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소설가 서진의 ‘빈집 구경하기’… 왜 사지도 않을 집을 구경하는가</font>
▣ 서진 소설가· 3nightsonly.com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말리부 근처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오픈하우스(Open House) 사인을 보더니 함께 가던 M씨가 차를 세웠다. “집을 살 건 아니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구경하겠어?” 얼떨결에 나도 40억원을 호가하는 해변의 집을 구경했다. 1층은 바로 말리부 해변과 연결되어 있고 1, 2층과 2, 3층이 따로 거주할 수 있는 아담한 집이었다. 그 집 근처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배우들의 별장이 있을 법했다. 집을 지키고 있던 부동산업자는 우리를 아래위로 보더니 웃으며 마음 편하게 집을 구경하라고 말했다. 맨 위층에 있는, 커튼이 나풀거리는 바다가 보이는 침실에서 나는 실감했다. 세상에는 정말로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오픈하우스에 취미를 들인 것은 아마 그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구경하겠어?”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주로 새로 생긴 오피스텔을 구경하러 다녔다. 마침 새 사무실을 구하기 위해 몇 군데를 알아보러 다녔다. 구조와 전망, 갖추어진 비품의 종류, 내장 스타일 등을 비교해가며 구경하니 그 재미가 쏠쏠했다. 문제는 사무실을 구하고도 길을 걷다 새로운 오피스텔이 있으면 발걸음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건물이 많이 들어서는 부산 해운대를 거닐다 보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주머니에는 항상 부동산업자의 명함이 남아 있고 부동산 사무소에서는 가끔씩 마음의 결정을 했냐는 전화를 걸어온다. 새로 생기는 초특급 주상복합 건물의 모델하우스도 빠뜨릴 수 없다. 조감도와 크기별 내부 구조도가 있는 팸플릿은 필히 모은다. 음료수와 커피, 기념품을 주는 곳도 있다.
한번은 조카와 함께 90평짜리 복층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구경했다. 화장실은 세 개, 방은 일곱 개가 넘고 아파트 안에 작은 정원이 있었다. 위아래 층이 시원하게 뚫린 거실에는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다. 거기에 오븐과 냉장고, 커피머신과 음식물 쓰레기 건조기까지 풀옵션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가격은 50년 동안 번 돈을 모두 모은데도 살 수 없을 정도? 같이 갔던 조카는 가끔씩 내게 묻는다. “삼촌, 언제 이사가?” 조카는 내가 집을 사기 위해 보러 다니는 줄로 아는 것이다.
그렇다. 왜, 사지도 않을 집을 구경하는가? 좋은 집을 구경하면, 언젠가는 그런 집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건축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서? 아니면 단순히 호화로운 사람들이 어떤 집에 사는지 궁금해서? 오픈하우스를 전전하며 잠을 자는 커플에 대한 소설을 쓰기 위해서? 아마도 이런저런 이유가 복합되어 있을 것 같지만 정확한 답은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취미는 그냥 좋아서 하는 거니까, 라고 생각하더라도 찜찜한 뭔가가 남아 있다. 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 그건 신기루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서재, 대형 평면TV가 달린 거실, 붙박이장이 달린 침실과 커다란 스팀 욕조…. 내가, 그리고 앞으로 생길 가족이 그런 곳에 산다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행복할 신기루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행복할…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은 안산의 열댓 평의 복층 원룸이다. 장기 출장 간 집주인 후배 대신 기거하고 있다. 여기서도 빈집을 흘끔 들어가 보곤 한다. 후배가 오는 날에는 “같은 가격이면 여기 5층보다 10층, 서쪽보다 남쪽 전망이 더 좋아. 그리고 두세 평 넓은 게 숨어 있더라고. 거긴 부엌도 더 넓고 홈바까지 있어. 근데 너네 집만 커튼이 없더라”라는 방문 분석 결과를 늘어놓을 게 틀림없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 취미를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로운 집들이 생겨나니까. 가끔씩 신기루에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명태게임 [11월 15일 한겨레 그림판]
추어탕 미꾸라지, 소금 비벼 죽이지 말라…세계적 윤리학자의 당부 [영상]
2년 만에 이재명 선거법 위반 혐의 1심…오후 2시30분 선고
‘공천개입 의혹’ 명태균·김영선 구속…법원 “증거인멸 우려”
우크라이나 전쟁을 없애야 한다, 북한군이 배우기 전에 [세상읽기]
예금자보호 1억…소액예금자가 은행 ‘도덕적 해이’까지 책임지나
‘바이든-날리면’ ‘후쿠시마’ 가짜뉴스 몰이…지원금 몰아준 언론재단
명태균, 검찰에 “김건희 돈 두번 받았다”…대선후보 경선기간 포함
한국, 1년 만에 미 재무부 환율관찰대상국 재지정
간장에 졸이거나 기름에 굽거나…‘하늘이 내린’ 식재료 [E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