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에서 여당은 늘 허약했다. 거수기였다. 제왕적 대통령이 행정부를 일사불란하게 이끄는 것을 정치의 최고선으로 여겨졌다. 여의도는 ‘딴죽 거는 곳’이란 인상만 확대재생산됐다. 허약한 여당은 한국 정치사의 비극이다. 한국의 정치가 비생산적인 원인이다.
2008년 한나라당의 현실도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4년의 열린우리당의 모습과 대조해보면 그 현실이 좀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당도 국회 초기에는 목소리를 높이게 마련이다. 2004년 초, 열린우리당은 아파트 원가 공개 문제로 청와대와 맞섰다.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김근태 당시 의원은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고 맞붙었다. 청와대는 25.7평 이하 아파트 원가를 일부 공개하는 선에서 여당의 요구를 무마했다.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폐지하려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소한 틀은 유지하려는 홍준표 원내대표가 맞선 지금 상황과 비슷하다. 지금도 청와대가 홍 원내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여당의 목소리를 일부 반영한 것이다.
정치컨설팅업체 ‘민’의 박성민 대표는 “당·청 불협화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치적 견지에서 보면 여당이 국민의 여론을 정책에 반영하려 한다는 점에서 건강한 것”이라며 “당·청이 호흡이 척척 맞는 것은 오히려 독재 상황에 가깝다”고 말했다.
비주류에서 출발해 ‘자수성가’한나라당이 그렇다고 계속 독자적인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일방주의 성향 때문이다.
노무현 초기와 이명박 초기의 정치 지형을 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북송금 특검(2003년 3월)을 받아들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진노했고, 동교동계는 분노했다. 2003년 11월에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형식으로 민주당을 깨고 나왔다. 민주당은 졸지에 ‘현직 여당 출신’ 야당이 됐다. 정권의 이른바 ‘주류’였던 호남은 배척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직후부터 ‘친박’ 쪽 의원들을 홀대했다. ‘주류’였던 대구·경북 출신들이 ‘친박’이라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공천 결과에 반발해 친박 쪽 의원들은 탈당했다. 외부에서 ‘친박연대’라는 여당 출신 야당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과반수를 달성했다. 17대 당시에는 ‘탄핵 역풍’의 힘이 컸다. 18대에는 ‘경제’와 ‘뉴타운’(아파트)의 힘 덕분이었다. 뉴타운 공약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17대 열린우리당의 수도권 의원들과 18대 한나라당의 수도권 의원들은 대통령 덕분에 배지를 달았다. 17대에는 ‘탄돌이’라는, 18대에는 ‘타운돌이’라는 말이 나왔다. 두 대통령이 이른바 ‘주류’들을 배척한 것은 자신들이 ‘비주류’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에서 출발해 대통령까지 사실상 ‘자수성가’했다. 대통령의 일방주의는 여기에서 비롯될 것이다.
일방주의를 막기 위한 불협화음은 건강하다. 문제는 ‘소통 부족’으로 생기는 불협화음이다. 여당에서도 지금의 어긋남을 청와대의 참모진 탓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친이계의 한 여당 의원은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이 (청와대와 여의도를 잇는) 서강대교를 넘기를 싫어한다”며 “청와대와 당을 잇는 교량이 되어야 하는데, 도통 여의도로 넘어오지 않으니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대통령 주변에 ‘예스맨’밖에 없다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여당의 다른 친이계 의원은 “대통령과 청와대에 ‘박근혜 전 대표를 끌어안는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잘 통하지 않는다”며 “지난 총선에서도 김무성 의원과 서청원 의원에게 공천만 줬어도 친박연대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훨씬 유리한 정치적 지형에서 정권을 이끌어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주변의 참모들이 예스맨이 되는 이유는 ‘아는 사람’만 골라 쓰는 탓도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 몇 차례 주변 인물로부터 배신을 당했는데 그 결과로 ‘배신 콤플렉스’를 가지게 된 것 같다”며 “이런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은 직접 겪은 사람들만 기용하는 강한 연고주의적 기질을 보인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이명박 대통령 주변의 배신자로 김유찬 전 비서관과 김경준 전 BBK 대표이사 등을 들었다. 최 소장은 “또한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실천으로 보여주는 ‘행동가적’ 리더십의 소유자”라며 “이런 지도자들 앞에서 참모들은 기세에 눌려 제대로 자신의 의견을 펴지 못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참모진들도 ‘예스맨’들로 구성된 것은 전혀 다르지 않았다”며 “노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윤석규(캠프 상황실장) 등이 정권 초기에 배제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여당 없이 정치를 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희상 의원과 유인태 전 의원 등 핵심 실세들을 청와대로 무시로 불러 당을 실질적으로 장악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겐 큰형인 이상득 의원이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재천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무시하면서도 한쪽으로는 두려워한다”며 “큰형인 이상득 의원을 통해 여의도 정치를 풀어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정치컨설팅업체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당의 실세들을 근본적으로 불신했을 뿐 아니라 경쟁 상대로 생각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경우 경쟁 상대는 박근혜 전 대표를 뜻한다.
그 결과로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 대통령 정치고문들의 입김이 너무 세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친이계 의원들 스스로도 “노무현 정부에 ‘아마추어 어린애 정권’이라고 비꼬았는데, 지금 우리 상황을 보니 ‘아마추어 노인네 정권’이란 생각이 든다”는 말을 할 정도다.
형님 권력·미래 권력과 불안한 공존
그 결과가 한나라당의 분열이다. 당과 조율하는 공식적인 권력(이명박 대통령)과 비공식적 권력(이상득 의원)이 이중적으로 존재한다. 거기에 미래 권력(박근혜 전 대표)이 함께하는 구조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부터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며 “내년 재보선과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당권 경쟁이 붙으면 미래 권력에 힘이 쏠리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조화로운 화음을 위한 새로운 조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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