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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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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못해 다스는 몸 달아 있었다

등록 2007-12-21 00:00 수정 2020-05-03 04:25

김성우 사장의 미 연방법원 증인신문 내용 분석… BBK 쪽 갈수록 고압적, 전화 한 통에 이사회 열고 투자 결의

▣ 특별취재팀

지난 12월5일 검찰의 ‘BBK’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BBK는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이명박 특검법’을 통과시키려는 대통합민주신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나라당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부상자까지 발생하는 충돌을 빚었다. 양쪽 모두 사활을 걸었다. 파장은 대선을 넘어 내년 4월의 총선까지 이어질 태세다.

검찰 수사 결과를 놓고 정치권에서만 공방을 벌이는 게 아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검찰의 수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 수사 결과 발표 직후 의 의뢰를 받아 리서치플러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2%가 ‘검찰의 BBK 수사 결과 발표가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의혹을 제대로 밝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래서 특검법안을 찬성하는 의견도 높았다. 문화방송이 12월13일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1430명 중 BBK 특검 추진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이 52.7%로 반대 38.5%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틀 앞서 이 한길리서치에 맡겨 실시한 조사에선 응답자의 53.5%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BBK 관련 특검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 없다’는 의견은 39.0%뿐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특검법안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190억 투자하고도 “별도 조사 하지 않았다”

수사 결과 발표 이후 는 이명박 후보가 공동대표이자 대주주로 있던 LKe뱅크가 BBK를 100% 소유한다는 내용이 담긴 김경준씨의 2001년 당시 친필 메모장을 입수해 보도했다. 또 BBK에 50억원을 투자한 심텍의 전영호 회장이 2001년 10월10일 이명박 후보의 측근인 김백준씨 앞으로 보낸 편지도 입수했다. 편지엔 “이명박 회장님께서 투자가 이뤄지기 직전인 지난해(2000년)에 (심텍 사장인 동생 전세호에게) 직접 전화를 해 ‘본인이 BBK투자자문 회장으로 있다’고 소개했다”고 되어 있다. 검찰의 결론과는 다른 내용들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정치적 논란을 고려하지 않고 법률적으로 수사 문제점을 검토한 뒤 내린 결론”이라고 전제한 뒤, BBK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전면 재수사를 촉구했다.

이명박 후보가 실소유주 아니냐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다스(옛 대부기공)의 BBK 투자 과정은 검찰 발표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 대표적인 대목이다. 이 투자과정을 되짚어보자.

다스의 김성우 사장은 2003년 5월 다스가 김경준씨를 상대로 미국에 낸 소송에서 핵심 증인의 한 명으로, 미 연방법원의 증인신문(데포지션)에 응한다. 이 확보한 그의 증인신문 내용을 보면, 다스의 BBK 투자 과정에선 비상식적인 일들이 줄을 잇는다.

김성우 사장은 미 법정에서 BBK에 투자를 결정하게 된 것은 2000년 1~2월에 서초동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김백준(이명박 후보의 ‘집사’로 불리는 측근) 전 서울메트로 감사의 추천 때문이었다고 밝힌다. 그 이후 BBK의 이사인 이보라(김경준씨의 부인)씨와 허민회 부장이 다스를 찾아와 MAF 펀드에 대해 설명했고, 이 내용을 다스의 대주주인 이상은(이명박 후보의 큰형) 회장과 김재정(이명박 후보의 처남) 감사에게 설명하고 투자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증언한다. 투자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김 사장은 김경준씨를 2000년 3월 경주에 있는 다스 본사로 불러 투자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날 처음 만난 김경준을 믿고 5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BBK나 김경준 사장, 그리고 김경준 사장과 이명박 회장의 관계 등에 대해 자체적으로 조사해본 적은 없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일절 없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또한 2000년 12월까지 모두 190억원을 투자한 이후 김경준씨가 BBK의 투자자문업 허가를 취소당하고 결국 140억원을 떼이게 된 그날까지 BBK에 대한 별도의 조사를 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검찰도 다스가 연간 수익(30억원 안팎)의 6배가 넘는 돈을 BBK에 투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스가 아무리 허술한 중소기업이라고 해도, 6~7년치의 수익을 모두 넣은 투자에 대해 이렇게 ‘무신경’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50억~100억원, 왜 이렇게 주먹구구인가

또한 김성우 사장은 다스가 BBK에 투자할 때마다 이상은 회장과 김재정 감사가 참여한 이사회를 열고 투자 여부와 투자액을 결정했지만, 별도로 문서로 남긴 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금융기관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은 BBK의 경우가 처음이라, 임원회의 등에서 별도의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도 없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다스의 BBK 투자와 관련해서는 다이어리나 메모장, 혹은 캘린더에 기록된 내용조차 없다고 밝혔다. 다스의 BBK 투자에 대한 문건은 결국 세 차례에 걸쳐 작성된 계약서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다스가 투자액을 결정하는 과정도 미심쩍다. 김성우 사장은 BBK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 여력에 대해 “우리는 당시 50억~100억원 정도의 여유자금이 있었기 때문에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재무를 담당했던 권승호 전무도 별도의 증인신문에서 “역시 50억~100억원 정도의 여유자금이 있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주먹구구식으로 자금을 운영하는 회사라고 해도, 사장과 재무담당 전무가 당시의 자금 규모를 이렇게 엉성하게 기억하기는 어렵다.

투자액을 5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190억원으로까지 계속 늘리는 과정도 이해하기 어렵다. 김경준씨나 이보라씨가 “좀더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전화를 하면, 김성우 사장은 이사회를 열어 추가 투자를 결의하는 식이다.

2000년 10월 투자(50억원)의 경우를 보면, 김성우 사장은 10월2일에 이상은 회장과 김재정 감사가 참여하는 이사회를 열어 5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김경준씨에게 전화로 통보하려고 하지만, 김경준씨는 당장 연락이 닿지 않는다. 권승호 전무가 계속 전화 접촉을 시도해 겨우 통화가 이뤄져 김경준씨 등이 10월6일 다스 본사를 방문해 투자계약을 맺는다. 김경준씨가 투자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 쪽에서 몸이 달아 있는 형국이다.

2000년 12월 투자(90억원) 당시에도 “펀드의 규모가 클수록 수익률이 높다”는 김경준씨의 말에 따라 90억원의 투자를 결정한다고 김성우 사장은 말했다. 이번에도 몸이 달아 있는 쪽은 다스이다. 김성우 사장은 ‘두 번째 계약이 이뤄진 10월6일부터 세 번째 계약이 이뤄진 12월21일 사이에 김경준씨를 몇 번이나 만났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만난 적은 없고 전화만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전화의 경우에도 “그때는 김경준씨가 워낙 바빠서 내가 연락을 해도 잘 연결이 되지 않았다”며 “(김경준씨의) 여비서에게 ‘답신을 달라’고 했지만 답신이 없었다”고까지 말한다. 결국 김성우 사장이 김경준씨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세 번째 계약이 이뤄지던 12월21일이었다. 김경준씨가 계약서를 들고 다스 본사를 찾아온 것이다.

뻣뻣한 을과 저자세의 갑

이를 보면 후반으로 갈수록 김경준씨나 BBK 쪽의 태도가 고압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김경준씨가 김성우 사장에게 전화 한 통 걸어서 투자 확대를 요구하면, 다스 쪽에서는 이사회를 열어 곧바로 투자를 결의하는 형식이다. 또한 투자를 결정한 뒤에는 다스 쪽에서 ‘투자하겠으니 계약하자’는 뜻을 전화로 거듭해서 알리려고 하지만, 김경준씨 쪽에서는 회신 전화 한번 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정상적인 계약에서 ‘갑’(투자자)과 ‘을’(금융기관)이 보이는 행태와 180도 다르다. 뻣뻣한 을과 저자세의 갑이란 이상한 구도가 펼쳐진 이유는 뭘까. 검찰은 “정상적인 투자였다”고 납득하기 어려운 발표를 했다.



다스 돈, 운영자금으로 쓰였다

검찰 수사의 대표적 허점 두 가지, 다스 자금과 AM파파스-래리 롱

‘이명박 특검법’ 통과 여부를 두고 정치권의 극한 대치가 계속되던 12월14일 국회 본회장에서 송영길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이번 검찰 수사는 전주(錢主)는 두고 바지사장만 구속한 격”이라고 외쳤다. BBK투자자문의 실질적 소유주가 김경준씨라는 사실을 밝힌 이후, 이명박 후보가 BBK의 회장으로 나와 있던 명함과 브로슈어, 관련 기사 등은 수사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검찰에 대한 비판이었다.
검찰 발표를 보면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난다. 가장 큰 허점은 이명박 후보의 형 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대주주로 있는 다스(옛 대부기공)의 투자금 사용처에 대한 부분이다. 검찰은 다스가 BBK에 투자한 돈은 ‘투자일임 약정’에 따라 역외펀드인 MAF 펀드를 통해 주식거래 등에 투자됐고, 2001년 4월 BBK의 투자자문업 등록이 취소돼 영업이 중단되면서 투자금 운영이 불가능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별취재팀이 다스가 미국 법원에 제출한 ‘엔젤앤드엔젤’의 계좌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는 검찰 발표와는 너무도 다르다. 먼저, 다스가 2000년 4월27일과 5월22일 BBK의 하나은행 계좌에 투자금으로 송금한 39억원이 그날 곧바로 삼성증권 계좌로 이동했다가 이 가운데 30억원이 신한은행 계좌를 거쳐 6월15일 LKe뱅크 계좌에 입금됐다. 이 30억원은 닷새 뒤인 6월20일 김경준씨의 LKe뱅크 유상증자 대금으로 처리됐다.
또한 다스가 2000년 12월28일과 30일 BBK의 하나은행 계좌로 송금한 투자금 90억원도 BBK가 운영하던 MAF 펀드를 거쳐 미국 AM파파스 계좌로 송금됐다가, 다시 LKe뱅크의 계좌로 돌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돈은 AM파파스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김경준씨 몫의 LKe뱅크 지분 60%를 매입하는 대금으로 쓰였지만, 나중에 이 후보가 세운 또 다른 회사인 e뱅크증권중개의 자본금으로 충당됐다. 이 부분은 이명박 후보도 지난 7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청문회에서 인정한 바 있다.
김경준씨는 검찰 조사에서도 “다스의 투자금은 모두 회사 자본금 등 운영자금으로 쓰였다”고 계속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이 모든 내용에 눈을 감았다.
두 번째 허점은 AM파파스와 래리 롱에 대한 검찰의 설명이다. AM파파스는 LKe뱅크의 지분을 사서 e뱅크증권중개의 자본금을 마련하는 창구로 쓰인 회사다. 검찰은 김경준씨가 자신의 대학 친구인 래리 롱이 실제로 근무하고 있던 생명공학 분야 전문 벤처캐피털인 ‘AM파파스앤드어소시에이츠’를 본떠, 김경준씨와 그의 누나인 에리카 김이 만든 페이퍼컴퍼니라고 밝혔다. 김경준씨는 한 차례 래리 롱을 한국으로 초대해 이명박 후보와 김백준씨에게 소개하는 사기극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검찰 발표대로 이 후보와 김백준씨가 이런 사기극에 속았다고 해도 의문점은 이어진다. 먼저 이명박 후보는 2001년 4월에 주주총회를 열고 LKe뱅크의 대표이사를 래리 롱에게 넘긴다. 도린 그렉 등 ‘유령 인물’들도 함께 새로운 이사로 등재된다. 또한 김백준씨 역시 2001년 6월12일 자신이 대표이사이자 청산인으로 있던 e뱅크증권중개의 자산을 LKe뱅크에 넘기는 계약을 맺는다. 이때 계약 당사자가 LKe뱅크의 대표이사였던 래리 롱이다.
그런데 검찰 발표에도 김백준씨는 LKe뱅크 이사직을 사퇴한 2001년 4월 이후에도 일주일에 한두 차례 이상 LKe뱅크와 e뱅크증권중개의 사무실이 있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스모타워에 출근했고 월급까지 받았다고 돼 있다. 이렇게 자주 사무실을 드나들던 김백준씨가 래리 롱 등 유령 인물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검찰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발표를 하지 않은 것인지 아무런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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