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과중한 요금부담으로 귀결… 피해자 양산한 ‘두국민전략’을 배울 건가

김대중 정부의 민영화정책은 영국을 모범으로 삼고 있다. 지난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뒤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시작할 때부터 담당관료를 영국으로 파견하여 영국의 경험을 직접 배워오고 있다. 정부가 영국을 내세우는 이유는 분명하다.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정책이 가장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란다. 과연 이 진단은 올바른 것인가?
우선 80년대 이후 영국에서 이뤄진 공기업 민영화 현황을 보면, 거의 모든 공기업이 민영화되었다. 이에 따라 공기업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도 지난 81년 187만명에서 96년에 41만명으로 무려 146만명이 줄었다. 현재 공기업으로 유지되는 조직은 영국국영방송, 영국우편, 런던지하철공사에 불과하고 이전에 국가기관이었던 국민의료원이 공기업체제로 전환된 상태이다.
실패한 영국이 김대중 중부의 이상적 모델

지난 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조차도 보수당 정부의 민영화정책을 못이기는 척 이어가고 있다. 97년 총선에서 이슈가 되었던 영국철도 민영화 백지화 공약도 다시 공기업화하는 데 비용이 막대하다는 이유로 실종되었고, 최근에는 런던지하철 시설부문의 민영화를 둘러싸고 공영화를 선호하는 런던시와 충돌을 빚고 있다. 과연 영국은 민영화의 아성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본격적인 평가에 앞서, 영국의 민영화과정을 이해하는 데 다음 두 가지를 유념하자.
첫째,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과정은 약 15년에 걸쳐 장기간에 이루어졌다. 산업별로 특수한 조건을 정비하기 위한 절대적 시간이 필요했고, 또한 민영화추진에 따른 비판과 저항을 넘어서기 위해선 정권의 정당성이 강화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 전후 합의체제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시장주의적 정치세력이 보수당 내에서 태동한 것은 일찍이 70년대 초반이고, 이들의 지도자인 대처가 집권한 것은 79년이다. 이후 보수당은 97년까지 4번을 연속승리하여 18년을 통치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기간 동안 민영화정책은 이전의 시행착오를 점검하며 확대강화되어갔다. 70년대 초반부터 신자유주의적 지향을 주창하였던 대처 정부조차도 민영화를 실제 추진하는 데에는 그만큼 장시간이 필요했다.
둘째, 영국의 공기업은 대부분 적자기업이었다. 그런데 민영화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적자 여부가 아니라 각 공기업의 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였다. 영국에서 주요 공기업의 민영화순서는 국민들의 만족순서와 상당히 조응한다. 일례로 민영화의 실질적인 포문을 연 영국통신은 국민들의 분노를 가장 많이 자아내게 했던 공기업이었다. 공중전화 셋 중 하나는 항상 고장에다 유리창은 파손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반면에 보수당 집권기에 영국철도가 마지막 민영화대상이었던 까닭은 철도가 막대한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지닌 국민기업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영국방송, 영국체신, 국민의료원의 경우 어느 정부도 민영화를 입 밖에 내지 못한다. 이 공기업들은 영국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공적조직으로 굳건히 서 있다. 런던지하철은 지나치게 낡은 시설과 유지보수비 때문에 사실상 공공과 민간 누구도 선뜻 나설 수 없는 불치상태에 놓여 있다.
‘민영화 효과’는 서비스의 질을 높였나

이제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 결과를 평가해 보자. 이때 평가의 기준은 복합적일 수 있다. 각 공기업 민영화의 정당성 논란, 헐값 매각, 이해당사자의 반대여론 무시 등 부정적인 측면이 상당히 많다. 일단 이 글에서 이러한 비판은 잠시 접기로 하자. 대신에 민영화 추진주체들이 유일하게 내세우는 민영화 효과에 대해 바로 논해보자.
정부는 말한다. 비록 여러 무리가 수반되었지만 결국 시장은 과거 공기업보다 높은 보상을 사회 전체에 돌려줄 것이라고. 그러나 이러한 선전은 사실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었다. 민영화산업의 효과가 검증되기 위해서는 최소 10여년 이상의 운영실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믿음’을 내세우는 것으로 영국 정부는 비판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통신, 가스, 전력 등 주요 민영화산업의 역사가 10년을 넘고 있고, 철도의 경우도 7년이 지나 철도운영부문의 재불하가 시작되고 있다. 이제 영국 공기업 민영화의 효과가 냉정하게 평가될 때가 왔다.
1980년대 이후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 현황 |
현존 주요 공기업
주요 민영화 기업(민영화 연도)
영국국영방송국(BBC)
국영화물회사(1982)
영국우편공사
영국통신(1984)
국민의료원(NHS Trust)
영국가스(1986)
런던지하철공사
영국항공(1987)
영국석유(1987)
영국철강(1988)
영국수도(1989)
영국전력(1990)
영국석탄(1994)
런던지역교통 일부(1994)
영국철도(1994)
민영화의 효과는, 경쟁체제->생산성 향상->요금 인하->국민 수혜라는 논리망에 의해 지지되어왔다. 즉 민영화는 서비스요금을 인하시킨다는 것이다.
민영화된 공기업들은 국민의 일상적 생활수단을 제공하는 필수산업들이다. 따라서 민영화초기 공급과 가격의 안정을 위하여 산업별로 정부의 또다른 규제조치가 뒤따랐다. 산업별로 민영화법안이 입안될 때마다 통신규제국(OFTEL), 전력규제국(OFFER), 철도규제국(SRA) 등의 국가기관 설립이 그것이다. 이 규제국의 역할은 민영기업간 공정경쟁을 감시하는 것으로, 대체서비스가 없는 이 필수독점산업의 서비스요금 감독을 주임무로 한다.
일반적으로 민영화산업의 가격규제는 다음의 정식을 따른다. 요금인상 상한선=소매물가지수(RPI)-X. 이때 요금인상 상한을 결정하는 X는 생산성 향상분, 주주의 적정배당이익, 투자비 등을 고려하여 규제기관이 정한다. X의 값은 통신의 경우 매년 3∼7%, 전력은 2%선에서 정해졌다. 만약 올해 소매물가지수가 4%라면 전력의 요금인상 상한선은 2%가 된다. 이와 같은 규제기관의 역할에 의해 민영화산업의 요금은 물가상승률 이하로 낮아졌고, 서비스수준도 공공체제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규제되었다. 결국 시민들은 민영화정책에 의해 개선된 서비스와 요금체계의 혜택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는 민영화 초기에만 해당된다. 정부가 요금인상상한제도를 적용하는 이유는 아직 민영화산업에 경쟁체제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독과점에 의한 가격담합의 우려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여 공정가격을 설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산업 내 경쟁체제가 형성됨에 따라 가격결정은 점차 시장으로 넘겨졌다.

처음 영국통신, 영국가스 등은 단일기업으로 통합민영화되었으나 이후 경쟁업자의 참여가 허용되어 점차 경쟁체제가 조성되었다. 통신산업의 경우 97년에 국내 장단거리 전화회사 20개 업체, 국제전화에 45개 회사가 생겨났고, 가스산업의 경우 30여개의 공급회사가 등장하였다. 이렇게 시장경쟁체제가 구축됨에 따라 규제국이 개입하는 가격상한규제의 적용범위도 줄어들었다. 통신산업의 경우 98년 가격규제 범위는 총매출액 기준 26%로 줄어들었고, 전력공급부문의 경우 98년에 전면해제되었다. 이제 요금은 자유로이 시장에서 결정되게 되었다.
소수의 민간주주에게 이윤을 남겼을 뿐

그러면 가격규제에서 자유로워진 시장은 서비스요금을 어떻게 결정해왔는가? 김대중 정부가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는 영국전력의 경우를 보자. 민영화 이후 영국 전력도매가격은 약 20% 인하되고, 생산성도 약 5∼19%가량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매우 긍정적인 결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효과가 민영화와 무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동일기간 영국전력의 연료는 석탄에서 가스로 전환되었고, 연료가격도 크게 하락하였다. 뉴베리와 폴리트(Newbury and Pollit)의 분석에 따르면, 같은 기간 연료가격하락, 연료교체, 효율향상 등으로 전력요금의 실질인하분은 50%로 추계되었다. 그런데 민영전력회사는 20%만을 내렸을 뿐이다. 30%의 요금인하분이 부당하게 민간주주에게 초과이윤으로 돌아갔다.
영국철도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영국 정부는 지난 94년부터 영국철도를 민영화하면서 기존 공공체제에 비해 2.5배에 달하는 약 2조∼4조원가량의 막대한 보조금을 매년 민영회사에 제공하고 있다. 민영화 이후 철도요금의 인상을 막자는 정치적 이유가 크게 작용하였다. 동시에 다른 민영화산업처럼 철도규제국에 의해 요금인상상한정책이 취해졌다. 그러나 요금규제를 받는 승차권은 통근, 왕복표에만 해당되고 주간, 편도티켓은 처음부터 여객회사가 자유로이 정하였다. 그 결과 올해 2월 발표된 한 조사에서, 요금상한정책이 취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철도민영화 이후 총요금인상률은 14%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동기간 물가인상률은 그보다 낮은 11%였다. 요금인상억제를 위해 천문학적인 보조금이 주어졌음에도 요금은 어느새 물가보다 높게 올라 있었다.
요금인상의 수혜자는 민영화기업 주주들이다. 영국전력의 경우 주주들은 30%의 초과이윤을 슬그머니 가로챘고, 철도시설을 소유한 ‘레일트랙회사’는 여론의 지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년 5천억∼1조원의 독점이윤을 기록하고 있으며, 여객철도회사들도 요금인상과 정부보조금 덕택으로 망할 수 없는 황금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를 찬성하는 세력도 있다. 민간자본과 이들의 이해를 지지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집단이다. 공기업은 국민의 필수적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기간산업으로서 시장이 안정적이고 생산도 독과점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가장 안정적인 이윤창출산업인 셈이다. 실제로 영국에서 민영화산업의 기업들은 일반 민간기업에 비해 훨씬 높은 이윤을 만끽하고 있다.
문제는 민영화의 수혜자에 비해 피해자의 수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일반 시민들은 세금의 손실, 요금 인상, 서비스 불안정 등에 직면해 있고, 노동자들은 해고와 비정규직화로 내몰리고 있다. 과연 민영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러한 면에서 일군의 영국 학자들이 보수당 정부의 구조조정을 ‘두국민전략’(Two Nation Strategy)이라고 평가한 것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공기업 민영화정책을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분석해 보면, 종래에 ‘모든 영국 국민을 위하는 일국민전략’(One Nation Strategy)의 사회정책이 이제는 중상계층 이상의 이해만을 중점적으로 보호하는 대신에 노동자나 하층계층의 희생을 초래하는 사회정책, 즉 영국 국민을 두 계층으로 분할지배하는 ‘두국민전략’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영국을 공기업 민영화의 모델로 삼고 있다. 만약 정부가 인정하듯이 영국의 길을 가고 있다면, 우리나라 역시 소수의 수혜자와 다수의 피해자로 국민을 가르는 두국민전략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결국 정부 스스로 가장 계급차별적인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계급차별적 정책… 민영화가 능사 아니다
백번 양보하여, 영국통신의 경우처럼 폐허가 된 공중전화박스를 방치하는 공기업이라면 민영화라도 생각해 보자. 그러나 필자는 우리나라 통신, 전력, 가스, 철도 등 어느 산업의 서비스가 그렇게 문제투성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공기업에 종종 지적되는 문제들은 대부분 정부의 낙하산인사에 의해 발생한 정-공(政-公)유착에 의한 것일 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정부투자기관의 경영상태는 민간기업에 비해서도 월등히 양호한 상태이다. 세계를 다녀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나라 공공요금이 이처럼 저렴한지 몰랐다고. 도대체 민영화의 순조로운 추진을 위해 멀쩡한 전력요금, 철도요금을 미리 올려주려는 이 정책을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오건호/ 민주노총 정책부장·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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