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국내 최초 집단조사 결과 밝혀져…안양 초등학생 피살 사건으로 돌아본 잔혹범죄의 심리</font>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최근의 안양 초등학생 납치·피살 사건 같은 충격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는 개념이 이른바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다. 이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하면서 자신의 이익과 쾌락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짙은 피해망상 속에 거짓말이나 변명을 늘어놓고, 자신이 저지르는 범죄가 얼마나 반사회적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도 전형적인 증상으로 꼽힌다.
최근 국내에서 실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첫 대규모 조사에서 이런 사이코패스가 조사 대상자의 15%가량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국내 공식 1호는 연쇄살인범 유영철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팀과 조은경 한림대 교수(범죄심리학)팀이 안양·진주·천안·대구 등 전국 10여 개 중구금시설의 재소자 400여 명을 대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 검사’(PCL-R)를 한 결과, 무려 60명가량(15%)이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에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반사회적 인격장애 검사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며, 이번 조사 결과는 4월께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조사 대상자는 강도·성폭행·살인 등 중범죄를 저지른 재소자들이었으며, 400여 명 모두를 연구원들이 직접 면담해 조사를 벌였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검사는 20개 질문 문항으로 진행되며 문항마다 0∼2점씩 부여돼 모두 40점을 만점으로 친다. 30점이 넘으면 사이코패스로 인정받으며, 일반인은 보통 15점 안팎의 점수가 나온다.
앞서 개별적으로 실시된 검사에서 공식적으로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은 건 연쇄살인범 유영철씨가 처음이었다. 2004년 20명에 이르는 노인과 여성을 살해한 뒤 검거된 유씨는 3명의 전문가가 직접 참여해 실시한 검사에서 32∼34점을 받았다. 그는 ‘범죄를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매사에 냉담하고 남의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나쁜 행동을 자제할 능력이 부족하다’ 등의 문항에서 모두 2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아기호증만으로 살인·주검 훼손까지?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사이코패스 비율은 미국의 20∼25%에 비해서는 적은 것이지만, 이수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처럼 각종 마약이나 총기류가 일반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15%가 나왔다는 건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위험군은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외국에선 열심히 대책을 마련하는 데 반해 우리는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라며 “연쇄살인범의 출현을 예견해야 할 때가 됐다”고 경고했다.
사이코패스와는 유형을 달리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극악한 범죄를 일삼는 경우도 있다. 온보현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나이에 해당하는 38명을 살해한 뒤 자살하겠다고 밝힌 점이나 지방 경찰서는 시시하다며 자신이 숭배하던 지존파가 검거된 서울 서초경찰서에 제 발로 찾아와 자수한 점 등이 그렇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온씨는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자살 동기를 가진 우울 성향의 범죄자”라며 “지존파에게서 영감과 자극을 받아 범행의 내적 의지를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안양 초등생 살해 사건처럼 초등학생 이하 어린 여학생을 납치하고 살해한 데 이어 사체 훼손과 유기에 이른 범행도 과거에 드물지 않았다. 이런 경우 대개는 여자 어린이에게 성적인 호기심과 만족을 느끼는 ‘소아기호증’을 의심받기도 한다. 지난 2000년 10월28일 인천 계양구에서 자신이 예전에 일하던 회사의 사장 딸 김아무개(당시 9살)양을 납치한 뒤 성폭행하고 이튿날 자신의 고향인 충북 옥천군의 한 마을 야산에 버린 곽아무개(당시 31살)씨 사건의 경우도 소아기호증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드시 성폭행까지는 이르지 않더라도 어린아이의 나체를 바라보거나 만지면서 성적인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아기호증 자체가 살인이나 주검 훼손 같은 극악한 범죄로 이어진다고 보지는 않는다. 순수한 소아기호증 환자는 어린 여자아이 자체에 탐닉할 뿐이고, 살인 이상의 단계로 나아가는 경우는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가미될 때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 여자 어린이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해서 반드시 소아기호증을 가졌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수정 교수는 “소아기호증을 갖고 있는 이는 아이들에 대한 심리적 애착을 느끼기 때문에 범행 뒤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안양 초등학생 사건의 피의자 정아무개(39)씨가 두 어린이에게 한 잔인한 짓을 봤을 때 단순한 소아기호증 환자로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밖에 범죄심리학 분야에서는 ‘내 마음에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또 있다’고 주장하는 이중 혹은 다중인격자의 존재도 거론된다. 따라서 이 경우 서로 다른 자아 상태에서 벌인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은경 교수는 “거의 소설 같은 얘기”라고 말한다. 명확한 사례가 발견된 적은 없다는 것이다.
피의자 정씨 범행 후회해 진단 엇갈려
그렇다면 안양 초등학생 살해 사건의 피의자 정씨는 사이코패스일까?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엇갈린다.
이수정 교수가 정씨의 진술과 이제까지 드러난 증거, 정씨 심문에 참여한 수사관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 검사를 해보니, 정씨는 32점을 기록했다. 이 교수는 “서구에서 도입된 반사회적 인격장애 검사 문항 가운데 ‘많고 짧은 연애를 한다’ 등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을 감안하면, 이 정도로도 정씨를 충분히 사이코패스로 보는 게 맞다”고 진단했다. 상황을 자신이 주도하려 하고 경찰을 곤궁에 빠뜨리려 하고 감정적으로 냉담한 측면 등이 그 근거다.
그러나 표창원 교수는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말했다. 추가 범행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한, 이번 사건의 두 피해 어린이에게 사죄하거나 이번 사건을 두고 후회한다고 밝히는 점, 특별한 과시욕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볼 때 사이코패스로 진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어쨌건 이런 흉악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난 특징이 있다. 대부분 어릴 적 가난과 부모 등의 학대, 비정상적 가정환경 등을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점이다. 장석현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순천향대 교수)은 “대부분 연쇄살인범들은 사회구조적 모순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는 한편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보낼 때 가정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또 처음 흉악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의 경우 반사회적 인격장애 검사를 거치게 함으로써 문제가 발견되면 미리 대처하는 게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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