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독도 도발 전 교육기본법 개정이 있었다

등록 2008-07-29 00:00 수정 2020-05-03 04:25

2006년 아베 총리가 갈아엎은 법이 파동의 전초전, 그에 따른 교과서 내용 정비는 당연한 수순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한국 정부 뒤통수 치기용 ‘긴급 카드’였을까? 일본 정부가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포함시킨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하지만 일본 시민사회와 역사·교육계의 평가는 이와 사뭇 다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아베 신조-후쿠다 야스오 총리 내각을 관통하며 이어진 일련의 흐름을 보면, 이번 ‘도발’은 되레 예정된 수순으로 봐야 한다는 게다.

전쟁을 부정하는 ‘평화헌법’을 개정해서라도 “합법적 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고이즈미 총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국가가 관리·통제하는 애국교육을 주창했던 우파 세력은 평화헌법과 함께 일본 시민사회의 자랑인 교육기본법의 개정을 호시탐탐 노려왔다. 2006년 12월 아베 총리 정부가 그 짧은 임기 중에 갈아엎은 교육기본법 개정은 이번 독도 파동의 전초전이었던 셈이다.

예견 못했다면 무지와 안일 탓

일본 전국 사립학교 교직원노동조합 에이지마 다미오 위원장은 “개정된 교육기본법에 박음질된 ‘나라와 향토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른다’는 이른바 ‘애국심 조항’에서 ‘향토’란 말은 영토 문제를 의식한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근거로 학교 교육의 기본 방침이 ‘애국교육’으로 변질됐다. 그리고 10년에 한 번 개정하는 학습지도요령을 지난 3월 개정한 뒤 이번 파동을 부른 해설서 개정작업이 착착 진행돼왔다.

해설서에 독도 문제를 넣은 것은 애국심 조항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얘기다. 어쩌면 교육기본법 개정이라는 넘어서는 안 될 산을 이미 넘어버린 상황에서, 그에 따른 교과서 내용 정비는 당연히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걸 예상하지 못했다면, 정부의 무지와 안일함을 탓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역사·지리·공민(정치경제)으로 구분되는 일본 사회과 교과서 중 검정교과서로 버젓이 시판되고 있는 에는 이미 “우리 고유의 영토이나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센카쿠 제도 및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다케시마”라고 표기돼 있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쓰쿠루카이)의 스즈키 나오유키 사무국장은 “이미 검정 통과된 교과서로 가르치고 있는 마당에 해설서 내용이 바뀐다고 놀랄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후지오카 노부카쓰 새역모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후쿠다 총리가 한국에 대한 외교적 ‘배려’ 차원에서 일본의 영토로 못박아야 할 다케시마를 양국의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이야말로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채택률 1%에도 못 미치는 새역모 교과서야 극우파의 발악으로 치부하더라도, 전체 8종 가운데 전국 50%의 채택률을 자랑하는 도쿄서적의 공민교과서 역시 이미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는 현장 교사들에게 개별적으로 뿌려지는 지침서가 아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해설서대로 가르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교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해설서가 교과서 편찬 검정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교과서에 실린다는 것은 시험 출제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따라서 학생들의 암기 항목이 된다. 역사적 경위나 배경 설명 없이 그저 영유권 자체를 고시하는 지리 분야와 현실 국제사회 문제로서 표현되는 공민 분야 교과서에 명기됨으로써, 일본의 아이들에게 독도가 자국 영토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허점투성이 팸플릿이 일본의 현실

이미 교육기본법을 개악하고 평화헌법을 위협하고 있는 게 일본 자민당 정권이다. 밖으로는 ‘한-일 신시대’를 표방하면서도, 안으로는 외무성을 통해 ‘다케시마 이해를 위한 10가지 포인트’라는 허점투성이 팸플릿을 배포하는 현실, 그것이 여전히 ‘다케시마’의 존재조차 모르고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를 모르는 교사와 아이들에게 독도를 이해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다. 앞으로 전체 교과서에 “북방 영토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영토로 ‘암기’될 독도의 미래 앞에 일본 역사교육자협의회 이시야마 히사오 위원장의 충고가 뜨끔하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애국심 교육은 해설서로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실제로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 교과서 내용이 어떻게 바뀌는지 감시해야 한다. 그 하나하나를 철저히 비판해, 일본인도 납득할 수 있는 논리적 주장이 한국 사회에서 나와야 한다. 한-일 두 나라 교사와 시민들이 하나가 돼 새역모의 왜곡된 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으로 맞섰듯이,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뺏고 독도를 일본 땅으로 편입시켰다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려나가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 그래야 독도에 관한 한국인들의 분노가 제대로 전해질 수 있다.”

[한겨레21 관련기사]

▶“외교적 배려 때문에 사실을 왜곡했다”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 부실도 문제”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