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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로 가는 지속 가능한 사회] 완벽해라, 독일식 환승 시스템

철도망과 노면전차, 버스, 자전거 등의 연계망 잘 갖춰… 유럽연합 교통 구심점 의지 읽혀
등록 2008-09-11 15:37 수정 2020-05-03 04:25


철도로 동·서유럽 통합의 견인차 구실을 하는 독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베를린역의 전경. 통독 이후 다시 지어졌다.

철도로 동·서유럽 통합의 견인차 구실을 하는 독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베를린역의 전경. 통독 이후 다시 지어졌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자 통일 독일을 상징하는 도시다. 동서로 나뉘어 있던 베를린과 독일은 물론 유럽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야심이 강렬하게 뻗어나가는 거점이 이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바로 베를린역이다. 동·서독 통일 뒤 새롭게 태어난 베를린역은 독일은 물론 유럽 전체에서 으뜸가는 구조와 규모, 멋을 자랑하고 있다. 역 건물 디자인과 설계에서부터 유럽연합의 교통 구심점으로 발돋움하려는 의지가 읽힐 정도다.

지역·거리·속도 바탕으로 다채로운 등급화

여느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철도는 국가의 기간교통망이다. 그중에서도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뮌헨을 잇는 철로가 가장 중요한 노선이다. 이 세 도시는 독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통과 물류의 거점지역이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북부 지역, 프랑크푸르트는 중서부 지역, 뮌헨은 남부 지역을 아우르는 중심도시다. 과거부터 독일 철도망의 거점이었고 지금은 독일을 넘어 인접 유럽 국가를 잇는 중심축선인 이 철로를 따라가봤다.

베를린역에서 1시간에 2대꼴로 출발하는 독일의 고속철도 이체에(ICE)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내달렸다. 독일은 어디나 할 것 없이 도심을 벗어나면 평지나 구릉성 산지로 구성된 전원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독일로 들어가는 항공교통의 거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행기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 뒤 프랑크푸르트역에서 철도로 환승해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에서 독일로 들어갈 때도 주로 이런 방식을 이용한다.

베를린역도 그렇지만 프랑크푸르트역에서도 독일 철도의 실체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독일 내부와 인근 유럽을 아우르는 열차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프랑크푸르트역에서 보면 철도가 독일에서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기차를 이용해 인근 교외나 도심 주변을 이틀만 다녀보면 효율적인 독일의 철도 시스템이 쉽게 이해가 된다. 특히 일목요연하게 배치한 열차 운행체계는 이용자의 편리함을 배가시킨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운행하는 지역과 거리를 바탕으로 속도와 객차 시설을 등급화해 배치한 철도 시스템이 인상적이다. 고속특급열차인 ICE를 비롯해 독일 국내 및 유럽을 연결하는 특급열차인 이체(IC·특급)와 에체(EC·유럽연결특급)가 있고, 지방과 중소도시를 연결하는 데추크(D-Zug·급행)와 에추크(E-Zug·보통열차) 등이 있다. 여기에다 일정한 지역 안을 빠른 속도로 연결하는 이에르(IR·지역특급)와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를 보장하는 교외선인 에르에(RE·지역급행), 도시 외곽이나 근교를 연결하는 에스반(S-Bahn·도시권급행전철), 우반(U-bahn·지하철) 등이 있다.

고속철도부터 지역의 보통열차에 이르기까지 등급화된 철도체계는 독일 사람에게는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많은 편리함을 준다. 한마디로 이방인이 어떤 나라를 방문해 철도를 이용할 때 가장 쉽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가 독일이다.

이런 시스템은 철도 노선의 공간적 구성에서도 정확히 구현돼 있다. 승객의 입장에서 보면, 대도시의 대형역에서부터 중소도시나 시골의 간이역에 이르기까지 어떤 열차를 어떻게 이용해서 갈 수 있는지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마디로 열차의 배치와 등급이 명확해 이용자가 헷갈리지 않고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베를린역에서 기차에 자전거를 실으려고 기다리는 승객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베를린역에서 기차에 자전거를 실으려고 기다리는 승객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또 다른 독일 철도의 특징은 환승이 쉽다는 점이다. 고속철도와 나머지 특급, 급행, 보통 등의 열차를 환승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을뿐더러, 이런 철도망과 지역의 또 다른 대중교통 체계인 노면전차, 버스, 자전거 등과의 연계망도 잘 갖춰져 있다. 이런 점은 독일을 다양한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쉽게 실감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배낭여행자들도 독일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완벽한 환승 시스템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북한만 지나면 베를린~서울 철길 뚫려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까지 이동하는 ICE의 객실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이용의 편리함과 더불어 객차의 시설과 서비스가 남다르다는 점이다. 독일의 ICE는 프랑스의 테제베(TGV)나 일본의 신칸센, 한국의 KTX보다 속도 면에서는 조금 떨어지지만, 승차감과 이용자 우선의 실내구조 등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서비스 체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뮌헨역에 내려서 주변 지역을 살펴보기 위해 도시 근교 철도를 이용하면서 다시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철도와 자전거의 사랑이다. 이런 모습은 유럽의 철도 선진국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지만 독일에서는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장거리가 아닌 중단거리 열차들은 예외 없이 객차 안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으며, 객차의 옆면에 자전거 표시가 돼 있다. 이는 독일의 교통체계가 철도와 자전거를 주축으로 짜여 있음을 보여준다. 자전거를 타고 기차역까지 가서 자전거를 기차에 싣고 철도를 이용한 다음 다시 내려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이렇게 훌륭한 시스템을 갖춘 독일의 철도는 유럽연합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냉전 이후 실질적인 동·서 통합의 교통로 역할을 독일 철도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뮌헨역과 베를린역은 특히나 동부유럽의 관문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서유럽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대륙에서 온 방문객들도 베를린역과 뮌헨역을 많이 이용한다. 이는 체코 프라하로 배낭여행을 가는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냉전으로 닫혀 있던 독일의 철도는 통일과 통합의 시대에 ‘평화의 폭주기관차’로 내달리고 있다. 이는 독일인의 생활 속에 철도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깊이 뿌리 내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 우리나라 동해선 철도가 북한을 지나 두만강 건너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시베리아를 내달린다면, 이 열차는 모스크바와 폴란드를 거쳐 베를린역까지 들어갈 것이다.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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