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를 완전히 걸었던 굴 여무는 갯벌과 멸치 어장… 보상해줄 IOPC 펀드가 요구하는 입증 서류 너무 까다로워
▣ 태안=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흐린 날이었다. 지영모(40)씨는 배 위에서 허둥대고 있었다. “오늘은 파도가 높네요. 뱃멀미가 꽤 날 텐데요.” 12월11일 오후 3시30분. 그가 모는 4.94t(정원 12명)짜리 동력선 ‘연일호’는 태안 천리포항을 빠져나와 8.7노트의 속도로 서진했다. 천리포의 명물 ‘닭섬’을 스치고 지나자 서해 바다를 ‘검은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유조선 ‘허베이 스프리트’호의 육중한 몸체가 눈앞에 안겨오기 시작했다. 오염 현장의 바닷물을 채취하기 위해 배에 오른 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연) 활동가들과 환경위해성평가 전문업체 ‘네오엠비즈’ 연구원들이 기우뚱거리는 배의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뒤뚱거렸다.
“이제 막 멸치를 끝내고 간재미에 들어갈 참이었거든요.” 지씨가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리포에서 태어나 평생 바다만 보고 살아온 지씨에게 선택의 길은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배를 탔다. 다행히도 서해의 너른 바다는 넉넉하고 풍요로웠다. 작은 만 안쪽에 형성된 갯벌마다 굴과 바지락과 낙지들이 꿈틀거렸고, 뭍에서 멀지 않은 바닷물 속에서 멸치·꽃게·우럭·붕장어·간재미 등이 계절을 달리해가며 지씨를 맞았다. 그는 “그 바다에 기대 결혼했고, 초등학교 2학년, 5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을 키운다”고 말했다.
바닷물 위에 떡진 기름때들이 배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기가 멸치 어장이에요. 기름 때문에 아직 그물을 거두지도 못했지만.”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지씨의 시선은 계통이 없었다. “보상이 좀 나와야 할 텐데….” 기자는 헛구역질을 참지 못해 바다를 향해 토악질을 거듭해야 했다. 역한 기름 냄새 때문인지, 뱃멀미 때문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기름을 바닷물 속으로 흩어내기 위해 뿌려댄 유화제로 바다는 범벅이 돼 있었다. 그 위로 해경의 헬리콥터들이 낮게 날았다.
이중 선체였다면, 대응이 효율적이었다면…
일이 터진 것은 12월7일 아침 7시15분께였다. 인천에서 거제도로 이동하던 삼성중공업 소속 1만1800t급 바지선이 근처에 정박 중이던 홍콩 선적 14만6천t급 유조선 옆을 들이받았다. 유조선은 현대오일뱅크의 충남 서산시 대산공장으로 가는 길에 높은 파도를 만나 정박 중이었고, 바지선은 인천대교 공사에 쓰인 해상 크레인을 싣고 거제도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높은 파도로 바지선을 끌고 앞으로 나아가던 예인선 ‘삼성 T-5’호의 강선이 끊어졌다고 한다.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은 해경에 불려나와 사고의 결정적인 원인을 상대에게 떠넘기며 설전을 벌였다.
사고의 원인은 복잡할 수도, 간단할 수도 있다. 예인선을 몰던 삼성중공업이 조금만 더 안전에 신경썼다면, 현대오일뱅크가 사용한 유조선이 이중 선체로 돼 있었다면, 정부 당국이 조금만 더 효율적으로 초기 대응에 나섰다면, 사고는 서해 바다를 아비규환으로 만든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됐든 유조선에 실려 있던 원유 26만여㎘ 가운데 약 1만500㎘가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해 바다는 검은 기름띠 위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천리포 앞바다에서 시작된 기름띠는 때마침 불어닥친 북서풍을 타고 그날 저녁부터 구름포에서 모항항까지 태안의 이름난 해수욕장·갯벌·굴양식장 등을 급습했다. 똑딱선 기적 소리에 젊은 꿈을 싣고 달리던 만리포의 소규모 동력선들은 기름을 뒤집어쓴 채 항구에 묶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름띠는 넓게 퍼져 북쪽으로는 천혜의 양식어장인 가로림만의 입구인 만대 해안까지, 남쪽으로는 우리나라 최대 철새 도래지인 안면도와 그 너머 천수만 어귀까지 이르렀다. 해경의 방제선들과 어민들의 배는 가로림만·근소만·천수만 어귀에 삼중 오일 펜스를 치고 기름띠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12월12일 낮 천리포 북쪽의 소원면 의항2리에서 만난 문경순(55)씨는 “어차피 마을은 끝났다”며 “남은 문제는 보상”이라고 말했다. 의항이 자랑했던 천혜의 굴 양식장은 밀려온 기름의 습격에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가 천혜의 굴 양식장이야. 수온이 낮아서 전라도 굴처럼 알이 크지 않아요. 그래서 자연산처럼 맛있지.” 굴의 수확기는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6개월 남짓이다. 의항 사람들은 봄에서 가을까지는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겨울에는 집에 들어앉아 굴을 수확한다. 마을 사람들은 갯벌을 ‘은행’이라 부른다. “우리 마을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 왜냐? 갯벌이 돈이 되거든.”
IOPC 펀드가 최대 3천억원까지 지원하지만
이번 사고로 어민들은 얼마나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기름 유출에 대한 방제비와 피해 배상은 일차적으로 유조선 선주와 선주가 든 보험사가 책임을 진다. 현재 허베이 스프리트호는 1300억원 한도의 보험에 들어 있고, 이를 넘어서면 우리 나라를 포함한 1백여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이하 IOPC 펀드)이 나서 최대 3천억원(2억300만SDR·3억1천만 달러)까지 지원한다.
은 IOPC 펀드가 2004년 10월 총회를 열어 채택한 ‘2005년 4월 판 보상청구 매뉴얼’(International Oil Pollution Fund 1992 April 2005 Edition)을 분석해 어민들의 보상 가능성을 점쳐봤다. 매뉴얼은 보상을 받기 위해 어민들이 밟아야 할 과정과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을 꼼꼼히 적어놓고 있다(표 참조).
IOPC 펀드가 보상 대상으로 삼는 손해 유형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가 ‘방제·예방 조치에 들어간 비용’이고, 둘째는 기름 유출로 입은 ‘직접 피해’(이하 재산 피해)다. 직접 피해란 기름 유출로 그물이 오염된 경우 이를 세척하거나 다시 사는 비용을 뜻한다. 셋째로는 기름 유출로 재산이 오염돼 발생한 ‘수입 손실’(이하 간접 손실)이다. 그물이 오염된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해 발생한 수입 감소분을 말한다. 넷째로는 기름 유출로 재산상의 손해는 없었지만 그로 인해 발행한 소득 손실(이하 순수 경제적 손실)이다. 천리포·만리포 등지에서 식당이나 민박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환경 피해로 인한 합리적인 복구 조치 비용도 보상 대상이 된다. 제대로 된 보상금을 받으려면 피해자 쪽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손실액을 ‘적절한 증거’를 갖고 철저히 입증해야 한다.
IOPC 매뉴얼에 따른다면 소원면 의항2리는 얼마나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첫 번째 방제·예방 조치에 들어간 비용과 두 번째 재산 피해는 상대적으로 입증이 쉽다. 돈을 쓴 만큼 영수증을 첨부하면 된다.
문제는 세 번째 간접 손실과 네 번째 순수 경제적 손실이다. 의항 사람들은 앞으로 최대 15~20년 동안 갯벌에서 굴 양식을 할 수 없다. 문무학씨는 “의항 사람들은 대부분 소비자들과 일 대 일 직판을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간 상인을 끼면 굴 1kg에 6천원 정도 하지만, 직판을 하면 9천원, 값이 좋을 때는 1만원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얼마 버는지는 사람들이 대충 알지만 영수증을 따로 모아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굴 10kg 까고 4만원 벌었다는 증거를 어떻게
그러나 IOPC 펀드가 요구하는 입증 서류는 매우 까다롭다. IOPC 펀드는 보상을 받으려면 기름 오염을 입기 이전 3년 동안 벌어들인 수입과 수확한 생산물의 월별 상세 내역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의항2리 강성만(63)씨는 의항리 토박이다. 젊은 시절에는 인천으로 나가 미군부대에 근무했던 적도 있지만, 20여 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무렵 사람들은 대규모 굴 양식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 굴을 파내 2남2녀를 키워냈다. 아이들은 모두 부천에 산다.
그는 “이곳 갯벌은 기름져 300~500평 정도면 1년에 2천만원 정도 소득을 올린다”고 말했다. 4천평 정도 양식을 하는 사람은 수입이 1억원을 넘는다. 수확한 굴은 대부분 택배로 서울로 보냈다. 영수증 등 소득을 증명할 만한 서류는 따로 갖춘 게 없다.
강씨가 수확한 굴은 동네 할머니들의 차지가 된다. 원북면 대기리에서 굴을 까러 온 이씨 할머니(80)는 “장화 신고 굴 근처로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고가 나기 전에 수확한 의항 앞바다가 만들어낸 마지막 굴이다. “안 그래도 서울로 간 굴들이 다 반품되고 있는데, 냄새가 배면 어떡해.” 겨울이 되면 할머니들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굴을 깐다. 하루에 15kg을 까면 6만원, 20kg을 까면 8만원이다. 할머니의 아들과 손자는 태안화력발전소에 근무하는데, 아침부터 기름 청소한다고 바다에 나갔다. 할머니는 그날 10kg을 깠다. 할머니의 그날 수입은 4만원. 그 4만원을 IOPC펀드 앞에서 입증할 수 있을까?
천리포 앞에서 ‘별이네 수산’을 운영하는 박유정(39)씨는 눈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별이는 박씨의 큰딸 이름이다. 남편은 바다로 나가 멸치를 잡는다. 그는 “사고가 나던 날 막내가 토하고 먹지도 않아 장염인 줄 알고 병원에 갔다”고 말했다. 주말 예약을 한 12명 단체 손님은 “미안하다”고 전화를 걸어왔고, 손님 20명은 무슨 일인지 연락도 없다. 박씨 수족관 안에서 우럭은 물을 갈아주지 않아 눈이 뒤집힌 채 죽어가고 있었다. 1kg당 4만원짜리 자연산이다. 그는 보상을 받으려면 3년 동안 벌어들인 수입과 판매한 물품 내역을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물품이란 그동안 판매된 음식들인 우럭·광어·붕장어와 그 매운탕의 수와 그것을 먹은 손님 수 등이다.
기름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난 뒤…
지씨의 연일호는 ‘허베이 스프리트’ 지척에서 잠시 숨을 멈췄다. 수심 67m.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최준호·김정훈씨와 네오엠비즈 성찬경 연구원이 바다에서 물을 퍼내 통에 담았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이곳의 물을 떠 바다가 스스로를 어떻게 치유해가는지 분석할 것이다. 김신환 서산·태안환경연합 의장은 “눈에 보이는 기름이 사라지고 자원봉사자들이 떠난 곳으로 새들이 날아와 죽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12월13일, 기름 찌꺼기들은 안면도 해안까지 밀려들었다. 환경운동연합은 방제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건강영향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12월14일로 접어들면서 기름띠의 확산 추세는 잦아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유화제가 바다 위에 뿌려지면 인간의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저지른 실수까지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머잖아 안면도로 몰려든 새들은 집단 폐사할 것이고, 바다에 기대 살았던 선량한 어부들과 그들이 지켜보려 했던 가정들은 도시로 흩어질지 모른다. 2005년 태안의 어가 인구는 8627명이었고, 수산물 어획고는 1211억2428만원이었다. 12월14일 현재 어장 피해는 태안·서산의 여덟 읍·면 339곳 374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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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억하는 가장 처참한 해양 유류오염 사고는 1995년 7월23일 여수 해역에서 좌초돼 기름 5035t을 유출시킨 ‘씨프린스호’(총 톤수 14만4567t) 사건이었다. 사고 당시 불어닥친 태풍 ‘페이’의 영향으로 기름띠는 통영·거제를 지나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까지 퍼졌고, 기름 찌꺼기는 울산과 포항 해역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해안선 오염은 총 73.2km였다.
엄청난 어민 피해가 발생했다. 전체 피해의 75% 이상이 집중된 곳은 여수 해역으로, 대부분 가두리 양식업자들이었다. 2002년 7월 해양수산부가 발간한 ‘씨프린스호 유류오염사고 백서’를 보면, 보상금을 손에 쥐기까지 어민들이 거쳐가야 했던 복잡한 과정들이 잘 드러나 있다.
사고 직후, 여수수산업협동조합(이하 여수수협)은 피해 어민들로부터 신고 접수를 받는다. 신고액 모두가 바로 피해액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다. 여수수협은 전문 용역기관인 고려검정에 맡겨 어민들의 신고 금액에 대해 1차 실사를 벌였다. 16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어민들은 1996년 11월20일 ‘IOPC 펀드’에 735억5500만원에 달하는 피해 청구서를 접수하게 된다.
그리고 소송이 시작됐다. 피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어민과 IOPC 펀드 사이에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리한 소송 과정을 거쳐 한국 법원은 사고 뒤 3년이 지난 1998년 6월2일 어민들이 청구한 735억5500여만원 가운데 153억원만을 피해액으로 결정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민들이 추가 소송을 벌여 2007년 12월 현재까지 인정된 피해액은 어업 피해 198억3600만원, 관광 피해 5억3800만원에 이르고 있다. 배상률은 28%에 머물렀다. 어민들이 합리적인 증거를 들이대 소득을 입증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오염된 바다는 복원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염 현장의 3차 조사(1999년 7월~2000년 6월)가 이뤄질 때까지 오염 해역인 금오도·소횡간도에는 기름기가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됐다.
▶흑사장, 굴과 그이를 삼켜버렸네
▶이태원은 누구의 땅인가
▶그분이 오셨네, 우리 누추한 삶에
▶‘인재숙’은 지방 교육의 숙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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