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교체 시점이지만 청와대의 강한 ‘물갈이’ 의지로 군인사 단행, 핵심 작전 라인에 강성 기조 뚜렷
▣ 손원제 기자 한겨레 정치부 wonje@hani.co.kr
“오늘은 불을 꺼도 (되겠다), 별이 많아서….”
이명박 대통령이 3월21일 오전 청와대에서 군 대장 진급자들로부터 보직 신고를 받으며 던진 농담이다. 이날 청와대에 뜬 별은 모두 24개. 3월17일 새 정부 첫 군 지휘부 인사에서 군인 최고 계급인 대장을 단 진급자 6명이 참석했다. 같은 날 합참의장으로 내정 발표된 김태영 대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아 이날 청와대 보직 신고엔 나오지 않았다.
작전통제권 환수 실무를 주도한 이는 탈락
4월3일엔 더 많은 별들이 청와대를 밝혔다. 전날 발표된 중장 진급 및 보직 신고 자리였다. 신고 당사자인 중장 19명과 육·해·공군 총장, 합참의장 등 대장 4명을 더해 현역 장성의 어깨에 달린 별만 73개였다. 예비역 대장인 이상희 국방부 장관과 김인종 청와대 경호처장까지 치면 무려 81개다.
두 차례의 군 보직 신고는 정권 교체와 함께 이뤄진 별자리의 대변동을 한눈에 들여다보게 한다. 이명박 정부의 첫 군 인사로 대장 9명 가운데 공군참모총장을 제외한 8명이 갈렸다.
3월 초까지만 해도 군 내부에선 육군총장 등 대장급 2~3명 정도가 바뀌는 소폭 인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군 인사법에 규정된 합참의장 임기 2년을 다 못 채우고 물러났던 이상희 장관이 가능한 한 군 수뇌부의 임기를 보장하는 쪽으로 인사폭을 최소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조기에 군의 참여정부 색채를 빼겠다는 청와대의 강한 ‘물갈이’ 의지가 전달되면서 순식간에 뒤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물갈이 원칙에 따라 전임 정부와 보조를 맞췄던 지휘관들은 대거 뒤로 물러났다. 대표적인 인물이 육군참모차장으로서 ‘국방개혁 2020’에 따른 육군 감축안을 기획하고 총장이 돼 실행까지 맡았던 박흥렬(육사 28기) 총장이다. 참여정부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실무를 맡았던 해군 인맥이 모두 잘려나간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이번에 탈락한 송영무 해군총장과 안기석 해군 작전사령관은 2005~2006년 나란히 합참 전략기획본부장과 전략기획부장을 지내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실무를 주도한 바 있다. 한 군 장성은 “이들은 특히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두고 청와대와 갈등을 빚다 합참의장에서 물러난 이상희 장관과 달리 해군 출신인 윤광웅 전 국방장관과 호흡을 맞추면서 전작권 협상을 마무리했다”며 “이 때문에 새 정부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말했다.
총선 앞두고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 흔적
반면, 참여정부에서 홀대받던 인사가 이례적으로 중용되기도 했다. 임홍빈 육사교장(중장)은 대장 진급과 동시에 육군참모총장으로 직행하는 ‘행운’을 거머쥔 경우다. 임 총장은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국방비서관을 지내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참여정부에선 동기생 중 제일 늦게 중장을 단데다 육사교장으로 나가면서 사실상 대장 진급 후보군에서도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가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 대통령 부부와 고려대 박물관 문화예술 최고위과정 1기 동기생이라는 인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장급이지만 군내 영향력이 막강한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김종태(3사 6기) 장군도 참여정부에선 교육사령부 부사령관 등 소장만 6년째 달고 있다가 요직에 등용됐다. 3사 출신이 기무사령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사령관 역시 류우익 청와대 대통령실장과 절친한 고교(상주고) 동문이라는 인연이 부각된 바 있다. 실제 김 사령관은 특유의 인화력으로 군 바깥에도 광범한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소장 시절 육사 출신들의 견제를 받아 사단장 근무 당시 보직해임을 당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에 따라 3사 출신인 그가 사관학교 출신 장·차관과 합참의장, 참모총장들 사이에서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지에도 군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상희 장관이 대장 인사를 발표하며 “이번 인사에선 출신 지역이나 근무지에 대한 고려를 배제했다”고 말한 것과 달리, 지역별 안배도 주요한 고려 사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로 보임된 대장 7명을 출신지로 보면, 영·호남과 충청이 각가 2명씩이고, 서울이 1명이다. 총선을 앞두고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 흔적이 짙다. 군 일부에선 특히 전역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전북 출신의 조재토 2작전사령관과 한직으로 꼽히는 건군60주년기념사업단장에서 대장이 된 경남 출신의 이상의 3군사령관을 지역 안배의 수혜자로 지목하기도 한다.
기수나 지역 안배는 군 수뇌부 인사에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군 인사의 특성은 그런 점들보다는 군 지휘부 구성에서 강성 기조가 뚜렷해졌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군사 전문가는 “이번 인사로 군의 핵심 작전 라인이 이상희 장관-김태영 의장-장광일 합참 작전본부장 구도로 짜였다”며 “이들은 이 장관이 합참의장 때 작전본부장과 작전부장을 하며 평택기지 이전 지원을 위해 무장병력을 투입하는 작전을 세워 보고하는 등 강경 대응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민군관계에서도 정무적 판단보다는 군사적 시각이 강조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것이다.
최고지휘부가 너나없이 ‘군사적 대응’ 주장
특히 수방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을 지낸 김태영 신임 합참의장은 군대 안에서도 강경파로 손꼽힌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사석에서는 “우리 군이 살 길은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해외 파병 뿐이다”라는 강경론을 폈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전했다. 실제 그는 준장 시절 국방부 정책기획차장으로 근무하면서, 동티모르 등 해외파병 업무를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핵기지에 대한 선제 공격론’을 언급해 북한을 자극한 배경에는 평소 보여온 이같은 강경론이 자리잡고 있었던 셈이다.
김 합참의장의 발언 파문에서 보듯, 대북관계에서도 강경 대응 일변도로 나가다가 남북 사이에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군 장성은 “지난 정부에서 ‘남북관계 우선’ 논리가 군의 안보 논리를 뭉갰다는 시각이 팽배한 것 같다”며 “군은 든든한 안보태세를 갖춰야 하지만, 남북관계에선 군 당국이 갈등과 충돌의 전면에 나서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은데, 지금은 군 최고 지휘부부터 너나없이 군사적 대응 주장을 여과 없이 제기하는 구도라 더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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