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계층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갈등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노사관계다. 자본주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노사 간의 긴장과 대결을 초래한다. 노사 문제 해결 방식은 그 사회의 수준을 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이때 갈등 해소의 중요한 한 축은 바로 ‘언론’이다. 언론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 갈등 해소와 환경 감시 기능은 가장 원초적인 언론의 기본 책무다.
한국에서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벌어지고 있다. 태평양 건너 또 다른 한 국가에서는 8개월 전부터 응급구조대원들의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모두 공공 이익을 추구하는 분야다. 그러나 두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캐나다 밴쿠버의 한 대학에 잠시 머물고 있다. 이곳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소속 응급구조대(paramedics) 3500명이 지난 4월부터 파업을 하고 있다. 응급구조대는 한국으로 치면 119 구급차 요원들이다. 파업 이유는 4.2% 임금 인상과 부족한 인원 보충, 근무환경 개선이다.
대체요원 투입 요청 대법원이 기각이들의 노조는 캐나다공공연맹(CUPE·Canadian Union of Public Employees) 소속이다. 캐나다 전역에 60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 공공 노조다. 교육·의료·사회서비스 분야 노동자들이 가입돼 있다. 절반 이상이 여성이며, 전체 조합원의 3분의 1이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들의 파업을 다루는 언론 보도는 철저한 객관 보도를 유지한다. 시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는 등 파업을 비난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지 이유를 전하고, 이에 대처하는 주 정부 담당 장관의 멘트가 나온다. 한국의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한 언론 보도와 비교해볼 때 큰 차이가 있다. 한국 언론은 공공 분야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도할 때 정형화된 틀을 갖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파업’이란 기사가 나온다. 시민의 불평과 불만 보도, 직권중재, 노조 집행부 검거, 공권력 투입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관성이다. 파업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을 다룬 보도는 찾기 어렵다.
11월30일치 는 나나이모 지역에서 벌어진 집회 소식을 전한다. 이 기사에서도 시민의 불만을 다룬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사회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는 언론 보도다. 또 파업에 참석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 CUPE 회장 배리 오닐의 연대성명을 보도한다. “우리는 이 정당한 파업을 불법으로 저지하려는 주 정부에 항거한다. 이번에는 응급구조대의 파업이 대상이지만, 다음에는 다른 노조의 파업이 저지당할 것이다. 8만의 브리티시컬럼비아주 CUPE 조합원은 응급구조대의 투쟁에 동참한다.”
지난 6월29일 CUPE는 성명을 발표했다. 내용은 브리티시 파업 기간 중 대체요원 투입에 대한 컬럼비아주 정부의 요청을 대법원이 기각한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언론 역시 이 결정과 관련해 노사 자율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시간이 걸리고 어렵더라도,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다. 공공 분야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정부 개입을 촉구하고 군인 등 대체요원 투입을 당연시하는 사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한국 현실과 대비된다.
보수 언론도 “정당한 파업”캔웨스트 미디어그룹에 속하며 보수 성향의 논조를 가진 도 지난 11월17일 사설에서 파업과 관련한 의견을 밝힌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이번 파업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내외 여건을 인식해 노동조합이 심사숙고하기를 바란다.” 이 사설에서도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는 등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또 다른 사례다. 2010년 동계 올림픽을 주관하는 밴쿠버올림픽위원회(VANOC)가 지난 9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동계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조속한 파업 해결을 촉구하는 메모’를 보낸 사실이 보도되었다. CUPE는 이 메모가 지난 11월14일 의회에서 여당인 자유당이 파업 중단을 의결하는 ‘의안 21’을 통과시킨 배경이 됐다고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최종 협상 단계 도중 의회가 파업을 종결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캐나다 노동사에서 처음 발생한 사건이다.
CUPE는 즉각 VANOC의 부당한 개입을 규탄하고, 새로운 파업을 예고한다. 한국에서는 공공 부문 파업이 일어나면, 유관기관 대책회의가 자연스럽게 열린다. 장관들이 함께 나와 엄정 대처를 주장하고, 공권력 투입을 암시한다. 언론은 당연하다는 듯 이것을 중계방송한다. 어떠한 고민도 찾아볼 수 없다. 노사 간의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사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생각해야 한다.
공공선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 국제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 가 인정한 권리,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며 많은 국가에서 적용되는 이 단순한 규정이 왜 한국의 노동 현장과 언론 현장에서는 무시되는지 반성해야 한다. 때론 사회가 거꾸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 언론은 기본 원칙을 생각해야 한다. 당장 불편한 시민의 불만을 보도하는 것이 아닌, 불편을 참는 방법과 노사 양쪽이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분위기를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대신하는 언론의 기본 과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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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캐나다)=천세익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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