자 한겨레 법조팀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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