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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이 이건희 앓던 이를 빼준다?

등록 2008-04-04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막판으로 치닫는 수사…“차명 보유 삼성생명 주식이 이 회장에게 실명 전환되면 승계구도 완벽하게 합법화될 수도”</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조준웅 삼성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수사를 통해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12명이 보유 중인 삼성생명 주식 16.2%가 차명주식이라는 점 △1996년 t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과 199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에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이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점 △차명(주식)계좌로 관리해온 자금 중 일부가 미술품 구입 등에 사용된 점 △삼성증권에 개설돼 있는 1300여 개의 삼성전자 차명주식 계좌 등이 확인됐다.

16%와 18%, 그리고 16.2%

이목은 이제 ‘e삼성 사건’과 관련해 이미 한 차례 출두했던 이재용 전무에 대한 재소환, 그리고 이건희 회장에 대한 직접 조사가 언제 이뤄지느냐에 쏠려 있다. 하지만 진짜 관심사는 이 회장 부자와 전·현직 임원들에게 부과될 증여세·양도소득세 등 세금 규모와 증여세 회피 등에 따른 형법상 조세포탈죄 적용 여부, 횡령·배임죄 등을 적용한 형사처벌과 기소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장 부자 소환은, 특검이 이들 쟁점에 대한 판단을 내린 뒤 형식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수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삼성 쪽도 ‘현실적인’ 대응에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즉, 임원 명의의 차명계좌 수백 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공식 인정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학수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당시 유석렬 구조본 재무팀장(현 삼성카드 사장)이 ‘개인적으로’ 전환사채 발행 기획안을 만들었고, 자신이 이를 승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이 이 회장의 지시나 구조본의 조직적 개입 없이 진행됐다는 주장인데, 유 사장을 앞세워 김인주 사장을 보호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학수·유석렬 두 사람이 총책임을 지고, 김인주 사장은 불길을 피하도록 함으로써 김 사장이 앞으로 이재용씨의 경영권 승계 과정을 끝까지 마무리하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특검 수사가 삼성그룹의 향방에 미칠 영향을 미리 예측해볼 때, 최대 관건은 삼성생명 주식을 비롯한 전·현직 임원 명의 계좌의 진짜 주인이 과연 누구냐다. 과세와 형사처벌 여부를 둘러싸고 법적인 여러 난점들이 얽히고설켜 있는데, 이를 풀려면 차명 주식의 원래 소유자와 임원들의 차명계좌 취득 자금 출처를 밝혀내야 한다. 이를 의식한 듯 삼성 쪽은 “이건희 회장이 돈의 주인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라거나 “차명 관리는 이학수 부회장의 지휘 아래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 결과 차명주식 취득 자금이 계열사의 회삿돈이 아니라 ‘이 회장 개인돈’으로 결론내려지면, 이 회장은 횡령·배임죄 적용 등 직접적인 형사처벌을 비켜갈 수 있게 된다. 즉, 삼성으로서는 이런 해명이 가장 안전한 길인 셈이다.

특검의 수사 대상 중에서 차명계좌의 주인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지점은 ‘삼성생명 주식’이다. 이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1998년 12월3일, 이건희 회장은 삼성 전·현직 임원 35명으로부터 삼성생명 주식 299만5200주(16%)를 취득했다. 같은 날 이재용씨가 최대 주주로 있는 삼성에버랜드도 삼성 전·현직 임원들로부터 삼성생명 주식 344만 주(18%)를 전격 매입했다. 거래가격은 1주당 9천원이었다. 아직까지 전·현직 임원 12명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삼성생명 차명 주식은 16.2%이다. 결국 문제의 삼성생명 주식은 △현재 12명이 차명 보유 중인 16.2% △1998년 12월 이 회장이 넘겨받은 16% △1998년 12월 삼성에버랜드가 넘겨받은 18%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이들 주식이 이건희 회장이 선대 회장한테서 물려받은 재산이라면 16%는 이 회장이 1998년 당시에 자기 이름으로 실명 전환한 셈이 된다. 이 회장은 왜 삼성생명 주식을 당시에 전부 실명 전환하지 않고 16.2%를 지금까지 임원 12명의 명의로 남겨둔 것일까?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강진구, 홍종만, 이수빈 등 12명은 핵심 측근들이라서 충성심 관리 차원에서 그들 이름으로 계속 묶어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희진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의 해석은 이렇다. “첫째, 행정법원 판례에 따르면 명의신탁의 경우 실명 전환하면 증여세와 양도소득세 부담이 만만찮다. 당시에 굳이 16.2% 지분까지 세금을 물면서 실명 전환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당시 몇 개월 지나 삼성자동차 부채 처리 과정에서 이 회장이 생명 주식 350만 주를 냈는데, 실명 전환하면 차명 은닉해온 사실이 드러날 수 있어서 내버려뒀을 가능성이 있다.”

이제 16%와 18%, 그리고 16.2%의 주식과 관련된 문제를 하나씩 따져보자.

차명 시기 언제쯤일까

우선, 삼성생명 주식 차명이 언제 이뤄졌는지 명확하게 확인할 자료가 없다. 차명 시기는 법적 책임을 묻는 시효를 계산할 때 중요한 문제다. 주주명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는 삼성생명은 1994년, 삼성화재는 88년인데, 차명은 그 이전에 이뤄졌음이 틀림없다. 김상조 교수는 “삼성생명이 유상증자할 때 기존 주주가 실권을 하고 임원들 명의로 제3자 배정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차명 보유 임원들의 나이를 고려하면 70년대의 유상증자 시기는 아닐 것이고, 80년대에 차명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약 20년 전에 차명이 이뤄졌을 공산이 큰 것이다.

20년 전에 차명화됐더라도 98년 12월에 거래된 34%(16%+18%)와 현재 남아 있는 16.2%는 증여세 부과 문제가 뒤따르게 된다. 국세기본법을 보면, 허위 신고 또는 조세포탈 의도로 상속·증여세를 포탈하면 공소시효가 15년에 그친다. 하지만 아버지가 제3자에 차명으로 넘긴 뒤 상속인에게 다시 넘길 경우와 금액이 50억원이 넘을 때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안에’ 과세할 수 있다. 20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도, 또 이병철 선대 회장의 돈이라고 하더라도 차명으로 보관됐다가 이건희 회장한테 넘어갔다면 특검 수사가 확정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과세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복잡한 문제가 다시 끼어든다.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안에 과세할 수 있다는 조항이 1999년에 신설됐기 때문이다. 즉, 소급 적용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변수가 개입된다. 34% 주식 중에서 이 회장한테 넘어간 16%와 삼성에버랜드로 넘어간 18%에는 차이가 있다. 특검이 34%의 실제 소유자를 이 회장이라고 결론 내릴 경우, 16%는 이 회장이 자기 이름으로 실명 전환한 셈이 된다. 당시 세법은 ‘차명 주식을 실명 전환할 때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돼 있었다. 16%에는 증여세 부과가 불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삼성에버랜드로 간 18%는 차명된 것이 다시 한 번 차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증여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고, 아직 10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여서 조세포탈이란 형사적 문제도 남아 있다.

다음으로, 현재 차명으로 남아 있는 16.2%의 원소유자가 이 회장이라고 할 때 나중에 이 회장이 이를 자기 앞으로 실명 전환하면 어찌될까? 상속증여세법을 보면, 주식을 명의신탁할 때는 신탁받은 명의자가 증여세를 내야 한다. 국세청 예규는 명의신탁된 재산을 원래 주인한테 다시 실명 전환할 때도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돼 있다. 즉, 16.2%를 이 회장의 이름으로 바꿀 때 조 단위의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김상조 교수는 “이와 유사한 과거 사건의 경우, 국세청의 세금 부과를 나중에 행정법원에서 취소한 판례가 있다. 국세청이 증여세를 부과하면 삼성은 즉각 행정법원에 불복 신청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16.2%가 이 회장 개인 소유라고 결론날 경우 이것이 이재용씨의 경영권 승계구도에 미칠 영향이다. 현재 삼성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 논란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해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인데,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삼성에버랜드의 총자산이 삼성생명 시가총액의 50%를 초과하게 돼 삼성에버랜드는 자동으로 ‘금융지주회사’가 된다. 그러면 그 밑에 삼성생명 같은 금융자회사만 둬야 하고, 삼성에버랜드가 출자한 삼성전자 지분은 처분해야 한다. ‘이재용 →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승계구도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16.2%가 이 회장 앞으로 실명 전환되면 이제 삼성에버랜드가 아니라, 이 회장이 생명생명 최대주주가 된다. 즉, 삼성에버랜드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가액과 상관없이 삼성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김상조 교수는 “이 경우 과세상의 몇 가지 문제와 조세포탈 등 약간의 책임만 해결되면 오히려 삼성으로서는 출자·승계 구도를 완벽하게 합법화하고 법적으로 인정받게 된다”며 “결국 특검이 이재용씨의 승계구도를 완성해주는, 삼성에 가장 큰 선물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금 폭탄이냐 찻잔 속 태풍이냐

물론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이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또 다른 변수지만, 전환사채 발행이 법원에서 불법으로 확정판결 나더라도 전환사채 반환이 이뤄지지 않는 한 그룹 지배권에는 변동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김상조 교수는 “실명 전환하면 이 회장이 삼성에버랜드 대신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되어 순환출자 고리에 변화가 생기겠지만, 이 회장의 재산은 결국 이재용씨의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명 주식이 상장되면 이 회장이 일부 지분을 팔아 삼성전자 지분을 안정적으로 추가 확보하려 할 것이고, 그러면 이 회장의 생명 주식 지분이 줄어들어 삼성에버랜드가 다시 생명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삼성생명의 최대주주 지위에 올라서도 이재용씨를 정점으로 한 그룹 지배구도는 변화가 없을 것이란 얘기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는 모든 차명 주식의 원소유자가 이병철·이건희 회장이란 것을 전제로 한다. 20여 년 전에 차명이 이뤄졌기 때문에 서류는 폐기됐을 것이고, 특검도 원소유자를 명쾌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이건희 개인돈’이라는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앞으로 법적 처리는 형사처벌보다는 ‘과세’ 문제로 집중될 공산이 크다. 김상조 교수는 “국세청이 삼성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수조원대의 세금폭탄을 떨어뜨릴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에 그치는 몇백억원에 그치게 될지 알 수 없다. 증여세는 증여 당시의 주식 시가에 따라 산정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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