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이라는 비장한 이름이 달린 위기 처방이 지난 11월3일 나왔다. 처방의 핵심은 경기 부양을 위한 부동산 부축이다. 이번 부동산 대책은 △재건축 핵심 규제 완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대폭 해제 △양도세 감면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새 정부 들어 한 달이 멀다 하고 나온 여섯 차례 부동산 대책의 완결판이다. 이번엔 주택 공급뿐만 아니라 수요 유인에도 초점을 맞췄다. 이로써 참여정부 때 설치한 ‘투기 방화벽’ 중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등만 다음 처분을 기다리고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뚫리게 됐다.
부동산 부양의 온기는 주로 서울 강남권과 고가 중·대형 아파트를 향하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의 소형·임대주택 의무건립 비율 완화와 용적률 상향 조정은 강남의 중·고층 재건축 아파트가 수혜 대상이지만, 이곳은 투기지역에서 해제되지 않았고 개발부담금 제도가 남아 있어 투자 수요를 유인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처방의 극약에 해당하는 투기지역 해제는 바로 금융규제 완화와 동의어다. 버블 강남 3구를 뺀 모든 지역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60%로 높아지고 6억원 초과 아파트에 적용되던 총부채상환비율(DTI·원리금 상환액이 연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 40% 상한도 폐지된다. 투기과열지구 해제로 전매제한 기간이 완화되고 기존 분양분에도 소급 적용된다. 대출 규제와 분양권 전매 제한을 풀어 중·대형 주택의 가수요를 부추기는 꼴이다.
이명박 정부가 늘상 “우린 미국과는 다르다”며 부동산발 금융위기를 부인해온 주요 논거 중 하나가 바로 LTV와 DTI 규제였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금융위기 앞에서 참여정부의 치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6년 말부터 대출 규제를 강화한 덕분에 올 6월 말 기준 LTV는 48.8%로 주요 선진국들의 70~80%에 비해 양호하다. 하지만 제2금융권 대출을 차치하더라도, ‘전세 끼고 집 산다’는 관행에서 보듯 우리만의 독특한 제도인 전세금을 대출금으로 간주하면 LTV가 꽉 찬다는 견해도 있다.
“돈 많이 버는 사람만 집 사라는 거냐”며 시행 초기 반발을 부르기도 했던 DTI는 가계 부실화를 막은 결정적 수문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택가격 등락과 연동하는 LTV의 규제 효과는 제한적이지만, DTI는 집값과는 무관하게 대출 상한을 일정하게 유지해주기 때문이다. 허석균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신용평점 방식이 정착된 금융 선진국과 달리 담보가치 위주의 대출심사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DTI는 금융 안정성 확보를 위한 필수적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부동산 연착륙이라는 명분 아래 이 안전판을 끝내 무장해제시켰다.
이어 주택 수요 회복의 방아쇠인 대출금리 인하를 위해 정부는 지난 11월7일 다시 정책금리를 4%로 내렸다. 하지만 은행들의 유동성 부족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인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는 5.9%대를 유지하고 있다. ‘정책금리 인하→CD 금리 하락→대출금리 인하→가계 부담 감소’라는 금융의 혈관이 경색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은 최근 들어 신규 대출은 줄이고 기존 대출은 회수하고 있다. 서울 은평뉴타운에 당첨됐지만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중도금 마련에 애를 먹고 있던 주부 류아무개씨는 이번 부동산 대책을 접한 뒤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기 위해 거래 은행에 문의했으나 ‘대출 불가’ 답변을 들었다. ㄱ은행 서울 마포지점 대출담당 직원은 “10월17일 본부에서 신규 대출을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현재 3주째 대출이 동결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대출이 언제 재개될지 지점에선 알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금리 상승으로 인한 주택 수요의 ‘자발적 축소’는 물론, 은행의 대출 기피로 인한 ‘비자발적 축소’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부동산 관련 주요 지표들을 살펴보면 심상치 않은 시그널을 읽을 수 있다. 올 6월 전국 아파트 가격은 2000년 1월과 비교해 평균 96.1% 올랐다. 서울은 166.2%나 뛰었다. 물가와 임금 상승률을 크게 웃돌고 있다. 주택가격이 얼마나 비싼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Price Income Ratio)은 4단계로 나눠 5.1 이상이면 매우 비싼 가격대로 분류되는데, 지난해 전국 평균은 6.6이었고 서울은 무려 9.8을 기록했다. LG경제연구원은 가계의 주택 구입 능력이 2006년 이후 하락세로 돌아선 뒤 최근 큰 폭으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금리 상승에 따라 주택 구입 능력지수가 하락하는데도 주택가격이 올라간 것은 구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승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가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원리금 상환부담률(DSR·Debt Service Ratio)은 25% 이상이면 부담이 다소 높은 편이며, 40% 이상일 경우엔 위험 수준으로 해석된다. 한국은행이 10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원리금 상환부담률이 2005년 15.3%에서 올해 6월에 20.7%까지 상승했다. 특히 소득 1500만원 이하 계층은 40% 수준에 이르고 있어 채무 불이행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율이 미국보다 높고 경기 침체기에 저소득층의 부채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 서민금융 안정화 정책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강부자’ 탈출 도우려 폭탄 돌리기?역사적으로 주식시장이 아닌 부동산 침체에서 시작된 금융 불안은 손쉽게 해소되기 어렵다고 한다. 주가 폭락은 투자 부문에 악영향을 주지만 부동산 가격 급락은 투자와 소비 모두를 크게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에 따르면,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금융위기를 경험한 7개국을 살펴봤을 때 부동산 침체가 평균 4년 정도 진행됐고 부동산 가격은 바닥을 형성할 때까지 평균 28% 하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아무리 화끈하게 옷을 벗어도 무대 위로 올라가는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라 안팎의 경제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빚 내서 거품을 사달라는 단기 대책이 먹히기 어렵다. 매수자는 없고 매물만 넘쳐나는 시장 공백기엔 결국 가격이 내려와야 거래가 이뤄질 것이다. ‘11·3 대책’이 거품 폭탄 돌리기로 ‘강부자’에게 마지막 탈출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라는 항간의 냉소가 사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도수치료 본인부담 3만원→9만5천원…정부안 들여다보니
‘첫눈 폭설’ 21㎝ 내린 서울…“버스가 스케이트 타, 제설 덜 돼”
검찰, 국힘 당사 압수수색…‘명태균 공천개입’ 관련
112년 살고 세상 떠난 ‘최고령 남성’이 주의하라고 경고한 3가지
서울양양고속도로 눈길서 5대 추돌…1명 사망, 6명 부상
“65살 정년연장은 단계적 적용…재고용 도입하면 ‘의무화’ 필요”
[단독] 실손보험 믿고 ‘툭하면 도수치료’…과잉진료 손본다
‘첫눈’ 서울 적설량 20.6㎝…“한두 시간 이내 다시 눈”
‘3차 코인 열풍’ 올라탄 청년들…“이번엔 안정적, 확실히 믿는다”
22대 국회 첫 구속영장…‘새만금 태양광 비리’ 의혹 일파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