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역사·영화·영어·생태교육 모임 꾸리고 청명단오제 지내는 수원 청명마을 주공아파트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안녕하세요. 저는 수원 신성초등학교 5학년, 아니 이제 6학년이 되는 박효은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경기도 수원시 영통지구 청명마을 주공아파트예요. 우리 아파트에는 담장이 하나도 없어요. 이상하죠? 지난해 7월까지는 있었는데, 그 뒤로 하나하나 없어졌어요. 다른 아파트에는 모두 있는 담이 우리만 없으니까 처음에는 어색하고 허전했어요. 근데 지금은 너무 좋아요. 아파트가 넓어져서요. 안과 밖 구분이 없으니 멀리 보이는 청명산도 우리 아파트에 있는 것 같아요. 산을 가진 아파트는 여기뿐일 거예요.
어른은 ‘아사달’, 아이들은 ‘박선생 역사교실’
담을 허물게 된 건 2년 전 한 4학년 초등학생이 중학생에게 돈을 뺏기고 맞은 일 때문이래요. 그 초등학생은 심하게 다쳐서 병원에 2주 동안 입원해 있기도 했어요. 때린 중학생은 우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담장 뒤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거기는 담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거든요. 그때부터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담장을 아예 없애자고 하셨대요.
제가 지난해 2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주위의 고등학생 오빠들이 저녁에 학교를 마치고 버스 기다리면서 우리 아파트 담장 밑에서 몰래 담배를 피웠어요. 무서웠죠. 영어학원이 밤 10시에 끝나는데 집에 올 때는 엄마가 꼭 마중을 나오셨어요. 그런데 담이 없어지면서 담배 피우는 오빠들이 사라졌어요. 이제 엄마도 마중을 안 나오세요. 대신 발코니에서 기다리시죠. 학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게 발코니에서 다 보인대요. 담이 없어져서 그래요.
우리 엄마 김미옥(41)씨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전주에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한옥마을을 설명해주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셨어요. 이곳에 오면서 그 일을 못하게 됐다고 걱정하셨는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아파트 주민들의 역사공부 모임인 ‘아사달’에 나가시고 있거든요. 아사달은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이에요. 아파트 단지 아주머니 20명과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공부를 하세요. 1월16일에는 교재를 다 끝내서 ‘책거리’를 하신다고 떡을 준비할 계획을 짜고 계세요. 이웃 김귀옥(37) 아주머니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등 텔레비전 사극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아졌다고 좋아하세요. 제 친구 김승연은 얼마 전 매일 부엌에서 일만 하던 자기 엄마가 식탁에 책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아주 신기했대요. 뿌듯했다는 표현을 써서 제가 통박도 줬어요. 자기도 엄마처럼 역사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저와 같이 ‘박선생 역사교실’에 나가고 있어요. ‘박선생 역사교실’은 우리 아파트 초등학생 동아리인데 같이 공부하는 애들이 30명쯤 돼요. 우리 아파트 사람들은 함께 답사도 떠나요. 지난해 5월12일에는 백제 탐사로 공주와 부여를 다녀왔고, 가을에는 수원의 화성과 육릉에도 다녀왔어요. 오는 1월22일에는 제천 ‘별색꽃돌탐사’도 떠날 거예요.
모든 어른들이 제 이름을 알아요
또 자랑할 게 있어요. 우리 아파트에는 역사모임뿐만 아니라 영화모임, 영어모임, 생태교육 모임도 있답니다. 또 청명단오제, 벼룩시장, 철새탐방, 갯벌체험, 고구마 캐기 등의 활동도 해요. 이런 데 안 빠지고 다니다 보니 1년 사이에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모두 제 이름을 안답니다. 전주에서 수원으로 이사 오면서 친구를 못 사귈까봐 걱정했는데 괜히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 마을에 꼭 한번 놀러오세요. 모두에게 열려 있어요. 담이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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