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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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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새로운 고통 트렌드

등록 2008-03-14 00:00 수정 2020-05-03 04:25

‘생활경제고통지수’에서 주요 원인으로, 시설농가·축산업 등 가격 조정 못 하는 경우 고통 더 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LG경제연구원이 최근 통계청의 물가지수 자료를 이용해 ‘생활경제고통지수’(고통지수)를 산정했다. ‘고통지수’란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체감실업률을 합산해 산출한 지수로, 높을수록 경제적 고통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2007년 한 해 전체적으로 생활경제고통지수는 9.6이었다. 그런데 월별로 보면, 지난해 9월 8.5에서 10월 9.9, 11월 10.8, 12월 11.0까지 단기간에 크게 높아졌다. 신용카드 대란으로 소비가 크게 위축됐던 2001년의 고통지수는 11.7을 기록한 바 있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선임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생활경제고통지수는 주로 고용에서 온 것인데, 10여 년 만에 유례없이 물가 급등이 고통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며 “고용은 안정적인 반면, 물가 고통이 커지는 새로운 고통 트렌드가 닥치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갑자기 고통지수가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생활물가지수’ 4개월째 4∼5%

고통지수는 두 가지 고통을 단순 합산해 산출하는데, 물론 물가보다는 실업의 고통이 훨씬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물가 불안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 등으로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돼 내수 위축으로 이어진다면 고용마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물가 급등에 고용 불안까지 겹치면 고통지수는 훨씬 더 커지게 된다.

라면·음료수·빵·자장면·김밥·된장찌개·볶음밥은 물론 공공요금·유치원비 등까지 야금야금 오르면서 날마다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1년 전과 견줄 때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0월(3.0%) 3%대에 진입한 뒤 △11월 3.5% △12월 3.6% △올 1월 3.9% △2월 3.6%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식료품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구입하는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만 보면,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이 지난해 11월 4.9%, 12월 4.8%, 올 1월 5.1%, 2월 4.6%로 4개월째 4∼5%를 넘나들고 있다. 이 통계에는 2월20일에 단행된 라면값 20% 인상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많이 구입하는 개인서비스 품목들만 놓고 볼 때 지난 2월에 공동주택관리비(5.1%), 자장면(2.4%), 칼국수(2.1%), 김치찌개백반(1.5%) 등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

국제 곡물값 급등에 따라 모든 상품 공급자들이 가격을 올리고 그로 인해 서민 가계 살림에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지만, 자신이 생산자라 하더도 가격판을 교체하기 어려운 쪽도 있다.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수요가 크게 줄어들기 마련인 상품이 이 부류에 속한다. 곡물값과 기름값 폭등으로 생산비용이 올랐음에도 이를 반영해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처지인 생산자들은 누가 있을까? 우선, 쌀 같은 주식이 아니라 붕어빵 같은 군것질 상품을 파는 쪽은 밀가루값이 올라도 가격을 따라 올리기 어렵다. 생활필수품 구입에 갈수록 돈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 값이 오른 붕어빵을 누가 사먹을 것인가?

국내 축산농가 역시 곡물값 급등에 따라 사료값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지만 쇠고기·돼지값을 올려받기에는 어려운 시장 환경에 처해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김병률 연구위원은 “축산물 가격은 육류 시장에서 결정되는 반면, 사료 가격은 곡물 시장에서 결정된다. 즉, 두 시장이 분리돼 있기 때문에 사료값이 오른다고 곧바로 육류 가격이 오르는 건 아니다”라며 “특히 우리나라는 쇠고기 소비량의 절반 정도가 수입산인데, 값싼 수입산과 경쟁하다 보니 사료 비용이 증가해도 한우 가격을 올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육류는 곡물 같은 생필품이 아니기 때문에 곡물값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육류 소비가 줄어들게 된다. 이렇듯 육류 수요가 위축되는 상황에서는, 늘어난 생산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곡제 곡물값 상승으로 축산 농가 소득이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광열동력비 올라도 가격 올릴 수도 없고…

시설고추·시설오이·시설토마토 농가들도 국제유가 폭등에 따라 큰 고통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시설채소의 경우 광열동력비가 경영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38%에 이른다. 농촌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3월4일 현물가격은 배럴당 95.6달러)가 배럴당 94.2달러라고 가정할 때 시설채소 농가의 경영비는 2007년에 비해 12∼18% 증가하고, 농가소득은 9∼15%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생산자가 가격을 결정하기 어려운 시장구조라서 경영비 인상분을 가격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농촌경제연구원 쪽은 “가격이 안 맞으면 유통업자가 시설채소를 사들이지 않을 것이고, 소비자도 쌀 같은 곡물 가격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고추·오이 등 반찬류는 덜 사먹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름값 인상분을 채소 가격에 반영하기 힘들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 원유취약성 2위

GDP 대비 수입 규모 등 분석한 논문에서, 중국·일본은 11위와 18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지구촌 원유 생산량이 급속히 ‘정점’에 이르고 있다. 이미 50개 원유 생산국이 생산능력의 정점을 지났다. 1971년 미국을 시작으로 캐나다(1973)·이란(1974)·인도네시아(1977)·러시아(1987)·영국(1999)이 차례로 정점을 쳤고, 노르웨이와 멕시코의 원유 생산량도 각각 2001년과 2002년에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미국 등은 이미 원유 순수입국으로 내몰린 상태다. 미국 지구과학자 매리언 킹 허버트가 반세기여 전인 1956년에 내놓은 ‘원유정점 이론’이 들어맞고 있는 겐가?
수요는 급격히 늘고, 공급은 정체돼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시설투자를 하지 않을수록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지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배럴당 100달러 시대에 접어든 지금 관심은 ‘원유 불안정성’에 모아지고 있다. 국제학술지 이 지난 1월15일 인터넷판에 공개한 ‘원유 수입국의 원유취약성지수’란 제목의 17쪽짜리 논문은 눈여겨볼 만하다.
에시타 굽타 인도 에너지자원연구소 연구원은 논문에서 한·중·일 3국을 포함한 아시아·유럽·북아메리카의 26개 원유 수입국의 2004년 원유 수급 현황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원유 수입 총액 △GDP 대비 원유 소비량 △1인당 GDP △에너지 수요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 등으로 나눠 비교·분석했다. 이를 통해 원유 자원에 대한 조사 대상국의 취약성을 계량적으로 확인하는 게 연구의 목적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굽타 연구원은 우선 각국의 원유소비량 대비 보유 원유 자원 규모에 주목한다. 원유 생산국인 오스트레일리아(10.93)·중국(7.81)·인도(6.01) 등이 안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원유 자원이 전무한 한국·스웨덴·벨기에(0.00)과 일본(0.03) 등은 안정도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유 수급을 둘러싼 지정학적 요인(원유 수입 의존도·원유 수입선 다변화 정도, 주요 원유 수입국의 정치적 안정성 등)을 분석한 결과 일본(1.42)·스위스(1.31)·폴란드(1.21) 등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반면, 한국(0.98)·인도(0.54)·중국(0.08) 등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수치가 낮을수록 긍정적인 평가로 볼 수 있는 GDP 대비 원유 수입 규모는 필리핀(5.18)·한국(4.88)·인도(4.21) 등에서 높게 나타난 반면, 오스트레일리아(0.44)·일본(1.44)·미국(1.66)·중국(2.40) 등은 낮게 나타났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굽타 연구원이 원유취약성지수 1~3위로 꼽은 나라는 필리핀·한국·인도 등이다. 급격한 유가 상승이나 원유 수출국의 정정 불안 등으로 원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얘기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전체 26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각각 11위와 18위를 차지했고, 24~26위를 차지한 미국·스웨덴·오스트레일리아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인 일본의 원유 자원 취약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유진 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 팀장은 “일본은 GDP 대비 원유 수입량과 전체 필요 에너지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며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원유 집중도가 높은 부문에서 소비를 줄이는 한편 재생 가능 에너지 활용을 늘리는 등 ‘원유 독립’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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