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를 달게 되어 영광스럽다”는 선수들의 인터뷰를 듣게 되면 종목을 막론하고 늘 야릇한 감정에 휩싸이는 건 왜일까. ‘정말로 영광스럽니?’라는 딴죽과 ‘태극마크’라는 작은 표장이 준 감동의 기억들이 공존하기 때문일 터다. 1월 어느 날, 이래저래 TV 채널을 옮겨다니다가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서 종목을 바꿨다”는 한 선수의 인터뷰를 우연히 봤다. 충격적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국가대표가 되어야 하는 걸까.
이승훈 선수. 신화/GUO DAYUE
주인공은 한국 빙상대표팀의 이승훈(21)이다. 원래 쇼트트랙 선수였던 그는 올림픽 대표 선발 과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5천m 종목으로 전향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가 자신의 주종목인 쇼트에서 스피드로 전향한 뒤 기존 선수들을 줄줄이 제치고 그토록 원하던 ‘국가대표’ 자리를 거머쥐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지난해 12월에 열린 ‘2009-201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2차 대회에서는 한국 신기록까지 세웠다. 스피드로 전향한 뒤 출전한 두 번째 국제대회였다.
종목을 막론하고 쉽게 달기 힘들다는 태극마크를 “달겠다”고 마음먹었더니 5개월 뒤에 “달고 있다”더라는 신데렐라 스토리. 사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 스토리에 멋대로 ‘신데렐라’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버릇이다. 누군가의 열정을 줄 세우듯 나란히 세우고, 키 재듯 자로 잴 수는 없다. 그런데 프로의 세계에서는 그걸 돈으로 환산한다. 메달로 환산한다. 누구의 기준이 누구를 신데렐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본인에 따르면, 이승훈 선수는 쇼트트랙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결정적 기회를 놓쳤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일생일대의 기회라 부르는 그 순간을 눈앞에 두고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는 스물한 살 어린 선수의 회상을 앞에 두고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 역시 살면서 정말 중요한 순간에 어이없는 실수를 한다. 실수 없이 완벽한 사람은 이상일뿐더러 멋도 없다. 그런 순간에는 그냥 웃고 넘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가 되고 난 뒤 한번은 국제대회 출전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출발을 기다리다 쇼트트랙 대표팀과 마주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진짜 속마음이야 본인 이외에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그는 출국 인터뷰에서 “어색하지만 설렌다”는 말을 남겼다. 쿨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는 다가오는 2월12일 개막할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메달을 기대하지 않는’ 국가대표를 응원할 생각이다. 물론 그가 메달이라도 딸라치면 분명히 또 눈물 콧물 질질 짜며 감동의 애국가를 BGM(배경음악)으로 인간의 불굴의 의지가 보여주는 위대함 앞에서 신파극을 찍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내가 인생의 진리로 삼는 명작 에서 감독님은 이렇게 가르쳐주셨다. “게임은 지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포기하는 순간 끝난다.” 인생은 게임이고, 게임은 즐기면 된다. 메달이 없으면 어떻고, 1등이 아니면 좀 어떤가. 메달 너머의 것을 위해 멋지게 내달릴 이승훈 선수의 열정을 응원한다.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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