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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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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바쁘다”했던 그들

등록 2008-01-18 00:00 수정 2020-05-03 04:25

이천화재 피해자들, 복잡한 하청 계약 피라미드 속에 사지로 내몰려… 원인 밝혀지지 않은 채 보상 협상도 순조롭지 못해

▣ 이천=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사람들은 성난 얼굴로 버스로 향했다. 현장에서 배기장치를 설치하다 숨진 황의충(52)씨의 늙은 아버지(74)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자”고 말했고, 남편 윤석원(43)씨를 잃은 문성혜씨가 “이대로는 억울하다”며 거센 한숨을 토해냈다. 1월10일 오전 9시30분, 이천 냉동창고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이천 시민회관 1층 대강당에 모인 유족들은 “서울 본사로 가자”며 분향소 밖에서 대기하던 고속버스 세 대에 몸을 실었다.

“5천만원이 내 아들 목숨 값이냐”

전날 밤 이뤄진 유가족 대표들과 ‘코리아냉동’ 사이의 밤샘 협상은 성과 없이 끝났다.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호법면 유산리 769-5번지 냉동창고의 주인 코리아냉동 쪽은 유가족 대표들에게 희생자 한 사람당 6천만원을 보상금으로 제시했다. 보상금과 위로금을 합친 명목으로 5천만원, 장례비로 500만원, 유족들의 여관비와 밥값 등으로 500만원이었다. 형 신원준씨를 잃은 신원진씨는 “2시간 넘게 협상을 벌였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게 코리아냉동 쪽의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10명으로 구성된 유가족 대표들은 회사 쪽 안을 유족들에게 알려야 하나를 두고 밤새워 난상토론을 벌였다. “5천만원이 내 아들 목숨 값이란 말이냐.” 사람들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누군가 “서울로 가자”고 말했다.

1월11일, 경찰은 사고 원인을 두고 5일째 현장 감식을 벌였다.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벽면 단열재인 ‘우레탄폼’ 발포 작업 과정에서 생긴 가연성 증기가 냉동창고 안에 들어차 있다가 폭발한 것으로 사고 원인을 추정했다. 그러나 가스에 불을 붙인 발화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최진종 경기소방재난본부장은 “작업 일지를 확인한 결과 전날까지 용접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지만, 현장 관계자가 모두 숨져 폭발이 일어나던 1월7일 아침에도 용접이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장에서 숨진 사람들은 파이프 보온 기술자, 용접공, 냉동설비 전문가, 에어콘 설치회사 직원, 청소부, 일반 잡역부 등이었다. 그들은 복잡한 하청 계약의 피라미드 속에서 사지로 내몰렸다. 이번 공사의 발주처는 공봉애(47)씨가 사장으로 있는 코리아냉동과 그 관계사인 코리아2000이다. 창고의 외벽 건축 공사는 코리아2000이 138억원을 들여 공사를 끝냈고, 그 안의 냉동설비 공사는 코리아냉동 쪽에서 24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유성엔지니어링(이하 유성) 쪽에 맡겼다. 코리아냉동은 코리아2000의 대표이사 공봉애씨의 개인 회사다.

유성은 업무별로 일을 쪼개 전기업체 한우기업, 에어콘 설치업체 아포테크, 배관설비 업체 동신기업, 파이프 보온 업체 HI코리아 등에 하청을 줬다. 코리아냉동 쪽은 지난해 11월21일 공사를 시작해 1월2일까지 우레탄폼 발포 공사를 끝냈고, 1월12일까지 냉동창고(전체 면적 2만3338㎡) 공사를 끝낼 예정이었다. 현장에 있던 57명은 지하 1층에서 한꺼번에 배관설비 보온 등 단열처리, 전기설치, 배관설비, 에어컨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냉동창고는 축구장 두 개 크기의 광활한 넓이를 자랑한다. 소방관들은 “창고 안이 칸막이로 구별돼 미로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숙련 기능공

죽거나 다친 사람들은 모두 가족들에게 “바쁘다”고 했다. 그들은 휴일이어도 좀처럼 쉬지 못했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고영철씨는 유성에서 하청을 받은 HI코리아 소속으로 현장에 투입됐다. 그는 지난해 11월19일부터 12월26일까지는 이천 장암리에 있던 코리아2000 쪽의 또 다른 냉동공장에서 일했다. 이천 유산리로 옮겨온 것은 다음날인 12월27일이었다. 고씨는 “옮겨와 보니 사람들이 작업 기한 안에 일을 끝내기 위해 2주 동안 철야를 하느라 모두 기진맥진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고씨는 “현장 인력들은 일용직 노동자도 있지만 대부분 숙련 기능공”이라고 말했다. HI코리아팀의 최고 반장인 김용민(32)씨의 하루 일당은 15만원, 그 밑의 반장급인 최승복(52)·채중한(46)·김완수(47)씨는 13만원, 나머지 사람들은 10만원(여자는 9만원)씩 받았다. 사람들은 일이 있을 때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일이 생기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HI코리아팀의 김용민씨는 파이프 보온 기술자였다. 그의 누나 김은성씨는 “얼마 전 통화에서 ‘일하는 냉동창고 온도가 영하 36도까지 떨어져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고 했다. 용민씨는 위로 누나 넷을 뒀고, 어머니는 10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일이 많아 집에 올라올 일이 있어도 휴가를 낼 수 없었다. 김씨는 “동생이 이렇게 일찍 죽어 올케와 어머니는 어쩌면 좋냐”고 울었다. 가족들은 경찰에 김씨는 키가 180cm이고 오른쪽 팔에 문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원이 확인돼 이천 효자원 장례식장에 주검이 안치돼 있다.

김완수씨는 5년 전 부인과 이혼한 뒤 외동딸과 함께 살았다. 누나 김종래(53)씨는 “동생이 일하러 한번 나가면 집에 못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던 1월7일은 3주 만에 얻은 비번 날이었다. 딸을 보러 집에 들어가려 했지만 회사 쪽에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말해 발길을 돌렸다. 평소 동료들에게 “딸의 등록금은 내 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외딸 현아(19)씨는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다고 했는데, 나 때문에 아빠가 죽은 것 같다”며 울었다. 그의 주검은 불에 쪼그라들어 확인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DNA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최승복씨도 숨을 거뒀고, 채중한씨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구로 성심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1월11일 현재 40명의 사망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것은 16명 뿐이다.

마스크와 보호장비 없이 일 시켜

하청을 받은 회사들은 인력시장에서 그날그날 잡일을 담당할 인부들을 충원했다. 현장에 일하러 온 적이 있다는 김동출(35)씨는 “내 일당은 7만원이었다”고 말했다. 매일 새벽 4시에 성남의 인력소개업체 ‘일 잘하는 인력’으로 가 일감을 받았다. 회사에서 7만원을 주면 소개업체가 7천원을 떼어가 그의 손으로 떨어지는 것은 6만3천원이었다.

그는 “12월 초에 여기로 왔는데 가스가 가득 들어차 일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무슨 가스인지 모르겠어요. 바닥에 콘크리트를 부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습기 같기도 하고. 제가 왔을 때만 해도 우레탄 작업은 시작이 안 됐으니까.” 그는 일을 도무지 견딜 수 없어 3일 만에 그만뒀다. 김씨는 “마스크와 보호장비도 안 주고서 일하라고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들은 “그래도 당신은 살았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할리코프 누알리(42)의 이름이 확인된 것은 동신기업이 인력사무소에서 데려온 인부 명단을 통해서였다. 그전까지 그의 이름은 ‘신원불상 외국인’이었다. 1920년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전투를 이끌었던 김규식 장군의 외증손자 김군(27)씨도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재중동포들은 알음알음으로 일을 소개받았는지 박영호씨 일가족은 7명이 함께 일하다 숨을 거뒀다.

사람들의 주검은 호주머니 속에 있었던 신분증이나 휴대전화 등으로 확인됐다. 제일 먼저 신분이 확인된 사람은 김준수(32)씨였다. 바지에서 신분증이 나왔다. 김씨의 어머니는 “올해는 꼭 장가를 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양 아래 어금니가 없다’(우민하), ‘치과 치료 경험이 있다’(김완수), ‘입 주위에 점이 있다’(이용걸), ‘왼쪽 발뒤꿈치를 수술했다’(박영호) 등 신체적 특징을 적어 경찰에 제출했다.

두 번째로 신분이 확인된 사람은 용접 기술자 윤석원씨였다. 입은 옷에서 휴대전화가 나왔다. 윤씨의 부인 문성혜씨는 이천을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코리아2000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역삼동 ‘성지하이츠Ⅱ’ 빌딩 앞에 와 닿았다. 사람들은 16~17층에 마련된 사무실로 쫓아 올라갔지만 직원들은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다. 문씨는 “경찰에서 불러 주검을 확인했는데 오른쪽 다리가 불에 타 사라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창고의 주인인 코리아냉동 사장 공봉애씨 등 회사 관계자 4명을 출국 금지했다. 수사본부는 냉동창고의 비상구가 규정(2곳 이상 설치)과 다르게 1곳만 설치된 점 등을 들어 코리아냉동 쪽이 건물을 불법 개조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창고 건설허가를 내준 이천시 공무원들이 경찰서에 와 조사를 받았다. 언론들은 사고 원인, 외국인 노동자의 사연, 창고 건물의 불법 증개축 여부,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방문 소식, 특별비자로 입국한 재중동포 사망자 가족들의 얘기로 뉴스를 채웠다.

코리아냉동 불법 개조 조사

유족과 코리아냉동 쪽은 1월10일 밤 9시부터 보상 협상에 들어갔지만 결론을 끌어내지 못했다. 이천 토박이인 이을순(55)씨 가족이 견디지 못하고 경찰로 찾아가 “주검을 달라”고 했다. 이씨는 1월11일 아침 눈을 맞으며 냉동창고 바로 옆에 있는 선산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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