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에 가한 장기간 탄압정책… 교전지역 설정하고 주민 강제 이주 등 인권유린 자행해
▣ 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유해정
지난해 여름 랑군(양곤)의 거리를 뜨겁게 달군 민주화 시위를 지구촌은 ‘사프란 혁명’이라 불렀다. 1988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거리시위가 들불처럼 버마(미얀마) 도처로 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열광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오랜 세월 억눌려온 성난 외침은 노도가 돼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내지는 못했다. 투쟁의 함성은 이내 잦아들었고, 버마는 다시 철저히 잊혀졌다. 타이-버마 국경지역에 몰려 있는 버마 난민들의 고단한 삶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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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금 탄압정책, 식량·자금·병력·정보
버마 군사정권(국가평화개발위원회·SPDC)이 5200만 인구 가운데 35% 가량을 차지하는 소수민족을 장기간 탄압해온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군사독재에 무력으로 맞서고 있는 카렌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반군세력을 뿌리뽑겠다는 게 명분이다. 인도지원단체 ‘크리스천에이드’는 지난 2004년 5월 펴낸 ‘버마의 더러운 전쟁’이란 보고서에서 군부의 이런 소수민족 탄압정책을 ‘4금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소수민족 주민들이 반군에게 식량·자금·병력·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이들을 갈라놓는 게 탄압정책의 뼈대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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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체가 전한 ‘4금 정책’의 내용은 이렇다. 버마 정부군(타트마다우)은 우선 각 지역을 △흑색(반군 장악지역) △갈색(교전지역) △백색(정부군 장악지역)으로 구분한다. 흑색 또는 갈색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정부군이 장악한 백색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게 원칙이다. 주민들의 집단 이주는 사전에 알리지도 않은 채 병력을 동원해 강제로 진행한다. 강제 이주를 마치면 주민들의 집과 농작물을 철저히 파괴하고, 마을과 그 주변엔 지뢰를 매설한다. 잠시 몸을 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주민들은 반군 지지자로 몰려 총알 세례를 받는 게 보통이다.
1989년 이래 버마 정부군은 모두 28개 반군세력과 정전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총성이 멈춘 지역에서도 강제 이주를 포함한 각종 인권유린은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다. 반군세력의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 정전지역에 대규모 군사시설을 신설하거나, 지역 개발 등을 명분으로 주민들의 땅을 몰수하고 강제 노역에 동원하고 있다. 버마군이 진을 치는 지역마다 대규모 난민 사태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정부군의 공세가 격해지기 시작한 1996년 이후엔 버마 동부 국경지대에서만 3천여 마을이 파괴됐고, 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300만 명을 넘어섰다는 게 국제 인도지원 단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국외로 빠져나가지 않은 채 내부난민(IDPs)으로 떠돈다.
실제로 ‘타이-버마 국경 컨소시엄’(TBBC)이란 단체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버마 동부의 내부난민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타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버마 동부 지역에는 버마군 보병 및 경보병 273개 대대가 주둔하고 있다. 이 단체는 보고서에서 “이 일대에서만 지난해 167개 마을이 파괴됐고, 줄잡아 7만6천여 명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으로 떠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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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구체적인 통계자료도 있다. ‘내부난민모니터센터’(IDMC)는 동부 국경지대 일대에 흩어져 숨죽이고 살아가는 버마 내부난민이 50만 명을 넘어선다고 추정한다. 이 단체는 지난 2월14일 내놓은 ‘끝없는 버마 내부난민 위기’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샨주 16만3천여 명 △카레니주 8만1천여 명 △페구 지역 3만900여 명 △카렌주 11만6천여 명 △몬주 4만9천여 명 △테나세림 지역 6만1천여 명 등 동부 국경지대 6개 지역에만 무려 50만3천여 명의 내부난민이 몰려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강제 이주가 가장 많이 벌어진 곳은 북동부 카렌주와 페구 지역이다. 이 일대에선 반군 진영을 겨냥한 버마 정부군의 공세가 격화하면서 지난해에만 4만3천여 명이 새롭게 내부난민으로 전락했다. 2005년 말부터 시작된 버마군의 반군 소탕작전은 주민 강제 이주와 마을 파괴, 군사용을 비롯한 각종 도로 건설, 군부대 신축공사 등과 맞물리면서 ‘인도적 재난’으로 번지고 있다.
강제 노역이 극심한 카렌주 퉁구 지역에선 지난해 새로 군사기지 건설공사가 시작되면서 60살 이상의 노인과 16살 이하의 소년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카렌인권그룹’(KHRG)은 지난해 10월 펴낸 관련 보고서에서 “각종 공사에 강제로 동원된 주민들은 임금을 받기는커녕 되레 군부에 금품을 뜯기는 실정”이라며 “이 때문에 주민들의 집단 반발을 우려한 군부가 두플라야 지역 등지에서 강제 노역을 금하는 경고문을 돌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강제 추방과 이주에 따른 난민 발생은 대도시 지역에서도 어김없이 벌어졌다. 1980~90년대 버마 군사정권은 랑군 시내에 살던 주민 50만 명 이상을 주변에 새로 들어선 위성도시로 강제 이주시켰다. 또 2005년 버마 군부가 수도를 랑군에서 네피도로 옮기는 과정에서 줄잡아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보금자리를 잃고 곳곳으로 흩어졌다.
이 밖에 버마 최대 천연가스 개발사업이 한창인 슈웨 가스전이 있는 서부 아라칸주에서도 내부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버마 군부정권이 지난 2006년 중국 국영 석유업체와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맺은 뒤 이를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공사에 나서면서, 아라칸주는 물론 파이프라인이 지나가는 샨주에서까지 토지 몰수와 강제 노역이 되풀이된 탓이다.
타이-버마 국경지대 타이 쪽 땅에는 9개 난민캠프가 설치돼 있다. 이 캠프에서 생활하는 버마 난민은 모두 15만4천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버마인들이 차마 국경을 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버마 군사정권은 여전히 내부난민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국제기구의 도움의 손길 역시 가로막고 있다. 현재 버마 내부에서는 10개 유엔 기구와 각종 민간 인도지원단체 48개가 활동하고 있지만, 군부는 지난 2006년 이후 실태조사 등 일상적인 활동에도 각종 제약을 두며 이들 단체를 통제하고 있다.
인도지원 단체 활동에 각종 제약
특히 내부난민이 가장 많이 몰린 동부 국경지대는 ‘교전지역’이란 이유로 아예 현장 접근조차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2005년과 2006년 사이 ‘국경 없는 의사회’ 등 몇몇 인도지원단체들이 “버마 정부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더 이상 활동하기 어렵다”며 현지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버마 동부 국경지역 일대에서 숨죽이고 있는 50만여 내부난민에겐 지금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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