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보다 더 값진 자원봉사
“아빠, 애들이 나보고 가난뱅이래.” 초등학교 3학년 딸이 하는 말에 순간 당황했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키우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가난뱅이라니? 다 큰 어른도 아니고 이제 막 열 살 먹은 여자아이가 가난하지도 않은 자신을 가난뱅이라고 오해하면서, 마음에 쓸데없는 상처를 받을까 염려스러웠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이들끼리 샤프연필을 가지고 비교를 했는데 같은 모둠에 있는 친구들이 유난히 비싼 샤프연필을 많이 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문방구에서 500원 주고 사준 샤프가 당연히 싸 보였겠지. 게다가 평소 아이들이 학교 앞에서 군것질하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아내가 전혀 용돈을 주지 않아, 아이들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뭘 사먹는 데도 끼지 않는 것을 또래 아이들은 가난해서 돈이 없어 그런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이가 열 살을 넘어가면서 평소에 말로 하는 공자님 말씀은 이미 약발이 다했음을 느껴오던 참이었다. 어떻게 알아듣게 설명하나 머릴 굴리고 있는데, 딸아이의 말이 너무도 기특하다.
“근데 난 걔네들이 좀 한심해. 그 돈이면 가난한 아이들이 한 끼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데 말이야. 그런 걸로 잘난 척하냐….”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병든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 돌보며 지내는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뭐,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준단 말인가. 이미 내 딸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컸는데. 기특해서 좋은 샤프연필을 사주겠다고 하자 이번엔 제대로 핀잔을 준다. "아빠 난 됐거든? 별로 갖고싶지도 않아." 그래도 장하다 싶어 뭐라도 사주고 싶다. 이번엔 용돈을 제안해본다. "아빠 왜그래? 난 돈 필요없다니까?". 뭔가가 가슴속을 뻥 뚫어놓는 느낌이다. 딸아이 친구들이 아파트 몇평에 산다고(도대체 애들이 등기부 등본을 띠어 보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 걸 어떻게 아나?), 아빠가 어디 회사 다닌다고,심지어는 대 놓고 집에 돈이 많다고 자랑한다고 할 때마다 (그애들 부모들의 평소 대화수준을 짐작케한다.)돈에대한 나름의 강의를 늘어놨었는 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몇년전 취재갔다가 알게된 곳에 예전부터 기부하는 게 있다. 말이 기부지 눈곱만큼 내면서도 인색한 성격상 눈앞에서 직접 내는 돈이 아까워 통장으로 자동이체 했던 그곳, 그러고보니 한 번도 직접 가보지 않았다. 아하! 그곳에 가야겠다. 새해엔 꼭 직접 몸으로 자원봉사를 해야지. 빨래를 하던 밥을 먹이던 직접 몸으로 해야지. 물론 딸의 손을 잡고. 딸의 영어·수학 점수 올리는 덴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커서 엇나가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 덴 확실히 도움이 될 거 같다. 백날 말로 하는 것보다 쉬워 보이기도 하고….
윤운식 기자 yws@hani.co.kr·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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